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자취하던 시절에는 혼자 원룸 한구석에 놓인 침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울어대는 날들이 많았다. 세상이 온통 내 것인 줄, 내가 원하는 데로 되는 줄, 결국 내가 원하는 곳에 가있을 줄 알았던 착각들에게 뺨을 후려 맞을 때마다 얼굴 위로는 세상을 향한 억울함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보다 열심히 하지도 않는 친구가 나보다 먼저 높은 곳에 도달했을 때, 그의 성공을 억지웃음을 지으며 축하해 줘야 했을 때,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열심히 작업을 해서 업체에 넘겼는데 업체가 잠수를 타버렸을 때 등등.. 지금까지 흘린 눈물을 다 모으면 바다가 될 것이다.
포레는 내가 꺼이꺼이 울어댈 때마다 항상 옆에 있었다. 침대에 엎드려 있는 포레의 엉덩이에 얼굴을 파묻고 울어댄 날들이 포레와 함께한 5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았으니, 그동안 내가 흘린 눈물도 포레의 엉덩이에 모두 묻어있다고 할 수 있겠다. 포레의 엉덩이에서는 짠 바닷물 냄새가 난다.
이제 나는 서른이 넘었고, 점점 덜 우는 단단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울어보았자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건 익히 깨달았지만, 때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저 눈물 한 줄기, 휴지 딱 한 장 정도로 끝날 찰나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더 울고 싶다는 마음의 아우성이 그래봤자 부질없다는 이성의 꾸짖음에 고개를 수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만사 의연히 받아들이는 내공이 쌓여갈수록, 이성적인 어른이 되어갈수록 눈물은 줄어든다.
지금은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님은 눈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늙으면 한 방울 이상의 눈물을 흘릴 수 없다네. 노인은 점점 가벼워져 많은 것을 담을 수 없어. 눈물도 한 방울이고, 분노도 성냥불 획 긋듯 한 번이야. 그게 늙은이의 슬픔이고 늙은이의 분노야. 엉엉 소리 내 울고 피눈물 흘리는 것도 행복이라네." _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
맞는 말씀이신 것 같다. 울고 싶지 않아서, 우는 나 자신이 너무 싫어서 1년 스케줄러를 갖다 놓고 울은 날을 체크해 가며 이성적으로 그 날짜를 줄여가려 노력해야 했던 나로서는 반가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선생님의 마지막 말은 무엇이란 말인가. 엉엉 울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니.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코와 목, 심지어 눈 미간 사이까지 콧물이 꽉 막힐 정도로 울고 있을 때의 숨 막히는 감정을 어떻게 행복이라 말할 수 있냔 말이다.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려면 더 살아보아야 하는가 보다.
울음은 그저 나의 나약함을 자꾸만 상기시켜 주러 때때로 찾아오는 불청객과 같아 나는 웬만하면 울음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보호자가 자꾸 우는 것이 반려동물에게도 좋지 않다고 하니, 눈물이 내게 어떻게 행복이 될 수 있겠나. 포레를 위해서라도 나는 더는 울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삼십 년을 넘게 살아온 나는 이제 잘 울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언젠가 포레가 떠나면 어떨까 생각할 때면 코끝이 찡해오곤 한다. 그러면 나는 지금 울지 않음으로써 모아놓은 눈물들을 그땐 끝도 없이 흘리겠구나 하고 생각하곤 한다. 어쩌면 그땐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뿐만 아니라 그가 말한 눈물에 대한 모든 견해를 부정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떠난 포레만 생각하면 눈물이 또다시 바다가 되는데요..? 선생님이 틀리셨어요." 하고 말이다.
포레의 엉덩이에서는 짠 바닷물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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