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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Dec 05. 2023

37년 동안 배달되는 김장김치가 있답니다.

올해도 보내셨군요.

감사편지 첫 번째 주인공은  사진 속 김장김치를 보내주신 분입니다. 누구실까요?


'딩동' 택배가 왔습니다.

20킬로그램 택배상자 속엔 역시나 색깔 고운 김장김치가 차곡차곡 담겨왔습니다.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비주얼과 맛입니다.


바로 전화기를 듭니다.

"형님~~ 올해도 김장을 보내셨네요. 몸도 안 좋으신데. 일부러 연락도 안 드렸어요."

"응~ 그냥 맛있게 먹어. 쌀도 한 자루 보냈어"


무언가 바쁘신지 몸은 괜찮으시냐 물어보는 저의 말에 "괜찮아" 그러시곤 전화기가 툭 끊어집니다.

37년 동안 한해도 빠뜨리지 않으시고 김장을 해서 보내주시는 분은 김제에 사시는 큰 형님이십니다. 몇 년 전까지 사과박스 2개에 김치를 보내주시면 저희 집 김치장고가 꽉 채워집니다. 요즘은 텃밭에 배추를 심어 김장을 한다는 걸 아시기에 양을 줄이시고 고춧가루와 양념들을 보내주십니다.


첫 김장 배달은 결혼한 첫해 시숙님께서 직접 오셨습니다. 친척결혼식이 있어 오시는 길에 그 무거운 김장김치가 담긴 자루를 메고 인천까지 오신 겁니다. 그리곤 찬물 한 대접을 벌컥벌컥 들이켜시곤 가셨습니다. 나의 결혼을 탐탁지 않아 했던 친정엄마가 이 모습을 보고 한시름 놓으셨다 합니다. 그렇게 37년이란 시간 동안 김장배달은 이어졌습니다.


올봄엔 형님이 직접 만드신 주를 주셔서 된장이랑 간장 담그기 도전도 해 보았습니다. 매번 고추장과 된장, 간장등을 보내주셨지만 언제까지 신세를 질 수 없어 직접 담가 먹기로 한 겁니다. 형님만의 레시피를 정확히 알려주셨기에 첫 도전이지만 성공적인 맛입니다.


제가 형님에게 물었습니다.

"형님. 사람들이 시어머니도 아닌 형님이 이렇게 김장김치를 매년 보내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래요. 이젠 저희 김장도 하는데 왜 보내셔요?

"내가 해 주는 김치 다들 맛있게 먹어주고 내가 해 줄 수 있을 때까진 해 줄려고"


사실 형님의 기억 속에는 저의 어설픈 음식솜씨가 존재합니다.

신혼 초 형님이 저희 집에 방문했을 때 제가 [김국]을 끓여드렸습니다. TV에 나오는 음식프로를 보고 흉내를 낸 것인데 멀건 국물에 김가루가 둥둥 떠 있는 [김국]은 형님에게 안쓰러움의 극치를 맛보게 한 거였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전해주시는 김국사건(?)은 저희 집에 오실 때마다, 저희가 시댁에 갈 때마다 바라바리 반찬들을 싸시게 만들었답니다.

이젠 '제법 음식 잘한다'는 남편의 자랑이 있어도 형님은 여전히 20대 엉성한 새댁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딸내미에게 반찬을 전수하듯 이젠 저에게도 장 담그는 법을 알려주시는 걸 보면 형님의 나이도 꽤 깊숙한 노년입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감사하다 저의 맘 전합니다


큰 형님께


제가 형님을 처음 뵌 날로부터 참 많은 시간이 지났어요.

여러 가지 감사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꽤나 속썩이든 막내시동생(남편)까지 결혼시키느라 넉넉지 않은 살림에 수고하셨고 감사드립니다.


때론 여장부처럼 일을 벌여 가시는 형님을 보면서 버거워도 보였고, 욕심이 많으신 건가 오해도 했었어요. 그러나 제가 어린이집 실습을 해야 하는 한 달의 시간 동안 남자조카 둘을 키우시면서, 말썽쟁이 우리 집 두 아들까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받아주셨던 그날들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출발점이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던 응원 해 주셨던 형님이 계셨기에 저의 도전은 성공했습니다.


형님.

형님이 저에게 늘 그러셨지요.


"난 자네가 동서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 꼭 내 막냇동생 같아"


그래요 형님. 형님이 그러셔서 저도 큰언니 같았어요. 그래서 어리광도 부리고 투정도 하고, 애들 아빠 흉도 신나서 하고 그랬네요.

시숙님서 지금도 가끔씩 그러시는, 제 이름 불러 주실 때 친정오빠들보다 더 편안했어요. 친정엄마가 질투할 만큼요. 지금도 엄마가 자주 그러세요.

'너는 시댁식구 사랑은 참 많이 받고 사는 것 같아 좋다고요'


큰 형님.

요즘은 명절이 오면 문득문득 김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나요. 형님 절대 마다하지 않으시겠지만 더 이상 형님 힘들게 해 드리면 안 될 거 같아 애들 아빠에게만 살짝 이야기한답니다.


형님.

대가족 모이는 거 쉽지 않은 일인데 2월 어머님 기일에(명절엔 각 가정에서 보내고) 모두 만나길 기다리시는 형님 보면서 존경하는 맘이 듭니다.


다가오는 2월에 저희 모든 가족 김제로 출동합니다. 그것이 형님이 저희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모두 일정 비워둡니다.

혹 둘째 형님 못 오시더라도 이제 너무 섭섭해하지 마세요.


형님.

이번엔 진짜 아무것도 하시지 마시고 우리 나가서 맛있는 거 먹어요.  저희가 대접할 기회를 주실런지  모르겠지만.

고맙습니다.

지방에 계시지만 멋지게 노년의 삶을 누리시는 형님 정말 훌륭하세요. 저도  형님의 삶을 응원합니다.


겨울 잘 보내시고 2월에 봬요.

사랑해요. 형님!


2023년 12월 5일 막내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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