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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각쟁이 Oct 14. 2022

사랑에도 존치 기한이 있나요?

4계절 돌고 돌아 마흔에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코로나 19가 새들의 울음소리를 바꾸었다. 도시 봉쇄기간 동안 소음이 줄었기 때문이다. 거리가 텅 빈 도시에서 새들은 주변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다. 사람들끼리 만남의 그리움이 차오를 무렵 새들은 더 아름답게 울기 시작했다. 영역 보호와 구애를 위해 더 이상 크게 울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드럽고 낮게 매력적으로 지저귀었다. “휘~이”하고 울자 “호~이” 지저귀었다. 새들은 다른 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함께 울음을 운다고 한다. 그동안 나의 울음소리에도 화답해주던 얼굴들이 떠오른다.     



밤이면 “뻐~꾹” 2음절로 단출하게 우는 새를 알고 있다. 뻐꾸기는 사람으로 치면 1인 가구이다. 혈혈단신 단독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둥지를 틀지 않아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하는 모습이 어딘가 나와 닮은 것 같았다. 생물학적 암컷으로 태어났음에도 여자들의 복잡하게 얽히고 끈적한 우정을 풀어나갈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다. 내겐 남자 친구들이 더 편했고 애써 치장하지 않은 소쩍새 같은 암컷들만 골라 사귀었다. 마을 어귀에 뒷산처럼 함께 있으면 마음이 절로 푸근해졌다. 친구를 사귈 때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나 대화의 즐거움보단 늘 편안함이 앞장섰다. 편안한 관계는 대체로 말없이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방식으로 오래도록 이어졌다.          



스무 살의 겨울, 한 남자가 차가운 응달을 걷으며 나에게로 걸어왔다. 그는 검은 글자로 빼곡히 자신의 마음을 적은 두툼한 수첩을 내밀었다. 겨울 장판처럼 딱딱하게 얼었던 마음이 순수의 결정체로 녹아내렸다. 설렘이 연둣빛 싹을 밀어 올렸다. 야들야들하게 자란 새순들은 청록의 기쁨으로 아낌없는 애정을 키워나갔다. 사람 하나가 걸어왔을 뿐, 자신이 지녀온 색채를 함께 섞어 둘을 새로운 빛으로 물들었다. 과거로부터 미래로 연장된 선을 넘나들며 서로 알아가고 예측하는 일은 놀이가 되었다. 손을 맞잡기만 해도 충분한 풍요로움의 시절이었다.     



옥수수가 무르익는 계절 그는 내게 불안감을 줄여주는 종교와도 같았다. 함께 머물던 공간 속에 추억이 주렁주렁 열매가 맺혔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죽는다.”는 내 삶의 철학은 “시간이 지나면 너는 언제나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새로운 명제를 도출해냈다. 둘은 서로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이자 고단한 하루의 최종 목적지였다. 벽돌로 지은 단단한 관계 속에서 쉼 없이 솟아나는 열매를 수확해도 차고 넘쳤다. 가끔 다툼이 벌어져 적막을 찢는 소음이 오갔지만 그는 언제나 다시 되돌아왔다. 무관심으로 지은 평화보다 다툼의 온기가 더 뜨거웠다. 연인에게만은 모든 걸 허용하는 인정 많은 그가 신이 내린 은총처럼 쏟아졌다.     



잎이 떨어지고 양식을 갈무리하던 계절 서로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시들어갔다. 영원히 타오를 줄 알았던 불새가 땅으로 내려가야 할 때임을 알았다. 가을 나무 위에 잎사귀들이 바싹 말라 떨어졌지만 빛을 저장한 열매들은 탐스럽게 익어갔다. 너에 대한 줄어든 나의 지분은 또 다른 사람들과 미뤄두었던 꿈 혹은 현실에게 자리를 열었다. 열매가 달콤하게 익어가는 가을이면 옷을 벗은 나무는 그 수형이 확연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서로를 향해 달려가기 바빴던 관심은 부메랑이 되어 제 자리를 찾아왔다. 둘의 관계는 꼬였던 씨실과 날실이 풀리며 느슨해진 기분이 들었지만, 결혼이란 터널을 통해 더 깊이 침잠할 수 있었다. 이제 서로의 이질감을 애써 부인하지 않아도 따로 또 같이 사는 법을 배워갔다.      



매서운 칼바람에 가지가 똑똑 부러지는 계절이 왔다. 언 강물 위로 부지런히 날아오르는 기러기처럼 둘은 서로의 미래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속도가 올라갈수록 서로를 더 많이 놓치고 지나치는 날이 많아졌다. 갖고 싶었던 시계를 선물 받고 오른쪽 입고리를 부드럽게 올리며 웃던 당신, 함께 빵을 먹다 입가에 묻은 크림을 길고 가녀린 손가락으로 털어주던 당신이 이제 무엇을 좋아하는지 더는 확신할 수 없다. 그 많던 과거의 당신이 모조리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의 관계는 무용한 것들이 빠져 점차 담백해졌을 뿐. 깨끗해진 자리엔 과거의 여린 당신이 나이를 먹지 않은 채 서있다. 정열과 애욕이 희미해진 만큼 정은 더 짙어진 채로. 마음속에 스며든 정은 이제 의지와 상관없는 물성이 되었다. 불이 나면 울리는 사이렌처럼 지쳐 보이는 당신을 만나는 날이면 무조건 나의 마음을 울려댔다.      



얼마 전 길 위에서 “존치 옹벽”을 만났다. 도시는 오랜 시간 발전하며 거듭 모습을 바꾸어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 옹벽이 있다. 변화무쌍한 도시를 오래도록 바라봐온 옹벽은 그대로 남겨져 또다시 긴 나날을 그 자리에 서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오고 머무는 동안 관계 또한 끊임없이 바뀌어간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만의 작은 옹벽은 늘 그곳에 존재한다. 가을 아침 고요하게 앉은 이슬처럼 서로에게 고요히 침잠하는 인생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너라는 세계 속을 여행하며 나는 알을 깨고 천천히 세상 밖으로 나아간다. 두려움에서 시작된 결핍은 결국 스스로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북적북적한 인생의 환승열차 속 사십 대를 앞두고 떠올려본다. 시간이 지나면 당신은 언제나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호숫가에 언 얼음이 쪼개지는 소리가 곧 봄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소리 바뀔 것임을 알려 주듯이. 당신의 존치기한은 언제나 나에게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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