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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Jan 07. 2022

소설<알쏭당>

냄새

"네?"

소송이라는 말에 놀라 화들짝 놀라 형원이 형을 쳐다봤다. 어떠한 상황에도 특유의 미소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사람처럼 별일 아닌 듯 어서 밥을 먹으러 가자며 재촉했다.

"그 친구랑 갔지? "

장기명 팀장은 형원이 형이 난처해하는 모습을 얼핏 본 것인지, 화들짝 놀라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내 눈치를 챈 것인지,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누구지? 종배? 와~난 첨에 보고 깡패인 줄 알았다니깐~"

형원이 형은 그제야 팀장을 바라보며 "진짠 줄 알겠다~ 뭐 먹을 거야?" 라며 서둘러 이야기의 소재를 점심 메뉴로 돌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워낙 둘은 장난도 많이 치고 싱거운 농담도 자주 해서 다들 뭐 그런가 보다 지나갔지만 무슨 이유인지 형이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어떤 일로 사장과 시비를 붙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여러분~잘 쉬셨죠, 베트남 커피 맛 어떠셨어요? 전 이제 여기 커피 맛이 맛들어서 스타벅스보다 맛있습니다, 하하"

"그런데 여기는 아무리 찾아봐도 스타벅스가 없네요~"

취업하기 전 시간의 여유가 있어 친구와 함께 놀러 온 20대 중반의 여성은 가이드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베트남 국민들은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보시다시피 노상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지만 로컬 프랜차이즈가 워낙 잘돼서 아직까지 스타벅스가 들어오지 못한 걸로 알아요~"

" 곧 들어오겠죠~"

가이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노년의 남자는 모자를 푹 눌러쓴 체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 뭐, 언젠가는 들어오겠죠, 하하, 재밌는 게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선교사가 커피를 먹기 위해 가져온 커피나무가 지금 전 세계 원두 생산량 2위라는 국가적 산업 기반이 됐어요~"

가이드의 말을 듣고 노상에 걸터앉아 커피를 마시는 현지인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한집마다 건너 보이는 짙은 녹색의 간판은 어느덧 도시 풍경의 단면이 되었고 노인의 말대로 언젠가는 여기도 그런 풍경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았다. 그들의 커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유는 입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텐데 과연 바다의 요정 세이렌은 달달하며 고소한 베트남식 커피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지 궁금해졌다. 벌써 여행지의 미래가 궁금해진 걸 보면 이곳의 정취가 좋아지기 시작했음은 분명했다. 

밤이 어둑어둑해지자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잠시 쉬러 갔는지 신선한 바람도 불고 반팔 셔츠와 반바지가 적당한 여름 날씨가 찾아왔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옛 프랑스식 건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바닐라 색의 대리석과 화려한 장식으로 이루어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호텔 앞에는 어쩜 저리 이쁜 색상을 골랐는지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살색의 정복을 입은 공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호찌민의 밤은 생각보다 휘황찬란했다. 거리의 가로수가 불빛에 반짝여 더욱 풍성해 보였고 불나방처럼 오토바이의 불빛들이 거리를 마구 쏘다녔다. 정신이 없이 요란하고 씨끄러웠지만 살아있는 밤이었다.

"오늘 첫날인데 고생하셨습니다~비행기가 타고 오느라 피곤하실 텐데 푹 쉬시고요~낼 8시, 여기서 뵙겠습니다, 아, 그리고 외출을 자제해주세요~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저희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호찌민의 화려한 밤거리를 넋을 잃고 바라보는 심란한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가이드는 유독 날 쳐다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패키지여행에 오면 항상 듣는 가이드의 말이었다. 

"아.. 내가 이래서 패키지여행을 안 좋아한다니깐.."

