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 [수포자]였던 저는 수학시간에 작문노트를 끄적이다 은근히 대치중(?)이었던 수학선생님에게 딱 걸렸습니다. 학생인권 따위는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어서 수학선생님의 손에서 저의 작문노트는 빠르게 넘어가고 있었고, 한참이나 선생님의 눈은 노트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혹 '빼앗기면 어쩌지' 아무 말도 못 한 채 안절부절못하는 저의 책상에 작문노트를 '툭' 내려놓으시며 수학선생님은 그러셨습니다.
"꽤 잘 적었는데"
여고 1학년때 우리 뒷집으로 서울에서 한가정이 이사를 왔습니다. 내 또래의 딸이 있어 친구가 궁했던 저에게는 그 집으로 놀러를 가는 건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여고 3학년이던 언니는 그림을 아주 잘 그렸습니다. 언니는 두툼한 대학노트에 시를 적었고 [사인펜과 파스텔]로 예쁜 그림들을 그려 꾸미기를 했습니다. 저는 이때 처음으로 [파스텔]이라는 그리기 도구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둘째 오빠의 일기장(글쓰기 노트)을 읽어보는 것이 하루 일과였던 저에게는 양갈래 머리를 단정하게 땋은 언니가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제가 모방할 또 다른 대상이 되어주었습니다. 언니가 그렸던 네 잎클로버는 지금도 펜을 잡으면 자동적으로 그려지는 컷입니다.
언니가 취업을 위해 서울로 떠나기 전까지 일 년은 작문노트를 통해 저의 이야기를 쏟아내게 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20년 넘는 시간을 통신문(안내글)을 작성하는 일로 글쓰기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처럼 안내문이나 행사글등이 문서화되어 제공되지 않는 시절이다 보니 매주마다 발송되는 안내글을 적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원아모집 안내글부터 주간 교육계획안내글, 행사 안내문. 등등 쉬지 않고 글을 적어야 했던 시간들은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해 내었을까 쉽습니다.
참고하는 책자에 적혀있는 글을 홀라당 베껴 사용하는 것은 성향상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다 보니 거의 매주 창작 수준입니다. 어쩌면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아요'라고 말해주는 학부모님들이 있어서 더 차별화된 통신문을 작성하지 않았나 쉽네요.
지금도 가끔씩 파일로 저장되어 있는 문서들을 열어봅니다. 생일인 꼬마친구에게, 한해 더 많이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한 졸업생들에게, 믿고 함께해 준 학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적어 보낸 다양한 글들을 보며 '내가 이런 글을 적었구나' 감탄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10년이 넘도록 일기처럼 적어온 [카카오스토리]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그동안 감사했던, 그리고 보고 싶은, 그리고 어찌 살고 있나? 궁금한 많은 분들이 떠 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어려서는 [작문노트]를 통해 나만을 위하여
삶의 중반에는 [안내글]을 통해 어린이집아이들과 학부모님을 위하여
그리고 노년을 바라보는 지금은 다양한 [SNS]나 [브런치스토리]를 통하여 감사한 불특정 다수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