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줌마 누구야?

영화 글로리아 벨 - 역할을 뺀 당신은 누구인가요?

by 투명서재

저 아줌마 누구야?



한 줄 평 : 역할을 뺀 당신은 누구인가요?


키 워 드 : 중년기 빈둥지 증후군


소개(네이버 영화 글로리아 벨)


제 2의 로맨스를 시작했지만 오직 사랑만 할 수 없는 현실을 통해 잊혀졌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여자 ‘글로리아’의 드라마




이 영화를 보고 내가 스무 살에 독립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대학 입학 후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게 되자, 부모님은 나를 기숙사까지 데려다주시고 짐을 함께 날라주셨다. 부모님은 기숙사 방에 있는 훌쩍 커서 성인이 된 내가 낯설었던 모양이다. 그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기에서 어느새 세월이 흘러 갑자기 부모님의 눈길, 손길을 벗어난다고 직면하자 당황스러우셨던 것 같다.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해도 처음의 충격은 늘 준비보다 큰 법이다.


어머니는 기숙사 방안에서 좀 더 있다 가고 싶으셨는데, 나는 그토록 원하던 독립이라 얼른 집으로 가시라고 했다. 아마 많이 서운하셨을 것이다. 그때를 떠올리면 나는 오랫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살기를 고대했다는 것과 영문도 모른 채 매정하게 닫힌 문 앞에서 어찌하실 수 없었던 엄마의 막막함과 무력감을 일부러 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당시 중년기였을 어머니의 허전함을 막연하게 알 것 같다.


아이들을 다 독립시킨 중년의 여성, 글로리아 벨(배우 줄리안 무어), 그녀는 엄마 손이 필요하지 않은 아이들 곁에서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다. 클럽에 혼자 가 춤추는 게 유일한 낙인 글로리아, 어느 날 당신은 그렇게 항상 즐겁냐는 처음 본 남자의 물음에 “No.”라며 서로 웃는다. 음울해 보이는 그와 즐거워 보이는 그녀는 그렇게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열정적인 첫날밤을 보낸 후 그는 이혼한지 일 년 됐다면서도 성인이 된 딸들의 뒤치다꺼리로 여념 없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우선시되지 않는 것에 점점 불만과 화가 쌓여간다. 그녀가 권태와 무기력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때는 오직 춤추는 순간이다. 그녀가 눈뜨는 시간, 늘 혼자임을 확인하는 아침, 차 속에서 홀로 노래 부르는 그녀, 어딜 가든 혼자이기에 자기 소개부터 하는 그녀, 참 안쓰러웠다.


내가 울컥했던 장면은 딸을 공항으로 데려다주면서 “엄마, 울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글로리아는 딸에게 울지 않을테니 공항 안에서 헤어지자며 사정하듯 말한다.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여기서 헤어지자고 단호하게 말하는 딸, 그런 그녀를 보내고 주차장으로 “제발, 제발” 하면서 차를 빨리 몬다. 그리고는 뛰어가 공항 내에서 딸이 저 멀리 걸어가는 모습을 붙잡듯 보고는 그 자리에서 울어버린다.


내 맘 같지 않은 자식들, 늘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데 그들의 시선은 항상 타인에게 가 있다. 중년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그간 문제를 보이지 않던 건강에 적신호가 올 수도 있고 체력은 점점 떨어진다. 자녀는 내 바람과는 멀어지고 일자리에서도 주변에 있는 듯 없는 듯 있다 사라진다.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도 그들 인생의 부침에 따라 늘 곁에 있을 수 없으니 나의 존재감을 느끼려 이리저리 기웃거리지만, 누군가에게 외로움을 빌미로 이용당할 뿐이다.


일을 그만둔 후라면 어딜 가든 역할이 아닌 이름뿐인 나만 남는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 직함 등을 다 뺀 순수한 나 말이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철저히 고독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그녀의 집에 쥐도 새도 모르게 매일같이 들어오는 아주 깡마른 고양이는 어쩌면 그녀와 똑같은 신세다. 글로리아 벨의 분신 같다. 딸들을 돌봐줘야 한다며 짜증 내고 신경 쓰는 남자에 비해, 손주를 돌봐주고 싶어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 전화해.” 자녀에게 말해도 그녀에게 전화 한 통 오지 않는다.


남자는 자식들 전화 때문에 자기(self)가 없고, 여자는 자식들 전화가 없어 자기(self)가 없다. 그렇게 얽히고설킨 관계, 끊어내고 싶지만 끊기지 않는 가족의 엉겨붙음(밀착)으로 인해 남자는 상대적으로 덜 외롭다. 그녀는 묘한 질투와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그녀의 허전함과 쓸쓸함으로 그에게 복수의 한 방을 날린다. “그래, 너는 가족끼리 잘살아봐!”을 느낀다.


그녀의 집에 몰래 들어오는 고양이를 드디어 내쫓지 않고 참치를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윗집의 층간소음은 가족은 재앙, 관계나 타인은 지옥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고 글로리아는 천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아래에서 처절한 고독감을 대마초를 피우며 견딘다. 몸서리쳐지는 극과 극의 비교다.


글로리아의 어머니가 글로리아에게 한 대사다. “세월이 쏜살같이 간다, 네 건강 챙겨.” 글로리아 어머니의 말이 늘 듣던 것과 아는 말임에도 와닿았다. 글로리아는 외국에서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어머니에게 SOS를 청한다. 글로리아의 어머니가 그녀가 씻은 후 물기를 닦아주자 가만히 있는데 마치 아기 같았다. 도움이 필요할 때 어머니에게 전화해야 할 사람은 정작 자신이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손이 징하게 많이 가는 동물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잠깐 느꼈고 돌봄을 수혈받은 글로리아는 앞으로 자기와 새 식구 고양이를 돌봐야 한다.


내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폭소했던 때는 “아빠, 저 말라깽이 아줌마 누구야?”라는 대사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야? Who are you?”


진정 어떤 사람이냐고 말이다. 누군가의 애인도, 엄마도, 딸도 아닌 “나? 글로리아 벨이야!”라고 외치는 영화다. 실제로 그 대사가 있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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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누군가는 '글로리아 벨'을 리메이크할 필요가 있었는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줄리안 무어가 중년기의 공허함과 휘청거림이 현실적으로 표현된 이 영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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