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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반어법] 원수 - 샤를르 보들레르

'악의 꽃' 시집에서, 황현산 번역

by 투명서재


[청춘의 반어법] 원수 - 샤를르 보들레르, 황현산 번역



악의 꽃

저자 샤를르 보들레르

출판 민음사

발매 2016. 5. 19.



원수



내 청춘은 캄캄한 폭풍우에 지나지 않았구나,

여기저기 찬연한 햇빛이야 몇 줄기 뚫고 들어왔지.

천둥과 비바람 그리도 모질게 휘몰아쳐

내 뜰에 빨간 열매 남은 것 별로 없다.



내 어느덧 사상의 가을에 다다르고 말았으니,

이제 삽과 쇠스랑을 거머쥐고

홍수 뒤에 무덤같이 커다란 웅덩이가 패여

물에 잠긴 이 땅을 다시 긁어모아야만 하리라.



누가 알랴, 내가 꿈꾸는 새로운 꽃들이

모래톱처럼 씻겨 나간 이 흙 속에서 신비로운 자양을

찾아내어 활력을 얻을 수 있을지 말지?



-오, 괴로움이여! 괴로움이여! 시간은 생명을 먹고,

우리의 심장을 갉는 정체 모를 원수는

우리가 잃는 피로 자라며 강성해지는구나!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내 청춘은 캄캄한 폭풍우에 지나지 않았구나,

여기저기 찬연한 햇빛이야 몇 줄기 뚫고 들어왔지.'



위의 두 줄을 소리 내어 읽고 눈물이 뚝! 떨어졌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눈물이 흐른 적은 드문데 당황스러웠습니다.


뭐 때문에 울었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제 청춘이 떠올라서였습니다.


20대에 '좋을 때다'라는 어르신의 말을 더이상 듣지 않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20대는 눈을 씻고 찾을래야 '좋음'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청춘에는 '좋음'보다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가는 '막막함'과 '애씀'만 남아있어서요.


시에서 말하는 '찬연한 햇빛'은 아주 잠깐 나를 비춰줬어요.


내가 일에서 성과를 낼 때, 인생의 기로에서 이 방향이 맞구나 싶을 찰나만 따뜻했습니다.


20대 시간의 나머지는 천둥과 비바람이 그리도 모질게 휘몰아쳤어요. 잠잠해지기만 기다렸습니다.


그 시절이 떠올라 뭉클했고 지금의 청춘들에게 잘 견디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찬연한 햇빛이 찰나더라도, 너는 잘자라고 있다'고.


'폭풍우가 너를 강하게 만들 거'라고.


'언젠가는 빨간 열매가 너의 손 위에 수북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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