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생 대학 후배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작년 여름이었다. 한국에서 뒤늦게 대학공부를 마치겠다고 학교에 다니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같이 수업을 듣는 후배들보다 나이가 많다 못해 교수들도 후배로 만들어 버리는 자신에게 유독 살갑게 굴던 후배가 독일로 교환학생을 간다고, 혹시나 모르니 나의 연락처를 건네줘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대화 중 그가 몇 살 정도라고 들었지만 사실 몇 살 차이 정도가 아니어서 그가 몇 년생인지 들어도 들어도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연락처를 주고받고 몇 마디 나눈 뒤 한참의 시간이 또 흘렀다. (언제 독일에 도착하나요, 얼마나 있는 건가요, 어디를 여행 가고 싶나요 등등 정말 누가 물어도 물어볼듯한 이야기만 나눴다.)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 봄이 올까 말까 하던 2월,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6개월의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베를린에 들른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우리 아이를 임신한 사이에 이렇게 종종 지인들을 만나야 할 때마다 우린 그냥 편하게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이번에도 역시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약속을 잡아 놓고부터 문득 걱정이 됐다. 나와 13살 차이인 그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그는 어떤 것들에 관심이 있는지, 막상 서먹서먹하면 어떻게 하나 등등. 그러다 나는 반대로 내가 만약 13살이 많은 선배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흠.. 나와 13살이 차이나는 선배라면 영화 1987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 환경에 "대학 신입생"이었을 사람이다. 이한열 열사처럼은 아니었어도 전두환과 노태우의 시대에 공부를 한 사람이었으리라. 그렇게 20대를 보낸 그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변해있을까. 아니지, 어떤 아저씨가 되어 있을까. 뭐 아무리 포장을 해도, 또 의미를 부여하려 해 봐도 여전히 그 식사 자리 자체는 어렵고 서먹서먹한 자리일 것이다.

내 생각에 우리 집에 오는 후배 S는 그런 대단한 생각이 아니라 '그래도 한국에서부터 건네받은 연락처인데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한 번쯤 얼굴이라도 봐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연락한 것 아닐까 싶다. 거기에 마침 베를린에 몇 년째 살고 있다니 그 생활이 궁금하기도 한 것일 테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87학번 선배보다 조금만 다 부드럽자고 다짐했다. 최대한 덜 아저씨이고 싶었다.


오늘날의 20대, 흔히 이야기들 하는 ‘90년대생’에 대한 파편적인 모습들은 이런저런 경유로 접해왔다. 여러 가지 단어들로 묘사되는 이 세대는 사회적인 환경만 봐도 좀 남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뭐 물론 미국 영화에서 자주 화두 되는, 그들이 '승리'한 세계전쟁 정도의 자극이 아니더라도 '88 서울 올림픽 붐' 이후의 세대가 아닌가. 그렇지만 앞의 세대가 누린 만큼의 폭발적인 경제 호황을 직접 겪지는 못한.

'올림픽 붐'이란 금기어를 꺼낸 김에 좀 쏟아내자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 미국, 그리고 유럽에 이르기까지 각 나라마다, 각 대륙마다 경제적 황금기를 맞이한 배경과 시기는 모두 다르다. 건축과도 꽤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제 호황은 특정 시기의 건축물들에 그 시대의 사회 상황을 각인한다. 내가 브런치에서 자주 언급한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의 스페인은 유로존에 가입하며 경제적 호황이 시작돼 말도 안 되는 실험적인 건축들의 향연이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아쉽게 지금은 공모전의 씨도 말라버렸지만 말이다.) 그 시기에 배출된 젊은 건축가들, 현재 40대에서 50대가 된 많은 이들은 지금 화려한 시대를 등지고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학생 때 책으로 접한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부지기수의 미술관, 박물관 등의 문화시설을 지었다. 참 특이한 시기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7~8할은 집과 사무실인데 말이다. 책으로 열심히 접하고 열심히 따라 하며 꿈꿔왔지만 사실 우리 세대에 미술관을 경험한 건축가는 극히 제한적이다. 건축가들끼리 농담으로 '세상에 지어질 미술관, 박물관'은 벌써, 진작에, 이미 다 지어졌다.

한국의 나의 은사님 중 한 분은 올림픽 이후의 경제 붐의 끝자락을 잡으신 분이다. 94년인가 95년 즈음에 자신의 사무실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중간에 IMF사태가 있었지만 그는 전반적으로 누릴 수 있을만한 것들을 많이 누렸다고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 그에게 참으로 너그러웠던 은행과 여기저기 널려있던 자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의 리뷰를 듣는 것 같다.

나와 같은 1980년 대생들은 유신세대 이후에 태어난, 1990년 대생들이 겪는 침체기 전의, 제법 안정된 시기를 지난 세대다. 내가 2007년 대학을 졸업할 당시 졸업생 중 어느 누구도 취업에 대해서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리만 브라더스 사태는 IMF에 비하면 제한적이긴 했다.) 단언컨대, 대학 동기들 중 가장 멍청한 사람은 나였다. IMF 이후 꺼져버린 건설붐으로 인해 '건축공학과'의 인기는 참으로 보잘것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커트라인이 낮았고 비인기 학과로 전락해버린 탓에 내가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이곳에 쏟아내는 이야기들을 딱히 들을 만한 곳도, 이야기해줄 사람도 없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23살의 복학생에게 이야기해줄 만한 부모님 세대는 그냥 아무거나 해도 괜찮을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며 같이 사회에 진출한 친구들의 아이들은 벌써 많이 성장했다. 우리 앞에 부모님 세대가 그러하셨듯 모두들 그렇게, 다들 비슷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이 정도만 봐도 1980년대 생들이 1990년대 생들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도리어 내가 나의 앞 세대에게 약간 투정을 부리듯 그들도 우리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님 세대도 아닌 삼촌뻘의 세대가 세대 간 갈등의 상대가 되어버린 지금, 과연 현재 20대가 마주한 현실을 그들만큼 절박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을까.


망상의 나래를 지나 약속 날이 되어 후배 S가 집으로 왔다. 앳된 외모만큼이나 그에게서는 참 20대의 풋풋함이 느껴졌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상견례를 위해 한국에 갔을 때 나는 지금의 아내를 데리고 내가 20대의 대부분을 보냈던 대학교에 데리고 간 적이 있다. 그녀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인 30대의 나 말고 20대의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 오랜만에 들른 캠퍼스에서 본 눈빛들이 잊히지 않는다. 무언가 다들 또렷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후배 S의 눈빛이 좀 그랬다. 그는 호리호리하지만 뚜렷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그 눈빛을 보는 순간 기분이 너무 좋았다. 20대의 내가 떠올라서 일수도, 혹은 부러워 일수도, 혹은 멋져 보여서 일수도 있다.


걱정과 달리 저녁 자리는 참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자잘하고 시시 껄껄한 이야기부터 진지한 이야기들까지 참 많이도 떠들었다. 나도, 아내도 평소 마주치기 힘든 자리를 한 것 같아 집까지 와준 그에게 참 고마웠다.

그 날의 만남 뒤로 종종 그에게 난 안부 문자를 한다. 가끔 브런치에서 그의 또래에 대한 글을 볼 때마다 그가 생각난다. 잘 지내고 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말이다.

하긴 또 모를 일이다. 그가 그의 친구들에게 가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를 쓸데없이 진지한 이야기만 하는 완전한 꼰대로 묘사할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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