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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1
03화
예쁜 선생님이라고만 기억합니다.
감사편지 두 번째
by
바다의별
Dec 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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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그 많은 어린이집 선생님들 중에 딱 세분만 기억합니다. 두 분은 이름부터 가족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며 요즘도 가끔씩 삼겹살까지 구워줍니다.
한 달 전쯤 볼일이 있어 가을나들이 겸 영주에 들렀습니다.
원래 계획은 영주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계획했지만, 일정이 빠듯하여 가까운
[영주댐 용마루공원]으로 산책을 하는 것으로 영주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멋스러운 흔들 다리를 건너면, 댐으로 수몰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는 간이역까지 산책로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인들이 바람 쐬러 와도 괜찮을 듯 그럴싸한 가을 풍경이 낙엽더미 속으로 이어졌습니다.
운치 있는 벤치에 앉아 남편이 찍어주는 사진을 바라보며 깔깔거리다 지나는 길에 [안동]에 들러보자고 남편이 제안을 합니다.
그리고 오래전 기억하나를 더듬어 냅니다.
"자네 우리 어린이집 아이들 태우고 안동 간 거 기억나는가?"
남편은 [안동]하면 어린이집 아이들과 처음으로 떠났던 봄소풍을 기억합니다.
2월 중반쯤 급하게 어린이집을 개원했을 때 남편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재활 중이었습니다.
겨우 운전이 가능한 정도여서, 남편의 말에 따르면 본인 평생에 '그만한 지옥이 없었다'라고 할만한 ㅣ년이란 시간을, 원치않게 어린이집에서 함께 근무했습니다.
그래도 몇 개월 후 선생님들과도 아이들과도 친해진 남편과 첫 봄소풍을 [안동하회마을]로 떠난 겁니다.
"그때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할 때 참 난감했지. 지금도 마음이 아파. 지금 같으면 가게하나 다 털어서 사 줄 텐데"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서 그때 남편의 마음이 느껴옵니다.
5월이다 보니 날씨가 더웠고 꽤 먼 거리의 마을을 걸어서 견학하다 보니 아이들이 지쳤습니다.
하필 그때 아이스크림가게가 떡하니 나타난 겁니다. 아이들이
젊
은 할아버지같은 남편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관광지다 보니 아이스크림 가격도 만만찮았지만, 어린이집개원비용 지출에 수입도 거의 없던 시기라 남편의 용돈이 궁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애써 모른척해야 했던 그 난감함이란 남편성격에 정말 지옥 같았을 것 같습니다.
남편의 지옥체험기간ㅣ년을 함께했던 두 분의 선생님 중 한 분을 남편은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궁금해
합니다.
"그 예쁜 선생님 지금도 연락 안 되는가?"
남편과 우리 집 두 아이들에겐 그때 함께했던 한 분의 선생님은 '착한 선생님'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연락두절상태인 이 선생님은 '예쁜 선생님'으로 지칭됩니다.
착한 선생님은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 함께 바다의 별과 동거동락했고 지금도 가족처럼 지냅니다.
오늘은 남편이 기억하는 예쁜 선생님. '이*숙 선생님'께 감사편지 적습니다.
이*숙 선생님.
잘 지내고 있죠?
정말 힘든 시기에 그 먼 거리에서 버스 두 번씩 타고 출근해 주었던 맘도 얼굴도 예쁜 선생님.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낼까? 많이 궁금해요.
선생님
기억나나요?
이사장님(남편)이 끓여준 떡만둣국 엄청 좋아했었죠.
언제든 다시 끓여줄 수 있다고 그러네요.
우리 두 아들과 떠났던 [안동여행] 사진은 집 벽면 액자에 걸려있어요. 지금도 우리 아이들은 예쁜 선생님 이야기를 하지요.
남편은 어린이집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갔던 [안동 봄소풍]을 기억하구요.
선생님.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본 날을 어제처럼 기억해요.
갑자기 인사를 오겠다고 들린 선생님의 품에 커다란 검정가방이 안겨있었지요. 그리고 그 가방에서 나온 건 집에서 재배한 커다란 수박 두덩이었어요.
그 무거운 수박을 안고 어린이집까지 한참을 걸어서 왔었나 봐요. 그때 선생님의 하얀 얼굴이 색깔고운 달콤한 수박색이었어요.
선생님은 "결혼해요" 한마디 남기고선 청첩장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우리에게서 사라졌어요.
선생님.
우리 다시 볼 수 있겠죠?
이 사장님표 떡만둣국 언제든지 끓일 준비 할게요.
선생님. 그 힘든시기 함께 견디고 이겨내게 해 주어서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해요.
보고 싶습니다.
2023년. 12월. 8일. 바다의 별원장 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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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편지
선생
기억
Brunch Book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1
01
저의 글쓰기 이력서입니다만.
02
37년 동안 배달되는 김장김치가 있답니다.
03
예쁜 선생님이라고만 기억합니다.
04
20대 저에겐 당신이 엄마였어요.
05
나의 첫 번째 회장님.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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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 어린이집 원장으로 살았답니다. 이젠 '소풍 온 것 처럼' 살아가는 일상을 글로 이야기 나누어 보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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