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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Jan 30. 2023

에너지 대란에 우리도 포함인가요?

경향신문 토요판 '다른 삶' 2023년 01월 28일 연재


이번 유럽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도 힘겹다. 판데믹을 지나며 나타난 기록적인 인플레이션과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럽은 이례 없이 어두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전염병, 테러, 전쟁 등등 어릴 적 역사책에서나 본듯한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21세기 유럽에서 첫 번째로 발발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러시아의 에너지에 의존하던 유럽의 모든 것들을 바꿔놓았다. 뉴스로 매일 긴박하게 전해 듣던 소식들은 텔레비전을 넘어 우리의 현실, 모두의 일상 바로 앞까지 왔다. 그저 막연하기만 했던 '에너지'라는 개념이 이제는 눈치도 보지 않고 매달 꾸준히 전기세, 난방비라는 이름으로 월급을 열심히 고갈시킨다.


2022년 한 해 동안 독일에서는 기름, 전기, 가스 등 모든 종류의 에너지 비용이 크게 올랐다. 판데믹 사태가 시작되고 나서도 큰 변동이 없었던 자동차용 휘발유는 평소처럼 리터당 1,4~1,5유로(대략 1800원~2000원 사이)를 유지했다. 그 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2022년 3월 2,2유로(대략 3000원 정도)를 상회했다. 전기요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달리 전기 공급 업체가 여러 군데가 있는 독일에서는 전기 공급의 형태가 여러 가지라 그에 따른 공급 가격도 다양하다. 어떤 회사는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기를 주로 공급하고, 어떤 회사는 풍력과 수력, 원자력 등, 선택권이 다양한 만큼 이번 에너지 대란을 맞는 소비자들의 체감온도도 매우 다양하다. 그럼에도 2022년 12월 기준, 독일의 킬로와트시 당 요금은 대략 257유로로 전년도 대비 16% 상승하였다고 한다.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노드스트림'이 원인 불명의 이유로 폭발된 2022년 8월에는 킬로와트시 당 요금이 470유로까지 치솟았었다. 가스도 마찬가지다. 판데믹을 뛰어넘는 위기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되어 2022년 가정으로 공급되는 가스 요금은 대략 16%~17%가 올랐다.


뉴스에서 쏟아내는 수치들보다 먼저 피부에 와닿는 것은 역시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다. 누구네는 20%가 인상됐다는 고지를 받았다는 둥, 누구네는 난방비로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둥, 에너지 대란은 소리 없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먼저 연락을 받았다는 이웃들을 보며, 대체 우리는 얼마나 감당해야 할까, 언제쯤 소식을 듣게 될까, 불안감이 맴돌았다. 굳이 뉴스에서 2022년 독일의 물가 상승률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라는 소식을 듣지 않아도, 집 앞 마트에서 우리 가족은 이미 빠르게 오르는 물가의 변화를 너무나 느끼고 있었다. 그 와중에 생활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에너지 비용까지 대폭 그렇게 오른다니, 대체 어떻게 겨울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졌다.


독일정부는 그에 따라 다양한 지원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책 중 하나는 대중교통 비용의 '파격할인'이다. 우리 집은 연간 정액권을 이용하는데, 1년 동안 계약을 지속한다는 조건으로 월간 정액권보다 더 할인된 가격인  월 60-70유로를 다달이 지불하는 형식이다. 작년 여름 3개월 동안 월 60-70유로선의 대중교통 정액권을 9유로권으로 파격할인을 했다. 대략 8~9만 원 하던 비용이 1만 원 언저리가 된 것이다. 심지어 이 대중교통 정액권으로 독일 전역을 다닐 수 있어서 잘만 연결하면 근교의 나라들까지 '9유로 티켓'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 특히나 빛나는 독일의 여름날씨와 함께, 판데믹에 답답했던 사람들의 일상을 아주 풍요롭게 바꾸어 놓았던 이 대책은 그 후에도 선거에서 회자될 만큼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은 그 당시 9유로 티켓으로 어디까지 가봤는지 sns에 인증하기도 했다. 그리고 약속한 3개월이 끝날 때쯤 다시 원래의 가격대인 60-70유로대로 티켓이 정상화되는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그에 따라, 지방정부의 권한으로 할인이 이후 얼마동안 계속되는 지역도 있었다고 한다. 베를린의 경우, 9유로 파격할인 후 49유로로 올랐다가 지금은 3개월 동안 29유로로 할인되고 있다. 물론 3개월이 지나면 또 얼마가 될지는 알 수가 없다. 원래 내던 60-70유로가 정상금액인데도 한 번 할인을 받아보니 정상금액으로 낸다고 생각하면 괜히 아깝게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물값과 전기, 가스비등 기본 생활비가 비교적 저렴했던 독일에서 그 가격이 몇 배로 오른다는 것은 가정경제에 전반적으로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올 겨울을 걱정하며 최대한 난방을 안 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대부분의 기존 건물은 바닥난방이 아니라, (독일에서도 요즘 신축건물들은 바닥난방이 대세이다.) 창문 근처에 부착된 하이충(Heizung, 한국식으로는 라디에이터)을 통해 공기를 데우는 방식으로 난방을 한다. 그러니 어떻게 난방을 하더라도 한국처럼 뜨끈하다의 느낌은 없는 곳에서 난방을 줄인다는 것은, 실내에서 옷을 더 입는 것은 물론 따뜻한 물주머니까지 끌어안고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안 그래도 따스한 햇빛도 없어 으슬으슬 추운데, 대체 어디서, 얼마나 더 아껴야 하는 걸까 감이 오질 않는다.


