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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Jul 17. 2023

호숫가에서 수영을?

경향신문 토요판 '다른 삶' 2023년 07월 15일 연재

아내는 수영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물과 친하게 지낸 탓도 있지만, 물과 노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친구들 중에도 수영을 즐기는 분들이 많고 함께 수영장에 놀러 가기도 한다. 반면 난 어릴 때부터 물과 친하지 않았다. 특별히 수영을 배운 적도 없었다. 아주 어릴 적, 이웃 친구들이 수영장에 다닌 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나는 굳이 나도 다니고 싶다고 조르지는 않았다. 지금도 당연히 물에 뜨지 못한다.


물과 친한 아내는 베를린에 살기 시작한 이후 줄곧 수영할 수 있는 호숫가에 관심이 많았다. 덕분에 혼자였으면 평생 갈 일이 없었을 베를린의 호숫가에 아내와 함께 가보고 하며 새삼 독특한 경험들을 한다. 보통 '호수'라고 하면 숲이나 공원과 어우러져 멀리서 관망만 하는 하나의 조경의 요소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베를린에는 특정기간 동안 수영을 할 수 있는 호수들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너무나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호수를 다양하게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베를린시에는 43개의 호수가 있다. 그중 수영이 가능한 호수는 총 20개로 시 전역에 걸쳐 있다. 물론 수영이 가능한 호수는 정기적인 점검을 거쳐 수질을 유지한다. 베를린시에 위치한 호수들에서 공식적으로 수영이 가능한 기간은 5월 15일부터 9월 15일까지이다. 이 네 달 사이일지라도 정기적인 수질 검사로 수영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 수영을 금지하기도 한다. 그러니, 수영을 할 줄 안다면, 그리고 베를린에 머무는 시기가 5월부터 9월 사이의 여름이라면, 호수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사람들이 유유자적 노니는 호숫가에 함께 떠다디는 오리들을 보면 그 수질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현재 수영이 가능한 호수가 어느 곳인지는 베를린시 홈페이지에서 항상 확인 가능하다.(https://badestellen.berlin.de) 호수의 수질에 대한 평가 이전에, 누군가가 호숫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일괄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사용자는 충분히 안정감을 느낀다.


우리 가족이 가장 자주 방문하는 호수는 크루메 랑케(Krumme Lanke)이다. 베를린의 지하철 3호선의 남서쪽 종점으로 동명의 지하철 역에 있기도 하다. 지하철 역에서 숲 속으로 1킬로미터 정도 걸어야 하는 이 호수는 동서로 기다린 바나나처럼 생겼다. 덕분에 호숫가의 모양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로 사람들은 조깅도 즐기고 산책도 즐기며 자전거도 탄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호숫가를 해변가처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근처에서 다양하게 야외활동을 즐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소의 분위기만큼이나 여유롭다. 무언가 대단한 장비나 복장을 걸친 사람들보다 이 동네 어딘가에서 슬리퍼를 신고 산책을 나온 듯한 느슨하다. 산책로의 중간에는 비어가르텐(Biergarten)이 하나 있다. 간단한 먹거리도 있지만, 말 그대로 맥주 한 잔 야외에서 즐기는 장소이다. 주말에는 조식뷔페도 한다고 하니, 요일별 이 장소의 성격을 그대로 말해주는 듯하다.


날씨가 좋은 여름날이면 호숫가 저 멀리부터 맨발로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이미 집에서 수영복만 입고 나선 사람들, 햇살을 째기 위해 잔디밭에 누운 사람 등등, 여름의 호숫가에서 으레 볼 수 있는 장면들이 너무나 신기했다. 햇살에 반짝이는 호숫가 위를 여유롭게 둥둥 즐기는 사람들. 대체적으로 호숫가에는 제대로 된 수영을 하는 사람보다 유유자적 두리둥실 떠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조그마한 튜브를 든 아장아장 걷는 아이부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어르신들, 무리 지어 놀러 온 20대들, 여러 세대가 섞인 가족단위의 방문객들 등,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장면들을 마주한다. 사실 가족들의 모임이라 봐야 그저 미각을 위한 모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가족들끼리 모두 만나 호숫가에서 수영을 즐긴다니, 이 생각마저 유럽스러울 뿐이다. 생각에 빠진 사이, 저 멀리 제법 높은 나무 위에서 깔깔거리며 서로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의 풍덩 소리가 들린다.


