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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보크 Aug 16. 2021

거기, 고래가 날아요.


많은 날들이 갔어요.

바삐 날은 흐르고 주름은 늘었어요.

쌓아 놓은 자리마다 패인 골,

불안과 염려의 주름이

아홉 개의 골짜기를 만들자

날과 날이 굳고

뼈와 뼈들이 버석이고요.

 

여전히 많은 날들이 가요.

짐짝 같은 날들.


전해 들은 고래 흉내를 내며

고래고래 하는 동안 

뼈들의 잔해가 묻힌 사막에는

밤 없는 낮이 오래

낮 없는 밤이 오래오래


심지를 태울 필요 없는 초는

 서랍에서

어제 같은 오늘이 굳고

오늘 같은 내일이 굳고


그런 거 아닌가요.

그렇지 않은가요.


그래도... 

어딘가에선 진짜

물이 차고 샘이 흐른다는데

거기 고래가 아오른다는데


서랍 속 초는

여전히 심지를 태우지 않아요.


어제 같은 오늘이  골짜기를 메우고

다를 게 없는 생이 다시 오고,

무심히 다시 가는 동안.

'그러려니'마을을 채우는 동안


어떤 골짜기의 주름 속에선

'가는 날들은 이제 오롯이 나의 날들이란다 '

한적한 날들을 꿈꾸며 걷고요

물이 차고 샘이 흐른다는

고래 이야기가 간간히 다시 들리고.


어떤 골짜기의 주름 속에는

기적처럼 물이 흐르고

 물길 따라 샘이 흐르고

출렁이며 고래가 요.


'가는 날들은 오롯이 나의 날이란다'


한적한 날들을 꿈꾸듯 걷는 동안

시간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흐르지만

이미 충분한 날과 모자라도 좋은 날이

주름을 따라 물처럼 흐르고 나면

그래요. 어떤 골짜기에선

샘이 흐르고 고래가 날아오른대요. 

쉬엄쉬엄 물결을 이룬 주름

죽은 뼈들의 잔해 속으로

물이 흐르고 고래가 살아난대요. 


먹은 사막의 고래가

세상에 처음 온 그날,

사막에 물 차오른 이야기를 전해요.


적한 날들이 흐르는 동안

샘은 흐르고 물이 차오르고.

거기, 물빛 비늘로 힘차게

고래가  날아오른대요. 


서랍 속 잠자던 초는

그러니까 이제 심지를 태울 시간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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