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뭉게구름 Dec 02. 2018

다른 방식으로 그리기 #2 반대로 그리기

배티 에드워즈의 책이 출판된 지 40년이 지났다. 그동안 빠르게 발전한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책의 이론적 토대가 되는 좌뇌-우뇌 이론은 근거도 빈약하고 말이 안 되는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죄뇌-우뇌 이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 베티 에드워즈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미술에 대한 기존의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설명했던 '거꾸로 그리기', '순수윤곽소묘'에서 알 수 있듯이 베티 에드워즈의 방법은 새로움을 넘어 역발상적이다. 이번 글에서 소개할 '여백 그리기'와 '빛 그리기' 역시 학창 시절에 배웠던 것과는 정반대로 그리는 훈련법이다. 

  

(1) 여백 그리기


한국화의 아름다움의 근원을 '여백의 美'라고 한다. 여백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무(無)'로 꽉 찬 또 하나의 형태이다. 그리고 여백과 물체는 서로 맞닿아 경계를 공유하고 있다. 결국 여백은 그릴 수 있는 대상이며, 물체가 아닌 주변의 여백을 그려도 형태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의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 4개 의자 다리는 똑같은 길이이고 평평한 곳에 놓여 있다 등... 이러한 지식은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 오히려 방해를 한다. 우리가 실제로 보는 의자의 모습은  서로 다른 길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방향과 각도에 따라 매번 형태가 달라진다. 또한 군데군데 구멍도 뚫려있고 직선과 곡선이 함께 있는 복잡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매일 보고 사용하는 의자조차 실제 보이는 데로 그리는 것이 어렵다. 이럴 때는 의자 자체를 그리는 것보다 의자와 주변이 만들어내는 공간과 여백을 그리는 것이 많은 도움을 준다. 우선 이전 글에서 설명한 프레임을 통해 의자를 보면서 원하는 구도를 결정한다. 그다음 프레임 안에서 의자가 만들어내는 빈 공간을 관찰하면서 아래의 그림처럼 여백을 그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 의자가 아닌 여백에 집중하여 봐야 한다는 점이다.  여백이 합쳐지면 온전한 형태의 의자가 나타날 것이다.

여백 그리기를 하면 복잡한 형상도 쉽게 그릴 수 있는 것은 빈 공간이 갖고 있는 형태에 대해 아무런 기억된 상징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꾸로 그리기를 했을 때 오히려 잘 그려졌듯이, 사전 정보가 없기 때문에 뇌는 L-모드를 작동시켜 유심히 관찰하고 본 것을 그대로 기록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백 그리기를 통해 또 하나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림의 구도를 잡는  능력을 키워 준다는 점이다. 그림은  일정한 틀 안에 대상과 여백으로 채워져 있다. 초보자들은 그림의 대상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막상  그림을 완성했을 때 대상물이 전체 화면에서 너무 크거나 또는 작거나 하고 한쪽에 치우쳐 저 있기도 하다. 하지만 틀과 대상물이 이루는  여백을 보고, 그릴 수 있다면 전체적인 구도를 잡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2) 빛 그리기 


다른 방식으로 그리기의 4가지 기본 기술 중 앞의 글에서 설명한 윤곽선, 각도 및 비례 관계, 여백에 이어 마지막은 '빛의 논리'인 명암법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림에서 명암은 사물을 3차원으로 보이게  해 준다. 사실 명암을 잘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을 떠올려보자. 둥그런 사과가 놓인 정물화를 그릴 때 선생님은 이 부분이 하이라이트이고 주변부로 점차적으로 어둡게  그려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쳐다봐도 어디 가 밝은지 어두운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운 것은 하나의 점 광원에서 빛이 나와 물체를 비췄을  때 생기는 명암의 변화이다. 하지만 현실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자연광도 있고, 천장의 형광등도 여러 개가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훈련 없이 명암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통 연필로 빗금 쳐서 명암을 표현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연필에 가해지는 압력에 따라 선의 굵기와 진하기가 달라지고 선의 패턴에 따라 느낌도 변화하기 때문에 초보자들은 빗살 치는데 집중하여 정작 중요한 명암은 놓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또한 빗살 치기는 근본적으로 어둠을 그리는 기술이다. 명암을 만드는 빛을 관찰하고 그린 것이 아니다. 물론 어둠과 밝음은 상호적이기 때문에 어둠을 그려 빛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빛의 논리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의 경우 직접 빛을 관찰하고 어둠이 아닌 직접 빛을 그리는 훈련이 명암법을 익히는데 도움이 된다. 

빛을 그리는 방법은 먼저 종이에 연필로 어둡게 칠한 후 칼로 날카롭게 자른 지우개로 밝게 보이는 부분을 지워가면 된다. 이때 사물의 형태가 아닌 밝고 어두운 부분을 감지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흑백 사진을 볼 때 윤곽선이 아닌 명암의 대비로 물체를 구별하듯이 밝고 어둠만 잘 표현하면 형태는 저절로 나타난다. 

어느 정도 기본 형태가 잡히면 가끔씩 조금 떨어져서 그림 전체를 봐주면서 자연스럽게 밝은 부분이 드러나고 있는지 확인하고 수정할 때는 휴지를 이용해 부드럽게 문질러 주고 다시 지워낸다. 명암을 표현하는 단계가 세밀할수록 자연스러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빛의 강도를 보다 세분화시켜 감지하고 이를 명암의 단계로 표현하는 법을 스스로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아래의 그림은 쿠르베의 자화상을 이 방법을 사용하여 그려 본 것이다.   



초보자에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를 잡는 것이다. 특히 나는 밑그림 스케치를 열심히 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을 완성할 때쯤 구도상 아쉬움이 남을 때가 종종 있다. 캔버스가 조금만 길거나 짧았으면 더 멋진 그림이 됐을 텐데... 아래의 두 그림을 비교해 보면 내가 왜 캔버스를 잘라버리고 싶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이란 참 미묘하다. 1-2cm 차이로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화가들은 선 하나 긋는 것 때문에 며칠 밤을 고민한다.

 

혼합재료, 2016.7.16.


매거진의 이전글 다른 방식으로 그리기 #1 도구의 활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