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뭉게구름 Nov 10. 2019

인공지능을 위한 미학(1)

카럴 마르턴스
그의 작업은 순수하고 환희에 찬 색감과 본능적인 요소가 강하다. 즉흥적이지만 정돈되어 있고, 복잡하지만 질서가 있다. 또한 이성과 감성의 역할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그의 내면 속 정신성인 것이다. 그는 숫자와 글자, 동형 등의 '논리적인 영역'으로 느껴질 수 있는 영역을 본인만의 시적인 감성으로 풀어내었다.

 박하리(2019), 고요한 창조의 샘물 카럴 마르턴스, 스틸무빙, 매거진 예술세계 Vol.261


작년 이맘때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디자인 거장 카럴 마르턴스(Karel Martens, 1939~) 전시회를 보러 갔었다. 카럴 마르턴스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의미를 일상 속의 평범한 소재들을 활용해 단순하면서도 풍성하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담아냈다. 위의 글은 한 칼럼니스트가 카럴 마르턴스의 전시회에 대해 쓴 것이다. 나는 그의 작품들을 봤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마르턴스처럼 디자인하고 싶어서 위의 글을 인공지능이나 프로그래머에게 보여 준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둘 다 맨붕에 빠져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신 아래와 같은 수식을 제시한다면 어떨까?                   

어려움은 좀 있겠지만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 수식은 앞서 소개했던 인공지능 작품인 <에드먼드 벨라미의 초상화>를 만들 때 실제로 사용한 것으로 그림의 오른쪽 끄트머리에 서명되어 있다. 

에드먼트 벨라미의 초상화


지금까지 미학(美學)은 추상적인 언어체계를 기반으로 발전해왔다. 사람은 언어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고 훈련받아 왔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문장의 의미와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기계인 인공지능은 다르다. 숫자로 표현되어 있지 않으면 학습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과 다른 인공지능을 위한 미학이 필요하고, 이것이 없으면 인공지능 예술의 발전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미(美)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정의하는 것조차 힘든데, 숫자로 나타내라니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공지능 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 실마리는 이전 글에서 소개했던 컴퓨터 예술의 선구자 3N(A.Michael Noll, Georg Nees, Frieder Nake)이 추구했던 <정보 미학>에서 찾을 수 있다.


정보 미학은 클로드 섀넌(Claude Elwood Shannon, 1916~2001)이 창시한 정보 이론(Information Theory)이 미학에 접목되면서 탄생했다. 클로드 섀넌은 현재 디지털 세상이 있게 한 미국의 천재 수학 및 전기공학자이다.  22살에 작성한 전자 회로를 통해 모든  불(bool) 논리 및 사칙 연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논문은 MIT 역사상 가장 최고의 석사 논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 논문은 디지털 컴퓨터를 탄생시키는 기반이 됐다. 또한 1948년 벨 연구소 재직 중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다룬 <통신의 수학적 이론(The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에 담겨 있는 정보의 단위인 비트(bit, binary digit), 정보량, 잉여도, 정보용량 등에 대한 개념 및 수학적 정의는 현재 우리가 항상 접하고 있는 디지털 통신, 파일 압축 등이 있게 하는 출발점이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클로드 섀넌을 디지털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섀넌의 정보이론 중 미학적 관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정보량을 나타내는 엔트로피(entropy) 개념이다. 엔트로피는 일반적으로 무질서도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완전한 질서 상태면 엔트로피가 0이고 무질서할수록 증가하게 된다. 엔트로피는 열역학 또는 통계학적으로 정의가 가능한데, 섀넌은 정보의 불확실성을 확률로 표현하고 통계학적으로 엔트로피(정보량)를 계산했다. 


섀넌이 어떻게 확률로 정보의 엔트로피를 계산했는지 개념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친구와 함께 이탈라아 여행 계획을 짜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피렌체와 같이 잘 알려진 곳을 제안하면 몇 마디 안 해도 결정이 날 것이다. 하지만 베로나처럼 낯선 도시는 구구절절 왜 좋은지 설명해야 한다. 이와 같이 여행지 검색에서 출현 확률이 높은 곳은 설명에 필요한 정보량, 즉 엔트로피가 낮고, 반대로 빈도가 낮으면 엔트로피는 높아진다.


또한, 함께 여행하는 친구가 1명씩 늘어날 때마다 오고 가는 정보량은 늘어날 것이고 이에 따라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친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구성 요소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시스템의 복잡도(complexity)가 높아짐을 의미한다.  그리고 대화하는 방식에 따라서도 엔트로피가 달라진다. 모든 구성원이 균등하게 발언하기 보다 여행 경험이 많은 친구에게 발언권을 더 주는 것이 합의 가능성을 높이고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모든 구성 요소를 무작위적(동일한 확률)보다 일정한 규칙(질서, Order)에 따라 차등적인 확률로 보낼 때 전체 메시지 전달에 필요한 엔트로피는 감소한다. 이와 같은 모든 사실을 섀넌는 아래의 수식을 사용하여 수학적으로 증명했다.(H 엔트로피, 구성 요소 X, 발생 확률 P)

                                   

순수 기술(technology) 문제였던 섀넌의 정보이론이 무엇 때문에 예술 분야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미학으로까지 발전하게 됐을까? 예술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정보 커뮤니케이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는 머릿속에 있던 메시지를  글로 변환하여 구체적인 실체를 갖게 한 후 책, 온라인 미디어 등의 채널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독자는 눈으로 받아들인 시각 정보를 글로 변환하고 작가의 메시지를 유추해 낸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화가가 그림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듯 음악, 문학 등 모든 예술 분야가 전달하는 형태만 다를 뿐 동일하다. 


예술을 일종의 정보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으면 섀넌의 정보이론 역시 예술에 적용 가능할 것이다.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발생(낮은 엔트로피)하는 것이라면, 메시지가 전달될 가능성은 높으나 자칫 스토리가 빈약해지고 독자가 지루하게 여길 수 있다. 또한 등장인물이 많아질수록 이야기는 복잡(엔트로피 증가)해지고, 모든 인물이 동등한 분량이 아닌 중요도 순으로 비중을 다르게 서술(엔트로피 감소)해야 메시지가 잘 전달될 것이다.


예술을 수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정보이론을 예술 전반으로 확장시키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사람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대학의 막스 벤제(Max Bense)이다. 그는 철학 영역에 속했던 미학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물리적 세계와 미적 세계의 결합'을 이끌어 내려고 했다. 벤제의 이론과 제자였던 Frieder Nake와 Georg Nees의 컴퓨터 기술이 결합하여 탄생한 것이 이전 글에서 소개했던 컴퓨터 예술이다. Nake와 Nees는 위에서 설명한 질서와 복잡도의 함수로 미를 측정하여 컴퓨터 스스로 작품을 생성하게 한 것이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소개했던 카럴 마르턴스 전시에 대한 평론으로 되돌아가보자. "즉흥적이지만 정돈되어 있고, 복잡하지만 질서가 있다." Nake와 Nees의 정보미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면 추상적 문장이 아닌 객관적 수치로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마르턴스의 예술관에 입각하여 다른 제품을 디자인하도록 인공지능에게 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글에서 정보미학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지만 복잡하고 미묘한 예술의 세계를 정보미학으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벤제가 추구했던 예술과 과학의 결합, 관념적인 언어가 아닌 숫자로 표현되는 계량적인 미학이 인공지능 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가 추구해 나가야 하는 중요한 과제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공지능 미술의 태동(1960년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