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계절을 좋아하냐 묻고
가을이라거나 겨울이라면 어쩐지 그가 좋았다
우린 친구가 될 수 있겠다 희망을 걸었고
대체로 비슷한 것끼리 모여 서로를 확인했다.
세상을 아는 건 우리라 여겼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그늘만을 골라 사랑했다
뜨는 태양보다 지는 노을이 좋았고
아침 햇살보단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좋았다
봄꽃보다 시들어 뒹구는 낙엽을
풍성한 열매보다 그 아래 숨은 뿌리를 본다 믿었다
태양보다는 달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탓인지
양기를 주체할 수 없어 반대의 극을 사랑했는지
그저 지난날의 결핍이 만든 상처인지
까닭을 알 길 없지만 순진한 환상은
몸을 부비는 현실 앞에 마냥 울어야 했다
여전히 어느 계절을 좋아하냐 묻고
가을과 겨울의 정서로 서로를 확인했지만
가을이라 답한 친구의 가을이 어느 날
오곡백과 풍성한 가을이었음을 알고
그제야, 가을의 여러 빛깔을 확인했다
그 후로는
오롯이 늦가을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버릇마저 길렀다
늦가을을 사랑하는 병이 불러일으킨 것인지
생은 뒹구는 낙엽처럼 쓸쓸해져 갔다
내가 사랑해온 계절에
온전히 몸을 담근 후에야
비로소, 봄이 그리워졌다
한 줌 봄볕이, 한없이 그리웠다
모두 이 겨울을 겪었던 것일까
지웠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봄 속에서 겨울을
빛 속에서 어둠을 그려왔는지 모른다
이젠 겨울 속에서 봄을
어둠 속에서 빛을 그리는 중이다
그렇게 계절을 한차례 순행하고 돌아와
봄 속에서 겨울을, 겨울 속에서 봄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