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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Aug 17. 2022

외국에 나오면 나이든 부모는 자식이 된다

로스카보스 여행기-3


미국에 살고있다 보니 일년에 부모님을 만나는 시간은 우리 가족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와 부모님이 우리 미국 집에 방문했을 때로 크게 두 번이다. 운이 좋으면 두 번이지만, 바쁜 생활에 서로 치이다 보면 일년에 한 번 만나기도 쉽지는 않은 게 현실이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 중 어디에서 만났느냐에 따라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먼저 내가 한국에 갔을 때는 철저하게 나는 결혼 전 부모님의 딸로 돌아간다. 결혼 전 내 방에 머무는 것은 물론 손에 물 한 방울 거의 묻히지 않고 엄마가 해준 집밥을 먹으며, 결혼 전 모습 그대로 '철 없는 딸'이 된다. 그래서 한국에 방문할 때는 내가 두 아들의 엄마라는 것도 잠시 잊곤 한다. 낮에 부모님이 두 아이를 봐주시면,  가벼운 몸이 되어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으러 휘리릭 나가곤 하니까.


그 시간 동안 어김없이 느끼는 건 '딸'로 살아가는 인생이 제일 편하고 좋다는 것. 부모님의 보호막 아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굴러가는 하루가 더없이 감사하다. 누군가의 부모로 사는 일은 무거운 책임감과 고된 희생을 필연적으로 동반해야만 하고, 나는 피터팬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인건지,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가 않은 모순에 휩싸이고 만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내가 한국에 살았다면 한국에서의 나는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직업인인 동시에 학부모로서 아등바등 살았을 것이란 사실을. 일년에 단 한 번 한국에 방문해서 느끼는 감정은 휴가였기에 가능했을 뿐이다.


그런데 부모님이 미국에 오시면 입장은 반대가 된다. 나는 부모님의 부모가 된다. 그리고 부모님은 나의 자식이 된다. 아무래도 낯선 환경에 들어온 부모님은 일거수 일투족 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고, 나는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 부모님의 생활을 컨트롤 한다. 부모님이 미국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내가 사전에 짜둔 스케줄로 이뤄져있고, 부모님은 모든 '오케이, 오케이' 하시며 딸의 요구에 순순히 응해 주신다. 한국에서는 자주 보지 못했던 실로 자상하고, 너그러운 모습의 아빠가 유독 미국에서는 자주 발견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미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빠의 유연함을 나는 좋아한다. 한국에서 만나는 아빠는 뭐랄까, 우리집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한 회사를 이끌어가는 수장으로서 독재자의 성향을 띠고 있다. 그런 아빠가 멋지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때때로는 꼰대, 그리고 뾰족한 선인장처럼 따갑게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엄마는 미국과 한국에서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엄마는 낯선 환경과 맞닥뜨려도 그닥 두려움이 없다. 일단 언어가 되니까. 영어뿐만 아니라 일어, 중국어, 스페인어도 어느 정도 생활이 가능할 만큼은 구사하는 엄마이기에 나 또한 어려서부터 해외여행을 가면 엄마를 의지할 때가 많았다. 엄마를 떠올리면 참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못하는 게 없는 사람. 어떤 일이든 닥치면 중간 이상은 해내는 사람. 그래서 우리 가정을 한 평생 잘 이끌어 온 사람. 희생정신이 투철한 나의 엄마.



엄마의 이야기



엄마는 우리 가족 안에서 언제나 여행 가이드였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부터 우리 가족은 아빠의 회사 친구 가족들과 함께 여름이 오면 해외여행을 떠나곤 했다. 대개 한국에서 멀지 않은 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중국, 태국, 필리핀 등등. 우리 중 영어가 자유자재로 되는 건 엄마뿐이었고, 그래서 엄마는 여행 가이드나 다름없었다. 해외에서는 어딜 가든 엄마의 입을 통해서만 우리가 원하는 걸 얻어낼 수 있었다.


엄마는 외국 유학을 하지 않은 토종 국내파다. 그런 그녀가 영어를 남부럽지 않게 구사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외국어 공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20대 내내 삼육어학원을 다닌 엄마는 30대, 40대에도 영어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가장 신기한 건 영어 소설을 밥 먹듯이 읽는다는 것인데, 외국에서 유학을 한 나 조차 원서로 책 읽기는 쉽사리 하지 않게 되는 일이다. 나는 가장 애정하는 취미인 독서 만큼은 모국어로 해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영어로 책을 읽으면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화가 나거나, 답답하거나 둘 중 하나다. 막힘없이 책을 읽고 싶은 내게 원서읽기는 그저 영어 공부의 연장선일뿐 취미생활로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엄마는 다르다. 읽던 원서 소설을 읽고 또 읽고, 그 과정에서 모르는 단어가 단 한 개도 없어질 때 엄마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의 원서책은 늘 너덜너덜한 모양이다.  


엄마는 미국에 와서도 서점에 가는 걸 가장 좋아한다. 이사오기 전 살았던 아파트는 길만 건너면 야외 쇼핑몰이 있었고, 그곳에는 반디앤노블스 서점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회사에 출근해서 시간이 빌 때면 어김없이 서점을 찾아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서점에 들어갈 때마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집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 든다. 얼마나 재밌는 책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을까. 보물찾기를 하는 사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는 서점의 이곳저곳을 파고든다.  


