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ma Moses(1860-1961)는 미국의 국민 화가로 본명은 Anna Mary Robertson Moses이지만 사람들은 애칭으로 모지스 할머니라고 부른다. 모지스는 78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0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600점의 그림을 그렸다. 모지스 할머니는 시골학교에 잠시 다닌 것 외에는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미술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모리스는 옛날 농촌 풍경 속에 정겨운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림에 담겨있는 모리스 할머니의 인생 경험과 내면에서 나오는 행복과 따스함이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프랑스의 앙리 루소(1844-1910) 역시 모리스 할머니와 비슷하게 늦깎이로 시작하여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루소는 세관원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마흔 살이 다 되어서야 일요일 오후마다 취미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루소는 정확한 소묘나 인상주의 기법 등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단순하고 순수한 색체와 명확한 윤곽을 사용해서 나뭇잎 하나하나, 잔디밭의 풀잎 하나하나까지 묘사했다. 원근법도 안 맞고 화면 구도 역시 밋밋하고 미숙한 그의 그림은 전문가의 조롱거리가 됐다. 하지만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소박하고 때 묻지 않은 그의 그림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으로 점차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말년에는 피카소 등 당대의 화가들과 교류할 정도가 됐다.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법을 배울 때까지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까지는 평생이 걸렸다"라는 피카소의 말처럼, 루소의 그림에서 나오는 순수함은 피카소는 물론 후대 화가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모리스와 루소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아마추어 화가였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구축하는데 도움이 됐으며, 일반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아오면서 느낀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을 공감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점이 성인이 되어 다시 미술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라 생각한다. 내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실력은 어설프지만 미술이라는 도구로 표현하고 남들과 공감을 나누는 것을 즐겨야 한다. 잘 그린 그림은 많다. 하지만 '진정성이 담긴 내면의 그림'만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좋은 그림이 될 수 있다.
나는 직장 생활을 20년 넘게 해오고 있다. 적지 않은 직장 생활을 통해 느낀 점은 회사에는 3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면서 겉으로는 정의와 장밋빛 미래를 말하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는 야누스 같은 사람이다. 다음은 군림하는 사람 밑에서 맹목적인 충성과 아부로 생존하는 지극히 나약한 인간들이다. 마지막은 앞의 두 부류를 떠받치며 삶의 무게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다. 워크숍 할 때 그린 그림이라 직설적이고 어설프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공감해 줬던 그림이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는 한해 한해 삶의 무게가 다르다. 직장에서는 점차 폭풍우가 몰려오고 파도는 점점 거세진다. 하지만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절모와 콧수염은 나의 자존심이다. 그러나 울고 싶은데 억지로 웃어야 하는 우픈 얼굴은 감출 수 없다.
권력은 항상 자신의 힘을 선(善)한 곳에만 사용하며 세상을 꽃처럼 아름답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권력의 오만일 뿐이다. 민초들은 권력의 힘을 피해 다른 곳으로 몰려간다. 마치 풍선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