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Seok Feb 28. 2024

미국에서 제사 지내는 30대 며느리


3년 전 ‘미국에 사는 장손 며느리의 제사상 차리기’ 글(https://brunch.co.kr/@irisseok/67)을 게시했다. 해당 글의 조회수는 12만이 훌쩍 넘었고, 몇몇 사람들은 미국에서 제사를 지내는 30대 며느리에게 기특하다는 칭찬을 해줬다. 그런가 하면 악플도 달렸는데, 악플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남편이란 분 좀 고지식하네요. 미국에서 무슨 제사인가요? 코미디 보는 것 같네요. 요즘같은 시대에 제상상을 차리자는 자체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거. 남편을 많이 사랑하시는 듯.’



제법 날이 서있는 댓글이었다. 그런데도 글쓴이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이해가 가긴 했다. 요즘 세상에 제사라니? 그것도 미국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나 역시 미국에서 제사 지내는 집을 본 적이 없다. 미국에 사는 한인 대부분은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이거나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내 나이가 30대인 것도 한몫 한다. 30대에 시부모님 없이 자신의 집에서 직접 제사를 지내는 며느리는 한국에서도 흔히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남편과 내가 미국에서 제사 지내기를 고수하는 이유는 그저 일찍 돌아가신 아버님을 기리기 위해서다. 남편의 아버지, 즉 나의 시아버지는 남편이 5학년에 올라갈 무렵 암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매년 기제일만 되면 어린 남편이 겪었을 슬픔과 절망이 떠올라 서글퍼진다.



내가 모르던 그 시절 어린 남편을 만나 꼭 껴안아 주고 싶은 심정. 남편과 제사 음식 준비를 하며, 어린아이였던 남편이 안됐다고 슬픈 표정을 지으면 그는 “그렇게까지 슬프게 살진 않았어. 잘 먹고 잘 살았어”라며 어깨를 으쓱한다. 오히려 그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이제 너가 너희 집안의 가장이다”라는 어른들의 말씀. 아직 어리기만 했던 그에게 ‘가장’이라는 말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부모를 일찍 여의면 상처가 되는 말들이 종종 따라다니곤 하는데, 가령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남편을 만난 이후, 난 그 말이 그렇게나 슬프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결혼 후 자녀 계획에 있어 딸보다도 아들을 무척이나 선호했는데, 그건 아마도 한평생 어머니와 누나, 여성으로만 가족을 채웠던 남편에게도 남자 가족 구성원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현재 우리 부부에게는 두 아들이 있고, 남편은 그 어느때도다도 지금이 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나로서는 딸이 없어 조금 아쉽긴 하지만, 한평생 남자 가족을 원했을 남편에게 든든한 가족을 만들어 준 것 같아 기쁨이 더 크다.



제사상이라고 해서 별다른 건 없다. 한인마트에서 사온 나물, 과일, 떡, 약과, 포 등을 상에 올리고 남편과 내가 직접 요리하는 건 동그랑땡과 닭고기 미역국 정도다. 우리집은 흔히 제사상에 올라가는 탕국을 대신 닭고기 미역국을 끓이는데, 그 이유는 닭고기 미역국이 아버님이 살아 생전에 가장 좋아하는 국이었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전통적인 제사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아버님을 기리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우리 가족에게 제사란 우리에게 별다른 종교가 없으므로 한국의 전통문화에 기반해 아버님을 기리는 수단이다.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닌, 그저 아버님을 기리는 방식일 뿐이다. 한국이었으면 산소에 들리는 방식으로 아버님의 기일을 챙겼을 것 같다.


게다가 미국에서 제사를 지내며 좋은 점은 미국에서 태어난 두 아이에게 한국의 전통 문화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 태어나 줄곧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은 집에서 영어어 한국어를 섞어쓰며,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두 아이에게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게끔,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끔 돕는 게 제사의 장점 중 하나다.


7살 첫째 아이는 이번에 제사를 지내며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 나중에 슬며시 다가가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어보니 "엄마와 아빠가 내가 100살 될 때까지 살아있게 해달라고 빌었어요"라고 답한다. 제사를 지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했을 첫째 아이가 짠하고 귀여워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을 위해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야지. 그러려면 건강식을 먹고 스트레스 덜받고, 운동을 꾸준히 해야할 것이다. 제사를 지낸 날, 잠들기 전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부디 건강히 나이들어가자고 약속했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의 기억은 현재를 살게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