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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각쟁이 Jan 10. 2024

냉장고를 여는 마음

엄마 여기 있다

어릴 모님은 남의 집에 빈손으로 가지 말라셨다. 부모님 이 곧 법이었던 그 시절 아쉽게도 내게  용돈이 없었다. 친구 집에 갈 때면 새것처럼 깨끗이 본 만화책이나 장난감들을 비닐 포장지에 싸들고 가곤 했다. 성인이 되난 후에는 케이크나 떡 다과류를 사들고 갔다. 시간은 없고 주변 상가는 더 없 하는 수 없이 빈손으로 의 집에 들어선  있다. 양말의 구멍 사이로 미안한 마음이 새어나갔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인의 집을 방문하는 일은 내게 '비밀의 화원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 같다. 친구가 어린 시절부터 자라온 가족시의 질곡을 들여다보는 일은 비밀스럽고 성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 아이들에게 집을 오간다는 건 서로에게 은밀한 친목을 과시하는 행위였다. 이와이도시오 작가의 "100층짜리 집" 그림책처럼 우리 주위에는 각기 다른 동물들이 모여사는  아닐까 다. 동그란 얼굴에 눈과 귀 두 개, 코와 입은 하나라는 공식 유일한 공통점일 뿐 전부 다.  비슷해  속을 들여다보면 사는 형태가  없이 다양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무엇이 보일까'란 시각적인 상상과 달리 가장 먼저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건 후각이다. 문을 열자 냄새들이 와르르 몰려 후각세포 뺨을 다. 섬유와 벽지배인 유의 냄새 뚫고 천천히 걸어 나오던 이질적인 살냄다. 그중에서도 음식냄새 존재감 최강자였다.  엄마가 내어주시던 깻잎찜이 기억난다. 무심히 던져 넣은 멸치들 사이에서 된장과 함께 졸여진 깻잎은 본연의 초록을 잃고 감자탕 속 우거지인 척 열연을 했다. 그때 친구네 집을 오가며 먹었던 깻잎의 향을 잊을 수 없다.  가족이 무얼 먹고 지내는지 비밀스러운 음식의 역사가 집 냉장고 속에 꽁꽁 숨겨져 있었다니 눈을 뗄 수 없었다.


'지금 나의 냉장고는 어떨까' 기억을 더듬으며 냉장고 문을 열다. 가장 먼저 김치냄새가 버선발로 마중 나온다. 얼마 전 엄마가 담가준 굴깍두기가 보다. 요리를 잘 못하는 딸애를 알기에 '손녀들이 굶을 까봐' 심심한 반찬을 해주신다. 어머님은 '아들이 굶을 까봐' 겉절이를 보내신다. 한 번은 백세가 다 되신 왕할머니가 빚은 김치만두를 받았다. 엄마 손맛을 잊지 못하는 고령의 자들을 위해 노모가 직접 빚은 만두다. 할머니는 매년 올해가 마지막일지 모르는 만두를 빚으신다. 늘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말씀도 함께지만 김치 꼬다리까지 잘다져 넣은 만두소는 얼큰하고 시원하다. 엄마는 그 귀한 음식에서 제 몫을 제하고 내게도 보내신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제 자식을 먹이기 위해 요리를 해왔다. 주방속의 냉장고가 시대와 세월을 가로질러 서로에게 연결된 기분이 든다.


살다보면 종종 원인 모를 허기증 느낀다. 물을 벌컥 들이켜도 목이 타고 무얼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을 때가 있다. 과자빵을 먹을수록 허기는 더 커져갔다. 육체적 배고픔이나 갈증이 원인이 아닌 정신적 허기가 찾아온 날이다.  런 날 대게 피곤하고 무력해서 냄비에 겨우 라면물을 올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 보내준 김치들을 꺼내 먹다가 눈물 콧물을 다 쏟곤 한다. 할머니가 보내준 김치만두를 한 입 가득 넣고 삼키는데 목이 메어왔다. '이걸 내가 당연하게 받아먹어도 될까' 콧물을 닦다가 김장용 고춧가루로 땡초를 쓴 건 아닐까하는 괜한 의심 했다.  아삭하고 시원한 김치가  따스한 면발과 국물을 만나 뱃속을 꽉 채우 다시 하루를 마주할 용기가 났다. 분주히 일어날 시간이었다. 어느 날 냉장고 속에서 엄마의 손맛이 사라지는 날을 상상해 보았다. 그땐 음식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슬픔보다 더 큰 녀석을 상대해야만 할 것 같아 겁이 다. 장고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여기 있다.'


삶에서 무심코 스쳐지나가는 것들에겐 스포트라이트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아니라 여겨지던 '당연함'에 실은 가격표가 없다. 그 값을 지불하지 않기에 감사하는 법을 자꾸 잊어간다. 감사할 줄 모르는던 순간 자신은 대체로 무례하고 무정한 사람으로 살았다. 당연함이 없이는 평화로운 일상이 단 일 분 일 초도 존재할 수 없다. 너무도 익숙한 '당연함' 그 속에는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이 녹아있었다. 그걸 '사랑'이라 불러도 될까. 새로운 숙제 하나가 생긴 기분이다. 앞으로 어떤 당연함을 나누는 사람이 될 것인가 새로운 고민이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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