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작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2020년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책이 궁금해져 찾아 읽기 시작했다.
오늘의 책은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로, 스웨덴 한림원 선정 사유를 "개인적 기억의 집단적 억제, 소외, 근원을 파헤친 그의 용기와 냉철한 예리함"이라고 발표했다.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는 작가 자신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자전적 에세이로, 가족과 계층, 그리고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탐구한 작품이다.
짧지만 강렬한 이 책은 에르노 특유의 사실적이고 분석적인 문체로 쓰여, 그녀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은 작가가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시작된다. 에르노는 아버지의 생애를 되돌아보며, 그의 삶의 궤적과 자신과의 관계를 탐구한다.
아버지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성장했고, 이후 공장 노동자, 술집 주인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계층적 위치와 사회적 한계를 깊이 인식하며 살았다. 아버지는 종종 "존경받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했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이 속한 계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거의 하지 않는 인물이다.
에르노는 자신이 성장하면서 느꼈던 아버지와의 거리감, 그리고 계층적 이동으로 인해 생겨난 심리적 단절을 고백한다. 그녀가 대학에 진학하며 아버지와의 세계가 점점 달라지게 되고, 이는 부녀 관계에 미묘한 긴장감을 가져옴을 느낀다. 아버지의 언행과 태도는 종종 그녀에게 계급적 한계를 상기시키는 요소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둥이 된다.
나는 천천히 쓰고 있다. 사실과 선택의 집합에서 한 인생을 잘 나타내는 실타래를 밝혀내기 위해 애쓰면서, 조금씩 아버지만의 특별한 모습을 잃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글의 초안이 온통 자리를 차지하고, 생각이 혼자 뛰어다닌다. 반대로 기억의 장면들이 슬며시 미끄러져 들어오게 두면, 아버지의 있는 모습 그대로가 보인다. 그의 웃음, 그의 걸음걸이, 그가 내 손을 잡고 장터에 데려가고, 나는 놀이 기구를 두려워한다. 다른 이들과 나눴던 상황의 모든 조건들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나는 매번 개인적이라는 함정에서 빠져나온다. (p.40)
그는 내가 온종일 그들에게 굳은 얼굴을 하고 책 속에 빠져 기분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신경질을 냈다. 그는 저녁에 내 방문 밑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내 건강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공부는 좋은 환경을 얻고 노동자와 결혼하지 않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내가 머리를 쥐어짜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는 이상하게 여겼다. 꽃다운 나이를 살지 못하는 것이니까. 때때로 그는 내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p.73)
『남자의 자리』를 읽으면서, 프랑스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서와도 맞닿는 부분이 많아 놀라움을 느꼈다. 이는 산업 발달로 인해 부모와 자식 간에 계층적 변화가 발생하는 과정이 프랑스를 넘어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경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보편성이 독자들에게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다가오게 한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나의 기억 속에 아버지의 삶은 어떠했는지 기록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