혼잣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형원이 형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행지를 정하고 난 후 팀 회의에서 나는 무조건 자유여행을 가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지만 팀장과 형원이 형은 처음 가보는 곳이고 짧은 기간 동안 알차게 보내려면 패키지가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푸념 섞인 혼잣말을 형원이 형은 내심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듣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을 어떻게 하지? 우리 중에 한 명은 가이드랑 방을 같이 써야 한다네~ 한방에 두 명씩이라~우리 팀 남자 중에.."

장기명 팀장은 가이드에게 호텔 키를 얻어와서 난처한 듯 말했다. 

"너 코 고는 사람이랑 같이 잘 수 있어? 이형 심하게 골아~"

"형들 코 골아요? 난 절대 같이 못 자 그럼~"

잠자리에 예민한 나는 형원이 형 말이 끝나자마자 팀장이 훌러덩 배를 까고 방이 떠나가라 코를 고는 공간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아연 질색했다.

"절대 못 자~ 오 절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난색을 표하자 형원이 형은 사뭇 진지하게 팀장을 바라봤다. 이제 여행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할 텐데 잠을 설쳐 피로가 덜 풀린 상태로 관광을 한다면 그것만큼 낭패인 여행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이 가이드랑 자~ "

당혹스러운 내 표정을 읽었는지 형원이 형은 키를 잽싸게 낚아채고 방으로 가자고 눈짓으로 내게 말했다.

장기명 팀장의 시무룩한 얼굴을 보고 깔깔거리는 공주 선배의 웃음을 뒤로하고 형원이 형과 호텔 방으로 들어왔다. 싱글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고 그 사이로 화장실이 있는 단출한 방이었다. 높다란 천장 위로 동남아식 샹들리에인 실링 팬이 빙글빙글 돌며 새로운 여행객을 반기고 있었다.

"먼저 씻을래? 내가 먼저 씻는다?"

형은 땀에 젖은 옷가지가 불편한 듯 윗옷을 훌러덩 벗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새 팀에 온지도 반년이 지났고 형들과 거의 매일 건너편 책상에서 얼굴을 마주 하고 일하지만 이국 땅에 놀러 와 이렇게 한방에 묵는다는 게 아직 어색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를 통해 한층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왜 난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할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호중과 규호뿐인걸 보면 성인이 되고 나서 가까워진 친구는 없는 셈이었다.

"넌 그래도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잖아~ 나보다는 사회성이 좋은 거지"

호중은 그런 나를 선망한다는 것인지 자신은 곧 죽어도 그렇게 힘든 일은 못한다는 것인지 평소와 다름없는 체념의 표정을 지었다. 호중의 말대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고 사회성이 좋다면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친구가 많아야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나 스스로 관계가 깊어지는 걸 겁내고 선을 그었던 걸까, 혹은 관계 속에서 서로의 밑바닥을 보았던 경험들 때문이었을까, 물론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는 관계는 누구 혼자만의 잘못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깐. 

"이제야 살 것 같네~! 씻어~!"

형은 세상 둘도 없는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타월을 길게 잡고 머리를 사정없이 털며 나왔다. 

"살 것 같수?"

번호표를 뽑아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형이 나오자 잽싸게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황금색의 세면대 수도꼭지를 제외하고 온통 흰색의 대리석으로 뒤덮인 화장실의 벽면에 검은 실지렁이들이 일제히 벽을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거 뭐야??"

설마 오랜 비행과 바로 뒤따른 관광으로 인한 여독으로 착시 현상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베트남의 찌는 듯한 더위에 잠깐 정신이 나간 걸까, 두 눈을 비비고 다시 화장실의 벽면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것은 물에 젖어 달라붙어 있는 사람의 검은 머리칼이었다. 사방으로 날린 것처럼 화장실 벽면 곳곳에 타일 속 무늬처럼 새겨져 있는 머리칼은, 이 정도가 빠져 날렸다면 욕실을 사용한 사람은 벌써 민머리가 됐어야 할, 처량할 정도로 꿋꿋하게 물기에 기대어 끈질기게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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