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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Jan 03. 2022

소설<알쏭당>

냄새

" 자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겠습니다~ 커피들 한잔하고 오세요~현지 커피가 맛있으니 한번 드셔 보세요~"

호찌민에 오면 누구나 한 번은 꼭 들르는 노트르담 성당에 들러 사진을 찍고 다음 코스로 넘어가는 도중에 가이드는 버스를 세우고 말했다. 사람들은 짠 듯이 손부채질을 하며 똑같은 말을 내뱉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 덥다, 더워~"

 여름의 뜨거움에 익숙한 나는 이곳 특유의 습기조차 온화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의 무더위와 맞먹는 찌는 듯한 태양열은 살갗을 태우고도 남았고 동남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습기는 더위에 취약한 사람이라면 마냥 여행이 좋을 리 없는 그런 날씨였다. 장기명 팀장은 평소에도 유독 더운 날씨를 힘들어했지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뱃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신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 내었다. 

"으~ 카페 좀 찾아봐~"

형원이 형은, 현지인들 사이에서 유난히 튀는 육중한 몸에서  흐르는 땀으로 셔츠가 흥건해진, 팀장을 바라보며 세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거들었다.

"그러게, 살 좀 빼~! 저기 카페 있다 하하 "

팀원들은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찾은 낙타가 반가움에 눈도 꿈벅하지 않고 걸어가는 처절한 잰걸음으로 카페로 이동했다.

"저기~가이드 양반~"

등 뒤로 어느덧 익숙한 중후한 노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나 짝을 이루어 오는 여행사 패키지 상품에 유일하게 홀로 여행 온 그가 아까부터 신경이 쓰였다. 그는 가이드를 붙잡고 일정을 물어보는 듯했다.

"아~ 아버님~거기는 낼 오후에 갈 겁니다~"

아버지 뻘 정도 돼 보이는 노인은 반바지 아래로 앙상한 종아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종아리를 보자 문득 최근에 급격하게 가늘어진 아버지의 종아리가 생각났다. 장딴지라고 불러야 제대로 그것을 표현했다고 느낄 만큼 젊은 날의 그의 종아리는 튼실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여름날 반바지를 입고도 멋스럽다면 청춘이었고 그렇지 않다면 젊음과 멀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인생의 황혼에 가까워진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반바지가 바람에 나부낄 정도로 남아도는 모습은 황량한 사막처럼 처량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저 노인네는 가족이 없나? 왜 혼자 왔을까?"

아니다 다를까 커피를 주문하고 장기명 팀장은 의자에 앉아 노인의 정체가 궁금한지 버스 쪽을 바라보며 눈초리를 보냈다.

"어서 빨리 결혼해요~ 얼마나 보기 안쓰러워~다들 가족이랑 오는 데 다 늙어서.."

'공주' 선배는 멤버 중 유일하게 결혼을 안 한 내게 , 노인을 안타까워하는 건 지 내가 안타까운지, 알 수 없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공주 선배를 아까부터 유심하게 쳐다보던데~히히, 잘 어울리지 않아? 형?"

그새를 못 참고 형원이 형이 선배에게 농담을 날리며 장난에 동참하라며 팀장에게 말을 넘겼다.

"뭐 이 씨~내가 미쳤냐? 저런 노인네랑~"

장기명 팀장과 형원이 형은 순간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하는 선배의 얼굴이 재밌는지 커피가 나온 것도 잊은 체 웃기 시작했다. 

"아니여~아까 그분 중후하니 남자가 봐도 멋지더라~공주 선배랑 잘 어울릴 것 같오~어떻게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오작교 역할 좀 할까?"

