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Basil) 키우기
페트(PET) 화분으로 허브를 키울 수 있을까
내가 초등학교 5학년쯤 담임선생님께서는 '방울토마토 키우기'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도입하셨다. 봄이 되자 선생님께서는 교실 창가에 일렬로 놓인 페트병 화분에 방울토마토 씨앗을 한 꼬집씩 심어주셨고, 아이들의 마음에는 자연의 소중함(과 더불어 작은 경쟁심..)을 심어주셨다.
나는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리는 텃밭이 있는 집에서 자랐음에도, 내 번호가 적힌 생수병 화분의 방울토마토는 잘 키워내지 못했다. 햇볕과 바람 등등 생육환경이 거의 동등한데도 화분마다 방울토마토 성장속도가 다르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 의아함은 답답함으로 번져, 제일 폭풍성장 중인 방울토마토 주인을 찾아 비결을 묻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친구의 비결은 단순했지만 파격적이었다.
???: "마당에 있는 지렁이 가져와서 흙에 풀어넣었는데?"
그렇다. 그는 떡잎부터 다른 영농후계자였던 것이다..
아 물론 그가 지금 영농업계에 종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작 영농계의 마이너스손이던 나는 시간이 흘러 식집사가 되었다. 사람에 지쳐버린 마음을 둘 곳이 없어 식물을 키우기로 결심하던 해에 나는 실패의 역사를 딛고 다시 페트병 화분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렁이 한 마리 없이(!) 그 화분으로 잘 키워낸 허브가 있었으니, 바로 바질이었다.
(친구야 보고 있냣!)
바질은 씨앗부터 키웠다. 탄산수 공병을 잘라 화분 하나에 씨앗 3-4개를 심고 바질 잎이 손 한 마디 크기로 자랄 때까지 사용했다. 투명한 페트병 화분은 육안으로 흙의 과습여부를 빨리 파악할 수 있어 당시 새내기 식물집사였던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 식물이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는 뿌리의 건강을 위해 페트병화분은 임시 화분으로만 권장되는 편이다.
(뿌리가 직사광을 받으면 뿌리가 줄기처럼 기능하게 되어버리고 성장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바질은 작은 페트병 안에서도 빠르게 성장해서 금세 더 큰 페트 화분으로 합쳐서 심어야 했다.
지렁이 없이(!), 여름날의 햇볕과 적당한 환기 만으로도 허브를 키울 수 있다니. 허브살식마에게 바질은 천사다.
쑥쑥 자라는 바질만큼 점점 자신감이 자라난 나는 주변에 기특한 바질을 전파하고 싶은 나머지 번식법을 알아보게 되었고, 겁도 없이 '물꽂이'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물꽂이: 줄기를 잘라 물에 담가두어 뿌리를 내리는 기법
물꽂이를 했더니 국수 소면을 만들어버리는 바질이었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바질은 줄기를 잘라 물에 꽂아두면 바질바질이 되고 바질바질바질바질이 된다.
늘어난 바질은 주변에 분양해 주거나, 틈틈이 잡아먹었다. 덕분에 카프레제 샐러드를 한 껏 먹었던 여름.
바질 키우기 90일째.
바질이 나무젓가락 길이만큼 자랐다.
(+ 여전히 페트 화분이다.)
바질 키우기 240일째.
새하얀 바질 꽃이 피었다.
새하얀 꽃이 진 자리에서 씨앗 하나를 얻어,
그 씨앗으로 다시 싹을 틔웠다.
인쁘삐(IN-FP).
1995년에 태어나 24살부터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직업적성검사를 새로 했더니 개그맨이 나와서 결국 못 그만두고 다니는 사람.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욕심이 항상 드릉드릉 가득하지만, 사람 많은 곳은 싫어하는 전형적인 INFP.
먹는 식물은 죄다 죽이고 못 먹는 식물은 세상 잘 키워내는 능력치 애매한 식집사.
직장생활 꽤나 힘들어하고 일도 잘 안 맞는데 나름 또 정년퇴직은 하고 싶어서, 숨을 얕게 쉬며 회사를 다니는 20대 직장인.
어느 날 문득,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사람인지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동안 마주했던 순간들을 털어놓으며 나를 이해해 보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