한국에서 '난방텐트'를 공수해 왔다는 한국가정을 보며, 우리 가족도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번 한국행에서 하나 구입해 왔다. 본격적으로 추위가 몰려오기 전, 부랴부랴 텐트를 설치하고 요령을 익힌다. 난방비의 상승은 난방뿐만 아니라, 온수 사용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아이가 태어난 뒤, 부족하지 않게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시키던 것도 이제는 옛말이다. 욕조에 물을 받는 것도 횟수를 줄이게 되고,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간단한 샤워만 하는 날이 많아졌다

 

벽난로가 있는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산책하면서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모은다고 한다. 그런 얘기들을 들어서인지, 우리 가족도 산책을 하다가 장작을 밖에 가득 채워놓은 집들을 마주치면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브란덴부르크의 한적한 마을의 주택에 사는 지인의 가족은, 이번 겨울을 나기 위해 장작을 모으는 것은 물론 난방을 위해 집을 대대적으로 수리 중이라고 한다.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이라고 낭만적이라는 표현보다, 전시 상황을 떠올릴 정도로 기름과 전기, 가스 등을 배제한 난방을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그는 베를린에 사는 우리 가족의 걱정을 더 했다. 요즘 한창 다시 보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도 이 정도면 호들갑이 아니다. 겨울 전에 연탄을 가득 채우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정말 과거로 돌아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독일 정부는 2022년 12월 난방비를 지원한다고 한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놓고 아직도 갑론을박 중이지만, '가장 추운 1달의 난방비를 지원한다'라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소식이다. 그리고 공공기관의 실내난방온도를 내린다고 한다. 온수풀이 있는 수영장은 문을 닫거나 예전보다 추워졌고 심지어 일반수영장의 경우 네오프렌안축(Neoprenanzug: 팔과 다리까지 덮는 수영복, 아예 긴 팔보다는 운동성을 위해 반팔을 더 추천한다고 함)을 입기를 추천한다. 모든 공공기관의 실내온도를 내리는 와중에 다행히 킨더가르텐(유치원)의 온도는 예전과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덕분에 아이들은 그 어느 곳보다 킨더가르텐에서 따듯하게 보낼 수 있다. 우리 아이의 경우에도 낮잠시간에는 반팔티와 팬티만 입고 잔다. 집에서 못해주는 거 거기서라도 해주니, 그저 고마울 다름이다. 에너지 절감을 위해 정해진 우선순위 중, 아이들의 교육기관이 가장 나중이라는데, 아이들의 이 우선순위만은 지켜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렇게 쭉 쓰다 보니 불편하고 가혹한 일상처럼 느껴질까 도리어 염려가 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인류의 영장이자 적응의 동물 아닌가. 막상 적응이 되면, 그러려니 넘어가는 부분이 많다. 게다가 환경문제에 예민한 독일정서가 있다 보니, 지금이 오히려 지구를 위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일상 속, 간단한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에 겁내지 않는 것은 오히려 '지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플라스틱보다 무거운 유리병을 선택하고 환경을 위해 채식주의자를 선언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제야 돌아보면, 에너지 문제는 하루 이틀은 물론, 몇 년 된 문제가 아니다. 다만 현실로 닥치니 뭐라고 당장 노력하지 않으면 앞으로 정말 어려워지겠구나 실감한다.


독일은 재생에너지에 대해 꾸준히 노력해 온 나라 중 하나이다.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차곡차곡 실행에 옮긴다는 이들도 우리가 몇 년 동안 겪어온 '전쟁, 재해, 천재지변'등, 보험 계약서에서나 본 듯한 상황들을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비단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부터 모두의 문제였다. 베를린 외곽으로 향할 때마다 고속도로에서 마주치는 풍력발전기는 그저 '풍경'의 일부였다. 평소에 보기 힘드니 유난히 호들갑을 떨며 사진을 찍고 구경을 했던 이 풍력발전기가 실은 재생에너지의 중요한 일부분이라니, 그간의 무지함이 부끄러워진다. 전기 요금 역시, 다달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그 금액만 주목했을 뿐, 그 전기가 어떤 경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혀 관심 없었다. 이제는 생활비를 위해서라도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우리만의 의견을 가져야 할 때가 진정으로 온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예측 못하는 일은 말 그대로 '예측불가'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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