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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각쟁이 Jan 17. 2024

달을 바라보는 마음

가족의 소통

경포에는 다섯 개의 달이 뜬다. 하늘에 하나, 바다에 , 호수에 , 술잔 속에  그리고 마주 앉은 이의  다섯. 어디서나 달을 찾아보려는 옛 선인들의 시선은 낭만으로 가득하다. 요즘 현대인들에게 그리운 이들을 비춰주는 건 작고 네모난 스마트폰이다. 거울처럼 반짝이는 유리화면 속을 들여다보면 새삼 그리운 이들의 얼굴을 다 만나게 된다. 결혼을 하거나 직장을 이유로 타지에 나오게 되면서 부쩍 가족과 직접 대면보다 전화를 거는 일이 더 많아졌다. 스마트폰은 비용도 적게 들고 덜 수고롭기에 바쁜 현대사회시민에게 필수 소통양식이 되었다.    


내게 아버지의 문자는 '경찰청 알림'처럼 날아든다.   새로운 서사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신종 사기에 혹여 가족들이 당할까 봐 당부와 염려를 함께 보내신다. 이번에는 독도 여론조사를 한다는 문자인데 1번 버튼을 누르면 25만 원의  통화료가 결제된다는 스미싱 수법전해왔다.


"세상 참 험하다. 우리가 미리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 그런데 말이야 아이들 사진 좀 보내봐라."

은근한 당부를 잊지 않던 아버지는 이내 진짜 목적을 드러내신다. 최근에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모조리 전송한 후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것 또한 가족 간 스미싱 아니던가...... 허허' 잠시 후 통장으로 입금을 알리는 은행 알림이 날아든다. '할아비께서 과잣값 10만 원을 입금하셨습니다. '



한편 몸신과 천귀누설로 단련된 엄마의 문자는 '의료보건뉴스'처럼  도착한다. "천마에겐 강력한 항산화 작용으로 항암효과가 있다" 마침 인터넷에서 판매하고 있으니 직접와서 앱결제를 라는 진심은 뒤늦게 슬쩍 전달한다. 돋보기안경을 끼는 고령의 엄마에겐 키오스크나 인터넷 결제가 쥐약이다. 네모난 스마트 폰을 고 고무찰흙처럼 누르고 늘리고 줄이고 자유자재 다루는 자식의 모습을 안경너머로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신다. 부모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보호받으며 살다가 거꾸로 역전되어 무언가를 가르쳐드릴 때의 기쁨은 아리송하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홍삼사탕 한 을 입에 가득 문 기분이다.

 

"스마트 폰을 스마트하게 써야지. 먼 거리에 사는 자식을 오라가라 배송비보다 기름값이 더 나오겠다." 으쓱하는 마음속에 잔소리가 술술 새어 나왔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는데 식탁 위의 펼쳐진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딸기와 체리가 담긴 과일바구니와 그 옆엔 정성스럽게 깨를 뿌린 반찬들은 이 무심히 타파통에 담겨 황금탑을 쌓았다.

  

"온 김에 가져가라"


이제 곧 칠순을 바라보는 엄마는 일주일에 주 6일 일하신다. 눈만 뜨면 고된 노동 현장에 나가 집에 돌아와 쓰러지기를 반복하신다. 그날은 어쩌다 쉬는 하루였다. 그 휴가날 엄마는 음식을 하느라 새벽부터 부지런히 고된 몸을 움직이셨을 것이다. 고마움에 받치고 미안함에 화가 나 뜨거운 감정이 울컥 흘러나왔다. 애꿎은 잔소리만 늘어놓고 . 정작 이럴 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새하얀 공황상태가 다.


여기까지만 편집해 보면 따뜻한 가정사의 한 단면일 것이다. 그러나 내겐 아직 풀지 못한 제가 있다. 어릴 적 부모에게서 내려받는다는 '사랑의 언어'가 없었다. 우리에겐 그저 함께 먹고 자고 숨 쉬는 순간들이 전부였다. 애초부터 말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법을 몰랐고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가족이니까 말 안 해도 알겠지 지레 짐작했으며, 이해해 주겠지란 아량으로 남에게도 못할 말을 서슴없이 건넸다. 사춘기를 통과하사정은 달라졌다. 도저히 속내를 모르겠는 가족들에게 미치도록 '이해받고' 싶었으며 그들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꺼내어 전달하려고 했지만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져 갔다. '서브'는 있지만 '리시브'가 없는 공놀이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부모님 역시 '좋으면 좋다 힘들면 힘들다'  내색하지 않으신다. 그저 하루를 벌어먹고 사는 것에 치여 서로 말하는 법을 잊은 다람쥐 가족 같았다. 바쁘게 쳇바퀴가 돌아가는 소리만이 철창 안을 철컹~ 울려온다.   


