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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Nov 27. 2022

나도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



나의 어렸을 적, 어머니는 참으로 뛰어난 이야기꾼이셨다. 무작정 상경한 삼모자녀(三母子女)가 차린 최초의 서울 살림은 필시 곤궁하고 을씨년스러운 것이었을 텐데도 지극히 행복하고 충만한 시절로 회상된다. 


어머니는 밤늦도록 바느질품을 파시고 나는 그 옆 반닫이 위에 오도카니 올라 안아서 이야기를 졸랐었다. 어머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을뿐더러 이야기의 효능까지도 무궁무진한 걸로 믿으신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심심해할 때뿐 아니라 주전부리를 하고 싶어 할 때도, 남과 같이 고운 옷을 입고 싶어 할 때도, 친구가 그리워 외로움을 탈 때도, 시험 점수를 잘 못 받아 기가 죽었을 때도, 어머니는 잠깐만 어쩔 줄을 모르고 우두망찰을 하셨을 뿐, 곧 달덩이처럼 환하고도 슬픈 얼굴이 되시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나의 아픔을 달래려 드셨다..... 내가 아직도 소설을 위한 권위 있고 엄숙한 정의를 못 얻어 가진 것도 ‘소설은 이야기다’라는 소박한 생각이 뿌리 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싶다. 남이야 소설에도 효능이 있다는 걸 의심하건 비웃건 나는 나의 이야기에

옛날 우리 어머니가 당신의 이야기에 거셨던 것 같은 효능의 꿈을 꾸겠다. 

                                                                              -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중에서 -    

 



 고교시절의 기억 속 한 날이 떠오른다. 나는 빈 칠판 앞에 서있었고, 몇몇 친구들이 앞자리에 쪼르르 모여 앉았다. 나는 분필을 들고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풀어냈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웃었고,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이 탄력을 받아 머릿속에서 줄줄이 이어 나왔다.  아침 조회가 끝나면, 눈을 떠서 학교에 오기까지의 단조로운 일상을 갖가지 감탄사와 느낌표로 버무려 쏟아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었으나 매일 다른 느낌으로 얘기할 수 있었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벌어졌나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그 잡담이 오가는 시간은 힘든 수험생 시절의 오아시스였다.  이야깃거리가 없으면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소설을 지어내기도 했다. 듣는 이가 없어도 혼자서 떠들어댔다. 그러고 보니 그 시절 나는 발표하는 것도 신나고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는 것도 재미날 정도로 말하기를 즐기는 아이였다.       



나이를 먹고 성장하면서 우스운 잡담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많으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되고, 말실수가 생기며, 대화의 주제가 다른 사람의 뒷담화로도 이어졌다. 점차 입을 다물게 되었다. ‘굳이 이런 말을 해서 무엇하랴, 말을 가려가며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과묵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어색한 상황을 못 이겨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은 없도록 스스로를 단속했다. 한데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할 말이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지금은 아부다비의 생활이 적적해서 그런 것이기도 하거니와 일상이 단순하니 꾹 다문 입이 쉬이 벌어지지 않는다.     


아부다비에 와서 글쓰기를 접하게 됐다.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것을 전혀 연관 짓지 않았다. 글은 입이 아니라 머리와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닌가? '글쓰기란 생각을 정리하고, 정리된 것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라는 정의는 매우 합당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니 말과 상관없이 글쓰기를 배우면 뭔가를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글에 대한 귀한 강의를 들었고, 직접 글을 써봤다. 무엇을 어떻게 왜 누구에게 써야 하는지 머리로는 알겠으나, 아뿔싸! 할 말이 없으니 글로 풀어낼 생각도 떠오르질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어찌 구성하고, 어찌 표현할까를 고민하는 것은 그다음 문제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머릿속이 먹먹했다. 결국 할 말이 많은 사람이 쓸 말도 많은 거였다.     


 

박완서 작가의 ‘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싶다.’‘소설은 이야기다’라는 글귀에 자꾸 눈길이 머무른다. 나도 그러고 싶은 거다. 누군가를 이야기로 웃기고 울리고 위로하고 달랠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할 말도 많고, 해 줄 말도 많고, 할 수 있는 말도 많은 이야기꾼이 됐으면 좋겠다. 쓸데없고 영양가 없는 허접한 이야기라 여기지 않고 내 이야기를 오롯이 쏟아낼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소싯적 잡담꾼의 재능이 어딘가에 잠자고 있다면 끄집어내어 다시 재잘거리고 싶다. 백지 위에 쏟아놓고 싶은 무수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샘솟는 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손가락 끄트머리가 아프도록 머뭇거림 없이 키보드를 두들길 수 있는 뛰어난 이야기꾼이 나도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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