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달리기 VS 오래 달리기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명백히 후자에 유리한 사람이다. 유전적으로 훌륭한 운동 신경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구력만큼은 평균 이상으로 태어난 덕분에 체력도 좋고, 에너지도 넘친다. 그래서 운동을 '못하지만' '좋아는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죽었다 깨나 운동회에서 반 대표로 계주를 뛸 수는 없는 실력이었지만, 체육시간에 오래 달리기가 있는 날이면 자신감이 붙었다. '달리기를 끝까지 해내지 못하면 어떤 일에도 성공할 수 없어!'라는 극단적인 마음을 품고 달리면 도저히 멈출 수 없게 된다. 그게 오래 달리기의 묘미. 절박한 상황을 가정하고 달리면, 마치 진짜 그렇게 될 것만 같아서 달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된다.
평소 유산소 운동으로 집에서 런닝머신을 하는데, 아이패드로 영상을 보며 걷는 편이지 굳이 달리지는 않았다. 런닝머신을 하는 건 운동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유튜브나 넷플릭스 영상을 감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영상을 편하게 시청하기에 달리기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니 주로 빠른 걸음으로 운동을 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 변화가 생겼다. 몇 주 전 만난 친구가 내년 1월 마라톤에 나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친구는 '하프 마라톤'에 나가자고 했는데, 하프 마라톤이면 최소 3시간은 달려야 했다.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까짓거 뭐 해보자는 마음에 동시에 올라왔다. 새해부터 마라톤에 출전해 뭔가를 성취한다면, 2026년이 술술 풀릴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과거 중학생 때 오래 달리기를 잘했으니, 마라톤도 거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기저에 깔려있었다.
몇 년 전부터 철인3종 경기에 나가느라 나보다 먼저 마라톤 세계에 진입한 남편은 하프마라톤에 도전한다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할 수야 있지. 부상 없이 잘 하는 게 중요하지.
맞는 말이다. 학생 시절에 그랬듯 '이거 안 뛰면 내 인생 끝난다'는 절박한 가정을 하면 어떻게든 뛸 수야 있을테다. 하지만 객기로 뛰는 일은 남편 말마따나 부상을 불러올 수 있다. 무릎이 나간다거나, 발못이 삐끗한다거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다.
부상 없이 온전히 잘 뛰기 위해 요즘 2~3일에 한 번 꼴로 5km를 달리고 있다. 애플워치를 차고 달리면 나의 달리기 페이스, 분당 발걸음 수(케이던스), 심박수, 총 달린 거리 등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어서 비교적 재미있게 달릴 수 있다. (새삼 세상 참 좋아졌다)
지난 주말에는 산타모니카에 가서 바다를 옆에 두고 아이들과 함께 달렸는데, 어찌나 상쾌하던지. 이래서 요즘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에 빠져있나 싶었다. 달리는 것 보단 걷는 걸 여전히 더 좋아하지만, 제대로 달린 후 땀을 흠뻑 흘리고나면 몸과 정신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그렇게나 좋다.
하프마라톤까지 남은 기간은 3개월. 땡스기빙데이, 크리스마스 연휴 등 노는 날은 빼면 두 달 겨우 남은 상황이다. 다이어트도 할겸 주기적으로 달리는 연습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