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이끈다는 것, 결국 내 탓입니다.
냉철해야 했지만 냉철하지 못했다.
2024년은 광고대행사들에게 참 어려운 해였다. 유수의 대행사들이 현금흐름과 경기침체로 무너지고 있었고, 알만한 중견급 대행사들이 모두 무너지는 어려운 해였다. 버티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현대표의 말을 위안삼았다.
필자는 올해 초 본부장으로 직급 승진과 더불어 새로오신 팀장님들과 함께 꾸려나갔다. 스타트가 좋았고 장미빛미래를 그리면서 되겠는데? 생각이 계속 들었다. 11월 현재 올해 KPI 실적 미달성이 자명하게 되었고 매우 쓰라린 결과로 돌아오게되었다.
그 결과 올해 함께 했던, 팀장님 2분께서 조직에서 이탈되게 되었다.
본부를 이끄는 것은 하나의 사업을 이끄는 대표와도 같다. 직접인건비, 간접인건비, 야근비, 택시비, 회식비, 법카, 공용비등 모든 것은 매출과 비용, 즉 숫자로 이루어지고 영업이익이 계산이 된다.
팀장일때와, 선임팀장일때, 실장일때, 본부장일 때 각 직급이 올라갈수록 책임은 막중해지고, 주어지는 정보도 많아지며, 요구되는 능력도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다. 항상 조직의 선봉장으로 칼을 휘두르고 언월도를 휘두르는 야전장군이었다. 하지만 필드의 야전장군이 아닌 본부로 왔을 때에도 결국 장군처럼 행동했다.
필자는 지금까지 사람을 최대한 믿고 기회를 주고, 자율권을 주어 성장해왔다. 그리고 그 믿음이 돌아올 때 너무나도 기쁘고 희열을 느껴왔다. 그 보람과 성취감 때문에 인상폭이 작아도 지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잘 되었을 때 이야기다. 그전까지 직급이 올라가고 회사와 조직이 성장하며, 잘 안된적도 크게 없었고, 힘들다 정도지 위기도 크게 느끼진 않았다. 그에 따라 가장 앞장서는 장군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임직원의 신뢰를 받아왔다.
하지만 안좋은 실적을 받았을 땐 완전히 무너진다.
인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Client적으로도 모두 연쇄적으로 문제가 연달아 터진다.
내가 팀장님들과 함께 하지 못함을 결정한 것은 임원진의 급진적인 결정도 있었고, 팀원들의 내부 의견도 있었지만 사실 핵심적인 결정요인은 아니다. 데리고 가느냐, 마느냐,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이 광고대행업이다. 결국 핵심은 이 사람들과 사업을 내년에도 지속할 수 있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국 조직을 이끄는 '내 탓'이다. 그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 중압감, 자괴감 다 돌아오는데 누구를 의지할 수가 없다.
냉철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갈등과 컴플레인 그리고 실적예상에 따라 이미 수개월 전부터 알고는 있었고 빠르게 조정할 수 있던 시기는 있었다. 결국 곪은게 터진것이다. 첫 본부를 이끌게 되는 자리에 있어 기존처럼 '믿음'으로만 갔던 것이 잘못이다.
채용도, 사람관리도, 수주율이 떨어진것도, 프로젝트 무산도, 예상치 못한 고객사 이탈도, 기존 고객사의 예상치 못한 광고비 축소도, 설사 재수가 없었고, 운의 영역이 작용했더라도 이 모든 것은 결국 조직을 이끄는 본부'장'의 책임이다. 팀장은 팀의 책임을 지는 것이고, 그 팀장과 함께 팀을 운영한 결과적 책임은 본부'장'인 필자에게 있다. 숫자에 감정이란 없는 것이니까.
팀원들, 조직내 인원들은 열심히 한다. 일부의 툴툴거림과 불만은 있었지 모르겠으나 야근 안한 사람도 없고 다들 열심히 해주었다고 믿는다. 필자도 올해 죽어라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왜 넌 죽어라하는데 왜 사람을 쓸줄 모르냐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쉬지않고 그저 열심히 죽어라 일을 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일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죽어라 일한게 죽어라 일하지 않아서 인가?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필자도 다시 기회를 받은 것이다. 본부장으로 책임을 지고 가장 쉬운길은 퇴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퇴사는 답이 아니다. 조직을 다시 재세팅하고 사업을 이어나가야 현재 있는 조직구성원들을 지킬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지기싫다.
내가 더 신경썼더라면...내가 더 디렉팅을 잘했더라면...내가 더 빨리 캐치했다면...내가 더 챙겼더라면...내가 그런 판단을 하지 않았더라면...모든 것이 꼬리표처럼 물어진다. 이유를 찾으면 만 가지도 찾겠다. 그럼에도 제안서와 다양한 캠페인을 신경쓰면서 하루하루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 모습에 자괴감이 오기도 한다. 정말 요 몇일사이 몇번을 울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필자를 호랑이처럼, 강철처럼, 강한 사람으로 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회사에서 많이 운사람이다. 회사직원들이 대부분 알더라...이번 임원과 인사위, 팀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팀장해임을 말씀드리는 그 순간에도 울었다. 차마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그간 쌓아온 정이었을까. 필자의 잘못을 느껴 그런것일까. 그저 그 상황을 표현해 마음을 편하게 하고자하는 것이었을까.
그럼에도 나아가야한다. 4분기에 신규 고객사들도 수주들이 되어 들어오고있고, 그 안에도 서로 농담과 웃음이 있고, 좋은 제안과 기획에 박수치기도하고, 지금 꽃피우는 친구들과 함께 긍정적인 부분도 함께 있다. 좋은 일과 안좋은 일은 함께 공존한다. 다시 팀을 리빌딩하고 내 스스로를 다짐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 장군이 아닌 본부장으로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생존'과 '실적'만이 아닌, 우리 본부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 무엇을 잘하는 본부인가? 어떤 크리에이티브를 지향하는 본부인가? 무엇을 어떤 문화를 가져야 하는가? 필자는 어떤 본부장이 되어야 하는가? 어디까지가 관여할 부분이고 영역인가?
필자는 ESTJ의 직선적인 성향이고, 이전에도 고민과 결정을 거쳐 있었지만 올해 이렇게 고민이 심각하게 드는 것은 처음이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치는건 회피고 그저 이 순간을 이 불편한상황을 외면하고자하는 내 자신임을 안다. 누군가에게 필요로 하는 사람인가? 잘해야지. 내년엔 웃어야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팀원들에게 카멜레온 같이 괜찮은척도 해야하고 태도도 바꾸고 어르고 달래고 압박하고 이러한 모습은 무엇인가.
무겁고 두렵고 괴롭고 힘들다. 하지만 그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는다. 아니 진정한 위로를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조직을 이끈 '장'=리더이기 때문이다. 사업부를 이끈다는 것, 그것은 누구탓도 아닌 내 탓이다. 도저히 어딘가에서 원인을 돌릴 수 없는 한문장이다.
오늘도 야근을 함께한 팀원들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리더답지않게 대책없게도 무책임하게도 오늘을 그저 열심히 살아보는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