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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은 Feb 06. 2021

나의 우물 B에게

나의 사랑 나의 친구 #4

<나의 사랑 나의 친구>

#나의 우물 B에게



감정의 우물같은 것이 있다. 거기서 때때로 사랑같은 게 샘솟기도, 고독같은 게 샘솟기도 하는데 가끔은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B의 목소리다.


B와 나의 관계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순서가 뒤섞인 소설같다. 우리의 삶은 순서만 다를 뿐 결국 하나의 점으로 모여진다. 내가 먼저 앓고 넘어간 감정을 B가 그대로 겪기도 하고, B가 일찍이 깨달았던 것을 내가 늦게 공감하기도 한다. 그 사실은 나를 외롭게 하기도, 위로하기도, 안심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쓰고 싶은 글이 있는데 표현이 잘 되지 않을 때 B에게 전화를 걸었다. B와 이야기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문장이 완성되곤 했다. 마치 그가 내 이야기의 반쪽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를 통해서만 문장의 순서가 완전해지는 것처럼.



어느 날 B가 나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문득 궁금해 B와의 기억들을 찬찬히 되짚어보았다. 다른 친구들을 생각할 때는 첫 만남이 가장 먼저 생각났지만, B와의 기억들은 삶의 하이라이트 모음집처럼 반짝이는 순간들이 편집되어 떠올랐다. 대체로 내가 울 것 같을 때, 울고 있을 때, 울고 난 직후일 때가 많았다. 어쩐지 그게 부끄럽고 미안해져 그 뒤로는 B에게 숨기는 것들이 많아졌다. 계속 징징거리기만 하는 친구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늘 B를 아깝다고 생각한다. 어디에 아깝다는 건지 설명하자면 ‘모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데, 왠지 모르게 나에게 B는 제자리를 찾지 못한 걸작의 마지막 조각 같다. 이런 말은 쑥스러워 전한 적이 없지만. 언제나 B는 아깝다.


B에게는 평생을 고마워해야하는 일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내던 우리가 졸업을 기점으로 각자 흩어지고도 시간이 2년 정도 흘렀을 때, B가 갑자기 SNS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때의 우리가 그립다는, 어쩌다보니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지만 다시 만나면 예전과 같을 거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정확한 문장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봤던 모든 글 중에 가장 용기있는 글이었다. 그 글에서부터 우리의 관계는 다시 이어져 지금과 같은 모양이 되었다. 지금도 그때 그 글을 옮겨 적어두지 않은 걸 때때로 후회한다. 경이롭고 존경스럽다.


우물이 때때로 말라버리듯 사람도 때때로 말라붙고, 우리의 관계도 여전히, 때때로 소원해진다. 어쩌면 지금도 그러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글을 쓸 때마다 B를 생각하고, 기도할 때마다 B의 행복을 바란다. 후에 또 우리의 삶의 순서가 맞닿아 깔깔거릴 날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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