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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Jan 25. 2024

20대 저에겐 당신이 엄마였어요.

감사편지 세 번째

이른 새벽.

잠이 깨어 뒤척이다  한분서럽도록 그리워 이름석자를 적었습니다.


김ㆍ성ㆍ희


어느 날 핸드폰이 박살 났습니다. 오랜 시간 정리되지 못한 채 쌓이고 쌓였던 연락처들이 한꺼번에 0으로 정리되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제 삶을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부터 꽤 인지도 높은 분들의 인연까지 별 아쉬움 없이 툴툴 털어버렸습니다. 꼭 필요한 분들이라면 분명 다시 연락하실 테니까요.


그런데 오늘 지금은 사라진 연락처가 발을 동동 구르고 싶으리만치 간절함으로 아쉽습니다.


김성희 집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20대 중반. 인천 백운역 근처 건물 지하에 있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쨍한 연분홍 립스틱이 하얀 피부와 너무나 잘 어울린 자그마한 체구의  집사님은 천사처럼 웃고 있었습니다.


내가 입으면 갓 올라온 시골 처녀 같을 꽃무늬 시폰 원피스에 멋스러운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계셨지요.


어느 날 그분의 집으로 이사심방을 갔습니다.

봄날 하늘거리는 진달래 같은 그분의 외모와 달리 곧 무너질 듯 흙벽돌이 숭숭 드러난 허름한 집이었습니다. 연탄냄새 가득한 부엌을 지나니 하얀 면 커튼이 드리워진 화사한 안방이 나타났습니다.


황토색 부엌이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급진 잔에 담긴 커피와, 가지런히 예쁘게 담긴 이른 봄 비싼 딸기를 대접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구미로 내려오기 전 십 년 가까운 시간 이어졌습니다.


독박육아에 버거운 저 대신 친정엄마처럼 손길을 내밀어주셨고, 밤늦도록 저의 고민을 들어주셨답니다.

얼마나 상냥하고  예의바르신지 무뚝뚝함의 정석인 남편조차 이분의 방문은 늘 환영이었고, 이분과의 모든 일정은 무조건 오케이 사인을 받았습니다.




김성희 집사님.


저도 지금은 예쁜 커피잔에 커피를 담아요.

가끔은 집사님이 내 오신 딸기 생각이 나서 접시에 모양내서 담아 보기도 하지요.


저에게  '따뜻하다'라고 이야기해 주는 분들이 계세요.

그건 집사님의 섬김을 흉내내기 때문일 거예요.


숭숭 빈틈 투성이었던 인천에서의 20대 저의 삶을 가득 채워주신 분은 집사님이셨요.

미숙했던 엄마와 아내로서의 삶뿐만이 아니라 초보신앙인의 미숙함까지 집사님을 롤 모델 삼아 조금씩 성숙해 갔어요.

그리고 구미에서의 30년 가까운 제 삶 속에 잔잔히 드러나는 건 집사님의 그림자였네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20대 저의 삶을 섬겨주신 집사님 덕에 전 여전히 '세상은 따뜻한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순수하게 살아내고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누군가가 또 나를 보고 '섬김이란 이런 거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저의 행복이 한 스푼 추가 되겠지요.


집사님

지금은 권사님이죠?

집사님이 오래전 시집간  딸을 보러 오시듯 구미에 오셨을 때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해서 늘 아쉽습니다. 도리어 우리 아이들을 챙겨주시고 장을 봐서 저녁밥을 지어 놓으셨지요.

그때는 정말 눈코 틀새 없이 바빴어요.


그때 집사님께서 적어두고 가셨던 편지 지금도 간직해요.

하나님께서 기도 중에 주셨다는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히 6장 14절)] 말씀대로 지금은 풍성한 복속에서 누리며 살고 있답니다.


집사님.

몇 년 전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어졌어요. 카톡에서도 뜨지 않아요.

꼭 다시 들리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 잊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제 삶 20대의 주인공은 김성희집사님 당신입니다.


2023년 1월 25일 구미에서. 

당신이 가슴으로 낳은 딸 김 00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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