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이 이미 있습니다만..?
바야흐로 어느새 크리스마스 전 연례 마지막 행사인 핼러윈 시즌이 다가왔다.
이태원 참사 이후로 대놓고 당당히 핼러윈을 즐기기엔 무언가 찝찝함이 앞서지만 올해도 이태원 참사가 났던 바로 그 골목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다행히 사고 없이 무사히 지나가는 중인 듯 하지만, 돌아보니 어느 해보다 조용한 핼러윈 주간을 지나고 있는 듯싶기도 하다.
APEC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엔디비아의 젠슨황과 한국 대기업 회장들과의 깐부치킨 회동에 핼러윈이 밀려난 것일까. 조금 싱겁게 지나가는 핼러윈 주간에 아쉽긴 하면서도 원래 우리 것이 아닌 행사였으니 크게 섭섭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애초에 핼러윈은 관심을 두는 자와 두지 않는 자 들 사이에서 항상 논쟁이 일어왔던 '말 많은 문화'였으니까 말이다.
원래 우리 것이 아닌 문화이지만 나는 그래도 핼러윈을 좋아한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적어도 하루 정도는 눈과 마음이 즐거운 이벤트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나. 대신 미국의 문화가 아닌 우리나라만의 문화를 즐기는 날이었으면 싶은 생각도 든다. 추석이나 설날같이 전통 깊은 연휴에 더해 년에 하루 정도는 핼러윈처럼 젊은이들이 어른들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우리만의 이벤트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핼러윈 대신 매년 10월 셋째 주 토요일로 지정된 [한국 문화의 날]을 즐기는 건 어떨까? 이미 존재하는 우리나라만의 문화의 날이 있는데, 외국의 문화를 즐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애초에 핼러윈은 10월 31에 죽은 영혼들이 이승에 찾아오는 걸 쫒기 위해 유령분장을 하는 날로, 고대 켈트족의 행사에서 기인했다. 우리나라와는 관련이 전혀 없는 남의 나라 행사가 맞긴 맞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핼러윈은 유령복장을 넘어 그 해에 인기가 있었던 캐릭터나 인물을 따라 하는 것으로 바뀐 지 오래이다. 더구나 이제는 해외 인물대신 [오징어게임]이나 [케이팝데몬 헌터스] 같은 국내 인물들을 분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해외 문화에 한국분장을 하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 하긴 하다. 외국 영혼들이 이승에 내려왔다가 당황하겠다. 어쨌든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핼러윈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으니, 이 진심을 우리 것으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
어느 때보다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이때에, 내가 문화부 장관이라면 당장 공식적으로 [한국 문화의 날]을 핼러윈처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물 들어올 때 노를 확실히 저을 것 같다. 정치적 결정은 언제나 현실반영면에서 가장 늦게 느릿하게 따라오는 특징이 있지만, 그런 오명도 좀 바뀌어야 할 때가 아닐까. 매해 남의 나라 행사를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아쉬움 담아 남겨보는 글이다.
오늘 유령분장하는 날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