몇 년 전부터 스페인어 공부도 시작한 엄마는 내가 둘째 아이를 출산해서 산후조리차 미국에 왔을 때 근처 대학에서 스페인어 강의를 들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6시면 스페인어 수업을 듣는 엄마를 학교 앞까지 차로 태워다줬다. 큰 가방에 스페인어 교재와 필통을 넣은 엄마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그때만큼은 엄마의 나이가 10대, 20대 청춘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의 모습은 얼마나 빛이 나는지 나는 엄마를 통해 배웠다. 


하루는 엄마에게 대학원에 가서 학위를 딴 후, 영어든 스페인이든 중국어든 엄마가 원하는 언어를 가르치며 사는게 어떠냐고 물었다. 


"아냐. 난 순전히 취미생활로만 즐기고 싶어. 학위든 직업이든 별다른 목적이 생기면 지금처럼 즐기며 배울 수가 없잖아." 


어떻게 보면 엄마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배움은 그 자체로도 숭고한 일이고, 꼭 목적에 의한 배움일 필요는 없다. 엄마가 행복하다면 그로써 된 게 아닐까.



엄마가 있었기에 멕시코 여행에서 나는 엄마와 아빠 두 분을 현지 여행사 투어에 보낼 수 있었다. 올인클루시브 호텔에서의 놀고 먹고 생활이 만족스러웠지만, 엄마와 아빠는 멕시코라는 나라 자체를 경험하고 싶어 하셨다. 부모님은 남은 여생에서 언제 또 멕시코를 방문하겠냐며, 현지 투어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셨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어 나는 부랴부랴 현지투어를 예약했고, 여행 셋째날이 투어 당일이었다.



총 7시간으로 구성된 현지투어는 오전 8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은 오전 8시에 호텔 로비로 픽업 온 투어 차량을 타고 로스카보스 다운타운과 해변가를 쭉 관광하고, 오후 3시가 넘어 호텔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당연히 나는 부모님과 함께 투어차량에 탑승하고 싶었지만, 내게는 돌봐야 할 아이 둘이 딸려있었다. 남편이 아이 둘과 함께 있어도 되는 상황이긴 했지만, 남편도 간만에 휴가를 나온 만큼 나 혼자 좋자고 남편과 애들을 남겨두고 7시간이나 자리를 비울 순 없었다. 부모님도 너는 사위와 아이들과 함께 호텔에서 즐기라며, 두 분이서 투어를 다녀오겠다고 하셨다.


투어 당일날 아침. 나는 전날 맞춰둔 모닝콜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투어를 떠나는 부모님을 배웅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오전 7시30분에 모닝콜을 해뒀다. 원피스로 갈아입고 벙거지 모자 하나를 쓴 후 호텔 로비로 나와 모닝커피부터 주문한다. 나와 부모님 것까지 총 3잔을 주문했다. 올인클루시브 호텔이니 만큼, 당연 커피도 무료.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실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모닝커피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엄마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더니 내려오는 중이라고 하셨다. 커피샵에서 만난 엄마 아빠는 잔뜩 멋을 낸 차림이었는데, 아무래도 호텔에만 머물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심정이 설레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오전 7시50분. 8시까지 로비 앞으로 투어 차량이 오기로 되어 있는 만큼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후루룩 아이스라떼를 마시고, 엄마와 아빠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갔다 오셨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8시10분이 넘어가는데도 투어차량이 보이지를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멕시코에서 사기라도 당한 것인가? '트립어드바이저'가 그리 호락호락한 여행 플랫폼은 아닐텐데? 1인당 90달러로 총 180달러를 지불했는데, 설마.


부랴부랴 트립어드바이저 웹사이트로 들어가 로그인을 하고 상황 파악을 해보니 전날 여행가이드가 8시40분까지 시간이 연기됐다고 메시지를 보내놨다. 사전에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 나의 탓이지만 그래도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기는 했다. 따로 전화준 것도 아니고, 이메일로 공지한 것도 아니니. 부모님과 나는 여행에서 좋은게 좋은거라고 크게 화내지 않고, 8시40분까지 호텔 로비 의자에 앉아 바다 구경을 실컷 했다. 휴양지에서는 평소보다 더 너그러워지는 법이니까. 바다를 앞에 두고 무엇을 불평하랴.


8시40분이 됐고, 차량은 로비 앞에 들어섰다. 부모님 말고도 7명의 다른 여행자가 이미 차량에 탑승해 있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이 가장 마지막 픽업 장소였나 보다. 부모님이 차에 탑승하고, 나는 가이드에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전했다. 현지 가이드였던 40대로 보이는 남성은 "왜 함께 가지 않니"라고 물었고, 나는 "I have two kids"라고 답하며 아쉬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버스를 탄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는 내 심정이 마치 유치원 버스에 탄 아이를 바라보는 심정과 흡사했다. 미국에서는 내가 직접 라이드를 하기 때문에 유치원 버스를 이용해 본 적은 없지만, 분명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안녕히, 무사히, 건강히 다녀오세요, 라고 마음 속으로 기도하며 부모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혹시나 싶어 투어차량 번호판도 사진으로 찍어두고, 차량이 호텔을 떠난 후에야 발걸음을 돌렸다.


난 그날 처음으로 명확하게, 나이든 부모님은 나의 자식이 된다는 걸 실감했다. 외국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보다 좀 더 빨리 경험해 본 감정. 분명 먼훗날 내게도 그런 날은 찾아오겠지. 그때가 되면 나이가 든 부모님을 자상하게 돌볼 수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젊은 날 부단히도 일하고, 성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도 그 시간이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 나도 아직은 부모님의 딸로 살아가는 행복을 누리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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