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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쁘삐 Mar 07. 2023

13. 허브가 처음이라면, 바질.

바질(Basil) 키우기

페트(PET) 화분으로 허브를 키울 수 있을까

내가 초등학교 5학년쯤 담임선생님께서는 '방울토마토 키우기'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도입하셨다. 봄이 되자 선생님께서는 교실 창가에 일렬로 놓인 페트병 화분에 방울토마토 씨앗을 한 꼬집씩 심어주셨고, 아이들의 마음에는 자연의 소중함(과 더불어 작은 경쟁심..)을 심어주셨다.


나는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리는 텃밭이 있는 집에서 자랐음에도, 내 번호가 적힌 생수병 화분의 방울토마토는 잘 키워내지 못했다. 햇볕과 바람 등등 생육환경이 거의 동등한데도 화분마다 방울토마토 성장속도가 다르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 의아함은 답답함으로 번져, 제일 폭풍성장 중인 방울토마토 주인을 찾아 비결을 묻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친구의 비결은 단순했지만 파격적이었다.


???: "마당에 있는 지렁이 가져와서 흙에 풀어넣었는데?"


그렇다. 그는 떡잎부터 다른 영농후계자였던 것이다..


아 물론 그가 지금 영농업계에 종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작 영농계의 마이너스손이던 나는 시간이 흘러 식집사가 되었다. 사람에 지쳐버린 마음을 둘 곳이 없어 식물을 키우기로 결심하던 해에 나는 실패의 역사를 딛고 다시 페트병 화분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렁이 한 마리 없이(!) 그 화분으로 잘 키워낸 허브가 있었으니, 바로 바질이었다.


(친구야 보고 있냣!)


탄산수 페트병으로 텔레토비 화분을 만들었다.


바질은 씨앗부터 키웠다. 탄산수 공병을 잘라 화분 하나에 씨앗 3-4개를 심고 바질 잎이 손 한 마디 크기로 자랄 때까지 사용했다. 투명한 페트병 화분은 육안으로 흙의 과습여부를 빨리 파악할 수 있어 당시 새내기 식물집사였던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 식물이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는 뿌리의 건강을 위해 페트병화분은 임시 화분으로만 권장되는 편이다.

(뿌리가 직사광을 받으면 뿌리가 줄기처럼 기능하게 되어버리고 성장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토실토실 잘 자라던 바질이들


바질은 작은 페트병 안에서도 빠르게 성장해서 금세 더 큰 페트 화분으로 합쳐서 심어야 했다.


지렁이 없이(!), 여름날의 햇볕과 적당한 환기 만으로도 허브를 키울 수 있다니. 허브살식마에게 바질은 천사다.


쑥쑥 자라는 바질만큼 점점 자신감이 자라난 나는 주변에 기특한 바질을 전파하고 싶은 나머지 번식법을 알아보게 되었고, 겁도 없이 '물꽂이'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물꽂이: 줄기를 잘라 물에 담가두어 뿌리를 내리는 기법

바질은 물꽂이도 잘되는 편이다.


물꽂이를 했더니 국수 소면을 만들어버리는 바질이었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바질은 줄기를 잘라 물에 꽂아두면 바질바질이 되고 바질바질바질바질이 된다.


뿌리를 새로 내린 바질은 다시 심어주고 또 잡아먹었다. (무한반복)


늘어난 바질은 주변에 분양해 주거나, 틈틈이 잡아먹었다. 덕분에 카프레제 샐러드를 한 껏 먹었던 여름.



바질 키우기 90일째.


바질이 나무젓가락 길이만큼 자랐다.

(+ 여전히 페트 화분이다.)


순백의 바질꽃


바질 키우기 240일째.

새하얀 바질 꽃이 피었다.


바질 꽃과 바질 씨앗

새하얀 꽃이 진 자리에서 씨앗 하나를 얻어,

그리고 새싹


그 씨앗으로 다시 싹을 틔웠다.




인쁘삐(IN-FP).

1995년에 태어나 24살부터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직업적성검사를 새로 했더니 개그맨이 나와서 결국 못 그만두고 다니는 사람.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욕심이 항상 드릉드릉 가득하지만, 사람 많은 곳은 싫어하는 전형적인 INFP.

먹는 식물은 죄다 죽이고 못 먹는 식물은 세상 잘 키워내는 능력치 애매한 식집사.

직장생활 꽤나 힘들어하고 일도 잘 안 맞는데 나름 또 정년퇴직은 하고 싶어서, 숨을 얕게 쉬며 회사를 다니는 20대 직장인.

어느 날 문득,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사람인지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동안 마주했던 순간들을 털어놓으며 나를 이해해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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