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음 Oct 27. 2023

용서

2023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선정작

종무식을 하고 박수를 치고 아주 환할 때 회사를 나섰다 

비정규직도 이날만큼은 나란히 빠져나올 수 있어서

나는 대낮처럼 웃었는데


세 들어 사는 아파트의 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나무를 왜

인부 한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왜 이러세요 가요 가


경비실로 달려갔다

여기 곧 재개발 되잖아요

경비들 절반을 자른다네요

그럼 낙엽 치울 손도 없어지니까

미리 다 잘라내는 거라네요


이상해요

제 몸이 아직 여기 있는데

벌써 잘려서 사라진 것만 같아요

나무들도 그럴까요

옆 나무가 잘려나갈 때 이렇게 서늘할까요


경비실에서 함께 돌보는 고양이가 

내 종아리에다 옆얼굴을 쓸며 지나갔다


고객관리팀에서 나와 함께 일하던 어떤 동료의 옆얼굴은

금세 다른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과로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는 지금 정신과 폐쇄병동에 있다 


흰 털에 갈색 무늬를 가진 고양이는

의심이 없어 보이는 초록구슬 눈을 하고 

영원히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울음을 운다


울음 곁에 누워 우리 누구라도 

언제든 길게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모두를 용서하고 싶어서

나는 뛰쳐나간다 

그곳으로 간다 

이동식 사다리와 전기톱이 있는 곳으로


대낮처럼 눕는다

하나만 말하기로 한다


내가 나무다

내가 나무다




작가의 이전글 강변에 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