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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Sep 06. 2022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저녁식사

멕시코 로스카보스까지 여행을 갔건만 꿈에 그리던 파라다이스가 펼쳐진 건 아니었다. 로스카보스가 기대 이하의 여행지라는게 아니고, 내가 처한 상황이 파라다이스를 비켜가게끔 했다. 아이 둘을 데리고 하는 여행은 솔로 시절 즐겼던 여행과는 차원이 다른 레벨이다. 외국으로 여행을 가서도 아이들의 무수리 역할을 자처해야 하는데, 무수리도 나름 여행을 왔으니 기분은 평소보다 좋지만 몸의 고됨은 평소의 2배, 3배가 된다. 외국 여행은 시차까지 발생하다 보니 아이들은 평소보다도 잠을 안 잔다.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분출 직전인 아이들과 함께인 해외여행은 '휴가는 아닌데 또 휴가같은' 그런 요상한 느낌이다.


엄마와 아빠는 여행와서도 힘겨워 보이는 우리를 애처롭게 바라보면서도 '환갑여행'의 주인공답게 우리 가족과는 독립적으로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셨다. 그게 내가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여행까지 와서 엄마와 아빠가 손주들을 돌보느라 허덕이는 모습은 보고싶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보다는 나와 남편과 함께 있으려 하기도 했다. 고로 엄마와 아빠가 육아를 도와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엄마, 아빠와는 주로 식사 시간에 만났다. 그것도 조식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고,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었다. 호텔 내 수영장이 3~4개의 섹션으로 분류돼 있었기 때문에 호텔에서 수영을 할 때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나와 남편 아이들은 주로 키즈 스위밍풀에서 머물렀고, 엄마와 아빠는 메인 수영장에서 휴양을 즐겼으므로.


3박4일의 여행은 너무나 짧다. 가는 날과 오는 날을 제외하면 하루종일 풀로 놀 수 있는 날은 딱 이틀 뿐이다. 여행 둘째날 저녁 우리는 호텔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이탈리안 식당을 찾았다. 식당이 6시부터 오후 영업을 재개했기 때문에 15분 정도 일찍 온 우리 가족은 식당 앞을 어슬렁거려야 했다. 이탈리안 식당 앞은 바로 바닷가. 바닷가 앞을 서성이는 일은 기다려야 하는 순간에도 기쁜 법이다. 게다가 이날은 좀 특별했는데, 바로 바닷가에서 스몰 웨딩이 열리고 있었다.


흑인 커플의 결혼식이었는데, 손님까지 합해 한 20~30명 쯤으로 보였다. 이들은 뒷풀이 파티의 일환으로 바닷가 앞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자유로이 춤을 췄다. 하객들은 신랑과 신부의 친구들로만 구성돼 있는지 다들 젊어 보였다. 브라이드 메이드들은 피치 컬러의 드레스를 입고 있고, 남성 하객들은 흰색 턱시도로 멋을 냈다. 음악에 몸을 맡겨 춤을 추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와 아빠는 참 행복해 보인다고 덩달아 미소지으셨다.


이윽고 식당이 오픈했고, 야오테이블에 앉자 결혼식 뒷풀이 파티를 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타인이 결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연스레 우리 가족들도 나와 남편의 7년 전 결혼식을 떠올렸다.

엄마의 이야기 


엄마는 딸의 결혼 소식이 갑작스럽고, 충격적이기만 했다. 엄마는 조금 더 딸과 한 집에서 살고 싶었다. 엄마는 딸의 유학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어리게만 느껴지는 딸을 혼자 미국으로 보내놓고 엄마는 얼마나 슬펐던가. 딸을 믿는 마음과는 별개로 눈에 보이지 않아서 늘 딸이 보고 싶었다. 엄마는 매일 딸과 이메일 편지를 주고 받으며 딸이 잘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딸이 유학을 하는 기간 동안 모녀는 수백통의 이메일 편지를 주고 받았다. 내용은 시시콜콜했다. 오늘의 일과, 어제 있었던 일, 느꼈던 감정 등 엄마는 딸과 모든 것을 나눴다. 딸이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고백하던 어느날, 엄마는 직감했다. 이 아이는 머지 않아 내 손을 떠나겠구나 하고. 엄마는 딸이 한 번 마음을 내어주면 자신의 밑바닥까지 빼어주는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딸은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시간을 아끼지 않고 밑도 끝도 없이 내어주곤 했다. 딸이 제대로 사귀어 보는 첫 남자친구이니, 상대방이 멀쩡한 남성이라면 딸은 그와 헤어질리가 없다는 걸 엄마는 알았다. 


엄마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졸업 후 한국에 돌아온 딸은 여전히 그 때 그  남자친구와 사귀는 중이었다. 그리고 스물 여섯의 나이에 충격 선언을 하고야 만다. "나 오빠랑 결혼할까 해." 

딱히 결혼을 반대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두 팔 벌려 찬성할 상황은 아니었다. 사위가 될 사람은 마음에 들었지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요즘 세상에 결혼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겠냐만은, 그래도 딸을 조금 더 내 품에서 키우고 싶은 엄마의 욕심이었다. 


딸도 썩 결혼이 내켜보이지는 않았다. 꿈이 많은 딸은 본래 서른이 넘어 결혼을 하고 싶어했다. 다만 딸은 지금의 남자친구를 너무 사랑하고, 상대가 결혼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토로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딸 앞에서 결국 엄마는 진심을 담아 조언을 건넸다. 


"남자가 너무 결혼을 원하는데, 여자가 튕기면 남자는 언젠가 튕겨져 나가기 마련이다. 어차피 이 남자와 결혼을 하고 싶다면 결혼 시기를 2~3년 앞당기는 것일뿐 달라질 건 크게 없다. 고작 몇 년 때문에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시간 참 빠르네. 벌써 7년 전이야."

"너희 두 아들을 보면 7년의 세월이 느껴진다."


두 아들의 존재는 지난 7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증명했다. 육아가 힘들다며 매일 부모님께 어리광부리기 바쁘지만, 사실 두 아이는 내 생이 의미있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따금씩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 자유로운 생활을 늘 갈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가 아이를 낳지 않겠느냐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다.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휴가까지 와서 육아하느라 힘들다며 지치고 굳었던 마음이 몰캉해졌다. 마음에 여유가 찾아오자 감사의 마음도 따라왔다. 나의 사랑하는 두 아이와 남편과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있는 지금 순간이 먼 훗날 얼마나 그리워질 순간인지를 자각했다.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이 순간을 박제해서 내 보물상자에 넣어두고, 삶에서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고 싶었다.




불과 2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결혼식 뒷풀이 음악에 취해 바다를 바라보며 먹었던 저녁 식사. 엄마 아빠와 함께 즐겼던 와인 한 두잔과 바닷물의 출렁거림. 바다 냄새. 선선했던 바람. 잊지 못할 한 여름 밤의 꿈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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