얼마 전, 아무런 계획이 없는 휴일에 가족과 집에서 가까운 호숫가로 향했다. 늘 있는 일인 듯 필요한 살림을 가져와 노는 아내와 아이를 한참 보고 있었다. 한가롭게 뒤로 누워 저 멀리까지 휘휘 팔을 뒤로 저어 떠 다니는 어르신을 보며 한가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와 한참을 앉아있다 다시 들어가고를 반복하신다. 가끔 간식을 드시기도 하고 읽다 만 책을 이내 다시 보시곤 하신다.


나는 아내와 데이트를 하며 베를린의 호숫가를 처음 가봤다. 이 전에 살던 바르셀로나에 사는 동안에도 바닷가에 굳이 가질 않았으니, 그리고 그렇게 물과 멀리 살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무엇보다 호숫가의 조용한 여유로움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깔깔거리며 일행들과 노는 모습을 보는 나 자신이 어색했다. 호숫가와 관련된 즐거운 기억 자체가 없으니, 공감자체가 불가능하다.  


한편, 부모의 ‘물’에 대한 기억은 육아에도 이어진다. 나 같으면 호숫가를 갈 생각은커녕 간다는 사람도 말릴 텐데, 아내는 날씨 좋은 베를린의 여름 내내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와 호숫가로 향한다. 가벼운 차림으로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겨 가고, 도착해서는 맨발로 흙을 밝으며 물놀이를 즐긴다.


이렇다 할 샤워장은커녕, 화장실도 미리미리 준비 헤어 할 자리에 있다. 서둘러 준비하지 않으면 노상방뇨다. 맨발의 슬리퍼 사이로 흙이 스며들지만, 어릴 적 장마철 놀이터에서 놀 떼처럼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니 깔끔함과 통제에 살짝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저 조경의 한 요소로 호수를 관망하며 즐기는데 가장 좋다. 바로 나처럼.


우리 첫째 아이는 다행히 물을 좋아하는 엄마 덕에 어릴 때부터 물과 꽤 친하게 지냈다. 제대로 된 실내 수영장부터 집 근처의 호숫가까지 두루두루 다니곤 했다. 아직 제대로 된 수영에 대한 개념은 없지만 물에서 첨벙첨벙 노는 것을 좋아한다. 양팔에 튜브를 낀 것도 모자라, 몸에까지 튜브를 둘러대지만, 이 아이는 여전히 물에 뜨는 것에 대란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금년 여름엔 아내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가족이 함께 실내 수영장도 다녀왔다. 도심에서 몇 시간 떨어진 대규모 실내 수영장부터 어느 동네의 복합 체육시설에 붙어있는 수영장까지, 한국에서 물놀이를 좀 해본 사람이라면 실내판 캐러비안 베이와 88 체육관을 떠올릴 것이다.


깔끔하다 못해 정갈하기까지 한 실내 수영 시설들은 당연히 여러 부대시설을 포함한다. 탈의실 및 샤워시설은 물론 각종 식당가까지, 하루 물과 노는데 필요한 모든 시설들이 준비되어 있다. 1인당 입장료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편리함이라는 단어로 물놀이를 정의한다면 사실 호숫가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멀리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시내 가까운 곳에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호숫가와는 확연히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물과 친하게 지낼 자신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쁜 일상 속 도심에 위치한 호숫가는 확실한 베를린의 매력이다.


호숫가에 일행이 모여 앉아 하하 호호 노는 20대의 무리를 보며, 나의 20대와 너무 다른 모습에 예전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저 지하고 지상이고, 이성교제에 대한 관심과 알코올이 포함된 음료에 대한 소비가 머릿속을 지배하던 나의 20대와는 완전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우리 아이도 이곳에서 자란다면, 저런 기억을 가졌으면 하는 아주 아주 이른 기대를 해본다. 친구들과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며, 컴컴한 대도시의 지하에 위치한 술집에서 알코올에 취하는 것이 아닌, 이곳의 청년들과 비슷한 청춘의 모습을 가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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