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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Oct 08. 2022

세상 어느 손님보다 반가운 아들!

이불을 빨고, 구석구석 청소를 한다. 음식 리스트를 작성하고, 여행 계획을 짠다. 어디 안 좋은 냄새가 나진 않는지 괜히 코를 킁킁거리고 심지어 가구 배치까지 다시 고민한다. 마음이 설레어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이틀 후에 아들이 아부다비에 오기 때문이다. 세상 어느 손님보다 반가운 아들. 


우리 부부의 자녀계획은 ‘아들, 딸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게 2년 터울이면 딱 좋겠다 싶었다. 1998년 첫아들을 낳고 둘째를 기다리는데, 영 소식이 오질 않았다. 매달 한 줄 선명한 임신테스트기가 야속했다. 계획했던 2년 터울은 멀어져 갔다.

그러던 2000년 12월, 희미한 두줄을 보고 날 듯이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임신이었다! 그런데 의사는 초산도 아닌데 매주 검사를 하자고 했다. 산부인과가 썩 유쾌한 병원은 아니었지만, 둘째가 생겼다는 기쁨에 꼬박꼬박 날짜를 맞춰 열심히 갔다. 


임신 8주쯤 되었을 때, 의사 선생님은 올 것이 왔다는 듯이 "아이의 심장이 멈췄어요. 계류유산이에요. 너무 약했나 봐. 무리해서 낳았으면 엄마가 힘들었어. 자연스러운 자연의 섭리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요!" 하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검은색과 흰색의 흑백 사진으로 보였던 강낭콩 같은 생명체는 그렇게 나와 작별했다. 유산을 해도 똑같이 조리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소파수술을 한 다음날 지병으로 입원해계시던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 유산의 아픔은 묻혀버렸다. 모두들 나를 염려해주셨지만, 가슴 한쪽이 서늘했다. 유난히 장례식장 바닥이 뜨끈했다.


소파수술을 하면 자궁이 깨끗해져서 아이가 더 잘생긴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몇 달이 안되어 둘째가 들어섰다. 기뻤고 소중했다. 출산예정일은 2002년이니 형과 4살 터울이 되지만, 내 계획이 아닌 창조주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성별은 딸이었으면 싶었다.  "엄마 든든하겠어! 아들 둘이면 얼마나 든든한데!" 의사 선생님은 껄껄 웃으며 나를 위로했다. 역시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그렇게 둘째가 태어났다. 유난히 눈이 크고 목소리가 가냘팠다. 쌍꺼풀이 짙은 눈은 어두 껌껌한 방에서도 감았는지, 떴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너무 예뻐서 딸 노릇을 할 것 같았다.


아이가 6개월이 되어갈 즈음. 친언니 회사에서 일을 할 기회가 생겼다. 웨딩사진을 편집하는 일이었는데, 워낙 초창기 사업이라 편집 프로그램을 배워서 경력이 쌓이면 재택근무가 가능하다고 했다. 기회다 싶었다. 아이들을 시어머님이 맡아주시기로 하고 출근을 했다. 일은 재미있었지만 점점 집에 늦게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일이 좋다고 쫓아다닌 지 3개월쯤 된 어느 주말, 아이를 안고 이름을 불렀는데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어? 이게 뭐지? 뭐가 잘못됐는데?’ 정신이 버쩍 들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아이가 엄마의 목소리를 모르다니. 엄마가 이름을 불렀는데 반응하지 않는다니.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아이의 중요한 시간에 엄마의 자리를 비웠다. 이것을 어떻게 되돌린 단말인가. 내가 미쳤지. 눈물이 자꾸 흘렀다. 둘째를 생각하면 이 기억이 떠올라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다시 엄마로, 주부로 복귀했다. 바깥바람 쐰다고 좋아한 시간만큼 소중한 아이의 성장 기억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기고 안고 옹알이를 하고 한창 예뻤을 아이의 중요한 순간들이 기억나질 않는다.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가슴을 쳤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일을 그만두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더 늦지 않게 엄마 자리로 돌아올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아이는 건강해서 감기 한 번을 앓은 적이 없었고, 순하고 착했다. 하늘에서 비처럼 내렸으면 좋겠다고 할 만큼 레고를 사랑하고, 박스로 우쿨렐레를 만들 정도로 손재주가 좋다. 조잘조잘 말도 잘하고 붙임성도 좋은 아들은 주변을 즐겁게 한다. 입이 커서 웃는 모습이 시원시원하다. 셋째가 태어나서 중간에 끼어 형과 동생에게 치어도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게 밝게 컸다. 


그런 둘째가 아부다비에 온다. 아들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기만 한데 함께 보낼 시간들은 벌써부터 짧게 느껴진다. 10월 한 달은 아들 덕분에 행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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