장기명 팀장은 한술 더 떠 , 남편과 사별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는 공주 선배를 이번 기회에 재혼을 시키겠다며 호언장담하듯 말했다.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놀리는 형들의 모습이 어찌나 한심해 보였는지 공주 선배는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이것들아~ 서울 가면 니들 성희롱으로 신고한다~호호"

"선배~형원이 쟤가 먼저 시작했어~ 하하 에라 진상 같은 놈~"

사무실에서는 조금 불편했던 농담들이 단지 장소만 바뀌었을 뿐인데 모두가 즐겁게 웃고 있는 걸 보니 이제야 여행지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여행은 그런 매력이 있었다. 익숙한 공간에서 나도 모르게 쌓여왔던 긴장이 낯선 곳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와서 세포 하나하나가  새롭게 배열되는 기분이었다. 기후, 사람들, 거리의 풍경, 음식 그리고 커피.. 낯설다는 건 익숙해질 여지가 남아있으므로 가능성의 단어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행은 그것이 익숙해질 만하면 다시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진기의 셔터 소리와 같았다.

"음, 딱이다, 나한테 딱이야~!"

목이 애타게 말랐는지 길쭉한 컵 바닥으로 흰색의 띠를 그리고 있는 베트남식 연유 커피를 한숨에 마신 팀장은 이제야 살 것 같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연유 대신 설탕이 바닥에 깔린 거라고 예상이 되는 베트남식 아메리카노로 주문한 나는 로부스타 원두 특유의 고소한 맛과 단맛이 결합돼 자양강장제를 마신 사람처럼 더위속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듯했다.

"저기 사람들, 노상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쌀국수 먹는 모습을 보니 우리 70,80년대 생각나네~"

색다른 커피를 마신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사람들은 창가로 보이는 베트남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이국 땅의 모든 것이 처음 마시는 베트남 커피처럼 새로웠다. 

"이거 달달하니 딱인데 한잔 더 마실 사람? 팀 비로 할 테니 얼른 더 먹어요~"

형원이 형은 베트남 커피가 마음에 드는지 주문대 앞에서 원두도 살피는 것 같았다. 

" 이거 몇 개 살 테니 지점 가서 네가 좀 내려주라~"

지점에 처음 와서 아침이면 지점의 한 모퉁이에서 드립 커피를 내리는 내게 신기한 듯 형원이 형이 다가와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냄새 좋다~ 이게 드립 커피라는 건가? 나도 아침마다 사 먹지 말고 이렇게 먹어야겠다~"

그날 이후부터 우리는 드리퍼 종이가 떨어지면 다가와 서로의 것을 가져갔고 가끔 원두가 떨어지면 상대의 원두를 받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항상 가슴팍에 수동 그라인더를 품고 온 힘을 주어 원두를 갈던 형이 어느 새부터 2만 원짜리 나의 전동 그라인더를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거~ 돈도 잘 버는 사람이 전동 그라인더 좋은 거 하나 사서 팀에 기부 좀 합시다~"

라고 형에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간혹 건너편 자리에서 들려오는 그의 통화 내용을 들으면 그 말이 차마 나오지 못했다. 

" 신발을 시켰는데요~ 신발 끈에 뭐가 묻어 있네요, 흰색 끈인데 이걸 이렇게 그냥 팔면 어떡합니까?"

특유의 또박또박한 말투로 쇼핑몰 업체에 전화로 따지는 그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총량의 법칙, 그래, 난 이 법칙을 친구들에게 자주 말했었다. 지랄 총량의 법칙, 선함의 총량의 법칙, 워크홀릭의 총량의 법칙, 누구나 지랄 같은 성격을 갖고 있고 다만 숨기고 있을 뿐인데 만약 그것을 계속 꽁꽁 숨기고 산다고 하더라도 노년에 지랄 맞은 노인이 될 수 있다는 나름의 논리였다. 그리고 예를 든 건 아침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 강남역에서 자주 마주치는 난데없이 소리를 마구 지르는 노인들,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난동을 부리고 화를 버럭 내는 노인들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젊었을 때는 참 순하고 양반이었을 사람일 텐데.."

나는 형원이 형이 하루 종일 이어지는 고객과의 통화에 지쳐 총량의 법칙에 따라 자신이 누군가의 고객이 되어 그것을 회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된 계기는 장기명 팀장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며 했던 말을 듣고서 였다.

" 쟤 노래방 사장이랑 소송 중이여~ 친구들이랑 놀러 갔으면 곱게 놀 것이지~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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