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하 Dec 04. 2021

고요한 달밤의 노래: 화월

교토 야마다마츠 향목점

교토 야마다마츠 향목점 세 번째 리뷰입니다. 가게 소개는 첫 글을 참조해 주세요.


1. 거실에 불러오는 한 줄기 푸른 바람: 취풍

2. 밀크셰이크 같은 백단향: 화양

3. 고요한 달밤의 노래: 화월





오전에 집안을 싹 청소하고, 화분들에는 물을 주고, 차를 한 잔 마시려고 또 부지런히 티 테이블 앞을 오갑니다.


물을 끓이고, 차를 꺼내고, 자리에 앉을 때까지는 다시 한참. 숙우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오늘은 향기를 잘 살리기 위해서 고른 긴 잔으로 쪼륵쪼륵 찻물이 담기면, 한 모금 마시고 숨을 돌립니다. 아, 향긋하다.


개완 뚜껑이 몸통을 긁는 소리, 찻물을 옮겨담을 때 물방울에 비치는 빛. 이런 날에는 밤에 종종 틀어 두곤 하는 음악도 틀고 싶지 않고, 그저 고요함을 즐기고 싶습니다.



그렇게 몇 잔 정도 마시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창 밖으로 들리는 동네 소리가 선명해지고, 찻물은 약간 새큼하고. 이런 지금에 소리는 아닌 향기 한 줄을 더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 때 집어드는 것이 야마다마츠 향목점의 화월(華月).



'인도산 노산백단을 사용한 시원한 향기' 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이 향은 그 청량함 때문인지, 저에게 딱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백단의 향기를 전해 줍니다.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다고 할까요,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다고 할까요.


처음 불을 붙이면 군불에서 나는 연기처럼 살짝 씁쓸한 향기가 코끝에 맴도는데, 묘하게 달콤한 백단의 향을 마치 한밤에 낀 달무리처럼 드러내었다, 감추었다….


같은 가게에서 나온 화양(華陽)에 비하면 확실히 진하게 흘러넘치지 않습니다. 이름은 아름다운 달이지만, 달이 아무리 빛나도 은은한 정취가 강할 뿐 화려하기로는 햇볕 한 줌에 비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물론 화월은 그래서 있는 매력이 좋지요. 과하지 않은 고요한 백단 향. 달밤이나, 혹은 이런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 낮에, 한 줄기 은은한 향조를 들리지 않는 노래처럼 퍼뜨립니다. 조용함, 차분함을 즐기고 싶을 때 이만한 백단 향이 또 없겠다 싶습니다.


전반적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강한 향이에요. 달밤의 정취로 비하자면 피어올랐던 여러 상념들이 하늘 한가운데 떠오른 어른어른 빛에 그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된다거나, 오늘 토요일 낮의 저처럼 가만히 그런 달의 소리 같은 무념(無念)에 얹혀서 흘러갈 만한 향입니다.



바쁘고 어수선한 매일이 계속되는 인생에 이런 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이런 시간을 위한 향이 있다는 건 마음에 잔잔한 기쁨을 주네요. 향보다도 이런 시간을 권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물건이 주는 힘도 있으니, 기회가 닿으신다면 꼭 한 번 즐겨 주세요.




* 매거진의 모든 리뷰는 주관적 감상이며, 가게 연혁 등을 직접 인용하지 않는 이상 제가 즐기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옮깁니다. 따라서 현재 시점과 다르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류가 있을 시 알려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밀크셰이크 같은 백단향: 화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