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밀은 없다 - 우리는 나와 타인을 얼마나 입체적으로 보는가?
영화 비밀은 없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줄 평 : 평면 인간은 없다.
우리는 나와 타인을 얼마나 입체적으로 보는가?
영화 소개(출처 : 네이버 영화 비밀은 없다.)
국회 입성을 노리는 신예 정치인 ‘종찬’(김주혁)과 그의 아내 ‘연홍’(손예진) 선거를 보름 앞둔 어느 날, 그들의 딸이 실종된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 애를 쓰던 ‘연홍’은 딸의 실종에도 불구하고 선거에만 집중하는 ‘종찬’과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속, 홀로 딸의 흔적을 쫓기 시작한다. 하지만 딸이 남긴 단서들을 집요하게 추적하던 ‘연홍’은 점차 드러나는 충격적 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유력한 후보, 사라진 딸, 15일간의 미스터리 선거 D-15, 딸이 사라졌다!(네이버 영화)
영화 ‘비밀은 없다’를 보고 떠오른 소설이 있다. 정이현의 ‘어금니’라는 단편 소설이다. 주인공인 어머니는 대학에 갓 입학한 아들이 미성년자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아들은 입학 선물로 사준 차에 성매매한 청소년을 태우고 빗길 운전하다 사고를 내서 자신은 허리만 다치고 청소년은 즉사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구속을 막기 위해 16살 여자아이의 부검을 교묘히 막고 그녀의 가족에게 지방에 집 한 채 정도 구할 수 있는 돈을 준다. 부모는 돈으로 아들을 보호하고 아들은 한 아이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부모가 자녀에게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직면하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새삼 느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직면하기 싫은 그림자는 성과 폭력이다. 우리 아이가 학교폭력 피해자라면 그나마 수긍이 가지만, 가해자라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성도 마찬가지다. 온라인에서 성을 착취당한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받았던 협박은 “너희 부모에게 알리겠다”는 말이다. 성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 뜨거운 감자다.
영화 중반 연홍(배우 손예진)은 사건의 실체를 조금씩 파헤치기 시작한다. 민진이(연홍의 딸) 숨겨왔던 민낯이 드러나며 혼란스러운 연홍은 남편에게 말한다. “민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착하지 않을지도 몰라.” ‘착하다’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이 말의 핵심은 부모가 예상하는 아이와 다르다는 데에 있다. 내 아이의 연관검색어에 ‘학교폭력’, ‘임신’, ‘술’, ‘담배’, ‘동성연애’를 떠올리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연홍은 남편도 경찰도 실종된 딸 민진이를 찾기에 미적지근하니까 자기가 찾겠다고 나선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히스테리컬한 면모가 드러나며 딸을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딸의 이메일을 뒤지다 발견한 시험지 한 장, 그로 인해 자신이 직면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맞닥뜨린다. 연홍은 2년 전 민진이가 중학교 1학년 때 갑자기 오른 딸의 성적표를 보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던 자신을 떠올린다. 그 후로도 딸의 성적이 가파르게 상승, 2년간 유지되는 것을 불안하지만 못 본 척한다.
모녀는 서로에게 제대로 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관심이란 말 그대로 마음을 다해 보는 것이다. 그들은 어머니와 딸의 역할로만 만나고 보았기 때문에 다른 상황과 맥락에서 그들이 어떻게 변하는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는 2년 동안 사건의 실타래는 단단히 얽히고설켜 점점 극적으로 치닫는다.
영화 초반 민진이는 엄마(연홍)에게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자혜’라는 가상의 인물을 하나 만들어낸다. “자혜는 호피 무늬 안경테, 머리는 길고 항상 헝클어져 있으며 아빠가 공무원인 사람”으로 묘사한다.
‘아버지 그늘 밑 마마걸에 모범생처럼 보이지만 아싸 같다’는 뉘앙스다. 경찰 조사에서 자혜에 대한 설명을 들은 남편은 바로 “그거 당신이잖아.”라고 팩트폭격한다. 그게 엄마(연홍)의 청소년기 사진을 본 민진이의 시각이다.
민진이는 외눈박이로 엄마를 단편적으로 봐왔다. 자신의 엄마는 가부장제에 순응하고 남편의 출세를 위해 엄마의 고향을 떠나 텃세 심한 지역에 와서 살림과 자신밖에 모르는 순진한 현모양처로만 안다. 다채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한 사람이 아니라. 만약 민진이가 자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엄마의 독한 면을 알고 있었다면 자기 혼자 그 엄청난 진실을 감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연홍도 자신의 두려움으로 한쪽 눈이 가려져 딸의 불일치되는 언행에 질문하거나 파고들려 하지 않았다. 연홍은 딸의 실종 이후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이었던 손소라 선생님(배우 최유화)과 몇 차례 마주한다.
“우리 아이는 나를 닮아서 공부 머리가 없어요.”
연홍은 2년 동안 민진이가 자신을 속이고 어떤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꼈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 살피려 하지 않았다. 연홍이 무 자르듯 말하자 손 선생님은 어머니가 몰라서 그렇지 민진이는 머리가 좋다고 둘러댄다. 연홍이 사건의 전말을 어느 정도 알게되자 손 선생님은 연홍에게 말한다. “민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손 선생님은 엄마에게 민진이의 실체를 엄마에게 낱낱이 보여주고 싶었다. 딸에 대해 그렇게 외면하려 했던 진실은 선생님이 녹음해 들려준 민진이의 분노 가득한 욕으로 귓가에 울려 퍼진다.
손소라 선생님에게 차량용 방향제를 선물하던 날 민진이와 친구 미옥의 표정은 천진난만하다. 그들의 맑은 표정 뒤에 숨겨진 것은 뭘까?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은유 작가가 말한 ‘겹의 눈’ 말이다.
‘늘 가족을 위해 희생하던 엄마가 아니라 한 존재의 실존적인 고투를 엿보게 되면 그 삶의 진실함에 숙연해지고 만다. 본래적 존재로 살아가려는 힘이 삶의 진실함이다. (중략)
나의 경우는 그랬다. 수많은 인터뷰를 하고 학인들의 인터뷰를 읽고 토론하면서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졌다. 보이는 것 너머 이면을 상상한다. (중략)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길러졌다. 한 존재를 바라보는 ’겹의 눈‘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겹의 눈을 갖고 한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 은밀한 욕구, 상처를 볼 수 있다면 어떨까? 내가 상대에게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자신과 타인을 진정으로 만나고 싶다면, 평면이 아닌 입체 퍼즐로 맞추어 보기를 권유한다. 각각 다른 방향에서 보이는 다양한 면 말이다.
나는 영화 마지막 장면의 대사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연홍은 민진이의 절친이었던 미옥에게 애절하게 묻는다. 민진이가 실종 당일 김밥 몇 개만 먹고 나간 것에 대해 가슴 아파했던 연홍은 간절한 마음으로 미옥을 껴안는다. “(민진이가) 엄마는 좋았다니?”라는 영화 속 질문에 나는 순진하게도 “네, 엄마는 좋아했어요.”라는 대답을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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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은 울먹이며 답한다.
“엄마는 멍청하댔어요. 멍청해서 자기가 지켜줘야 한다고.”
ps. 영화 '비밀은 없다'는 각본에 참여한 다섯 명의 작가, 배우 손예진과 김주혁, 그 외의 수많은 조연 배우들의 피, 땀, 눈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특히 배우 손예진은 원톱이라고 해도 될만큼 순진한 엄마에서 히스테리컬한 엄마로 변하는 모습을 현실적으로 구현해낸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비밀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