"허허 이년이 ~지랄하고 자빠졌네~하하하하"


어릴 적 제일 많이 듣고 자란 말이다. 멋들어진 춤사위를 추던 이에 함박웃음을 지으시던 부모님 최고의 칭찬이었다. 어느덧 '이년'은 로 친근함 표현이고 '지랄'은 한도를 초과해 버린 재능이 되었다. 매일 얼굴을 보고 살을 맞대며 살던 시절엔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상대방 목소리 혹은 이목구비 형태와 흐르는 기운으로 서로를 곧장 파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낭창낭창한 욕으로 서로에게 돈독함을 과시했던 시절이 우리에겐 있었다. 문제는 자식들이 결혼하고 멀리 타지로 떠나고부터였다. 결혼한 자식들 사이에는 올망졸망한 손주손녀들이 늘어났다. 어느덧 서로에게 격식이 필요한 사이가 되었다. 그 후로 오래도록 서로에게 말이 없어졌다. 직접 만나도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지 몰라서 한 동안 뜸을 들인다. 서로가 서로에게 걸친 접점의 웅덩이가 점점 말라가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가족 간의 의사소통은 중요하다. 가족의 근간이 되는 문화와 역사적 특성들에 서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관점들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로 자식들에게 대물림된다. 직접적이고 평등한 서구의 소통 방식에 비해 상대방에게 간접적으로 돌려 말하는 동양의 방식은 소통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때 느낌이나 의견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오래도록 가족끼리 대화로 호흡을 맞춰 온 시간의 양이 그 질을 결정한다.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엔 가족문화라 하면 으레 어른들이 모여 고스톱을 치거나 반주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문화가 없는 곳에 가족만의 언어와 소통이 꽃피울 리 만무했다. 이제 와서 그 오랜 세월을 순식간에 따라잡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종종 가족끼리 모이면 서로 대화에 서툴러 삐치기 일 수였다. 마치 상대 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섣불리 아는 체하거나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가르치려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다. 지시하고 훈계하고 명령을 하고도 안되면 협박해서 되게 할 수 있는 건 가족뿐이었다. 아직도 허공에 메아리 없는 함성을 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때부터였다. '부모의 말하기'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서로의 곁으로 흘러들어 가 원하는 바를 치고 빠지는 그들만의 소통 방식을 연구했다. 알고 보니 부모님은 어느새 가족 간 스미싱의 대명사가 되었다. 오랜 관찰의 결과 말이 서툴다고 사랑에 서툴진 않았다. 단 오래된 수학난제처럼 난해해서 좀처럼 해석하기 어려웠을 뿐. 그들의 소통방식을 이해하기까지 40년이 걸렸다. 가끔 부모님이 보내온 수십 통의 문자 메시지들을 거꾸로 주르륵 훑어본다. 뜨거움은 식고 빠르고 편리해진 문자 속에서도 서툴게 붙인 스마일이 웃고 있었다. 메시지 어디에선가 부모님의 외로운 혼잣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뭐가 필요할지 몰라 붙여본다... 스마일 이모티콘... 애들 반찬... 용돈... 꼬까옷... 더 없냐?'


달은 언제나 한쪽면만 보여준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공전과 지구가 스스로 자전하는 속도가 같아 서로 같은 면을 계속 마주 보게 된다. 달을 보다가 부모님의 커다란 등이 떠올랐다. 가끔은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뒷면에 도달하고 싶다. 그곳엔 어떤 말 못 할 슬픔과 외로움이 옹송그리고 있을지 그 심 이해하고 싶다. 부모라는 역할을 걷어낸 한 개인의 역사를 조용히 들어주다 잠시 안고 함께 펑펑 울어주고 싶다. 그 외로운 언어를 채굴해서 가끔 홀로 깨어있는 밤에 듣고 또 듣고 싶다. 자식은 부모의 삶 전체를 알지 못한다. 늘 한쪽면만을 보고 내가 아는 전부인 양 살아간다. 삶의 질곡으로 인해 울퉁불퉁 해졌을 당신들의 뒷면을 상상만으로 아름아름 짐작해갈뿐이다.


오늘도 안부전화를 걸며 마음속으로 세 번 크게 숨을 쉬어본다. 동안 부족했던 새로운 '사랑의 언어'를 선물하겠다고 다짐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어쩌면  숙제를 해결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사랑의 숙원사업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애써 천천히 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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