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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사 어름 Oct 05. 2024

워밍업 : 항해사이지만 고기 잡을 줄은 모릅니다

선원에 대한 5가지 오해

 선원은 그리 대중적인 직업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어릴 적부터 노출된 갖가지 만화나 영화, 또는 들리는 소문에 의해 선원의 이미지가 정해지고는 한다. 우리나라 사람에 한정해서 선원의 이미지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작품들에는 만화 <원피스>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정도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준 이미지는 왜곡도 한계도 분명하다.

 만화 <원피스>는 나를 비롯한 8090년대 세대를 넘어 요즘 학생들에게도 인기를 얻는 만화다. 물론 이 만화를 접했다고 해서 실제 배에 고잉메리호처럼 동물 머리가 달렸다고 생각한다거나, 선장이 루피처럼 밀짚모자를 쓰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일반 민간인 선원보다는 해적이 좀 더 친숙할뿐더러, 만화 속에서 해적이 아닌 선원이라면 해군 선원밖에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복장이 대충 만화에서 봤던 것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일반 선원들도 하얀 옷에 스카프를 찰까? (출처: 만화 원피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는 주인공 박새로이가 원양어선을 타서 굉장히 큰 목돈을 벌었다는 스토리도 나온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원양어선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실 이미지를 구축했다기보단 '대체 그 원양어선이란 곳이 뭐길래 돈을 그렇게 잘 버나', '그 많은 돈을 그냥 주지는 않을걸' 하는 추측성의 이미지만 생겨났을 뿐이다. 심지어 딱히 내용을 의식하지 않고 본 사람은 주인공이 원양어선을 탔는지 뭘 했는지 기억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원양어선을 타러 가는 박새로이 (출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작품뿐만이 아니라 일명 '카더라 통신'과 뉴스의 자극적인 기사들도 이미지 왜곡에 한몫한다. 어쩜 주변의 소문을 들어보면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선원들이 그렇게나 많은지. 게다가 뉴스에서는 선원들 간의 폭력이나 살인과 같은 자극적인 내용을 주로 보여주기에 안 그래도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저 바다 너머가 훨씬 무섭고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도 요즘에는 박새로이의 관심 끌기 덕분이었을까, 유재석, 조세호 씨가 진행하는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원양어선의 1등 항해사를 하고 있는 분과, 컨테이너선의 1등 항해사를 하고 있는 분, 선장을 하다가 그만두고 교수를 하고 계시는 분 등 여러 분들께서 요즘의 선원은 어떠한지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방송에 출연한 원양어선 일등 항해사 김현무 씨 (출처: 유퀴즈 온 더 블럭)

 

 하지만 개인적으로 누군가에게 배를 탄다고 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을 돌이켜 보면, 아직도 내가 타고 있는 '외항상선'이 아닌 '원양어선'에 인식이 그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는다. 그래서 상대방이 "아, 그 박새로이가 탄 거 말씀하시는 거죠?" 하면 그냥 대충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얼버무리고 넘어가고는 한다. 또는 "어떤 배는 칼부림이 나서 선원 한 명이 죽었다던데 그쪽은 위험하진 않으세요?"라고 질문을 받으면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나 곤란해하다가 "그 정도로 위험하진 않아요" 하며 단답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이런 질문들은 모르는 입장에선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그런 똑같은 질문을 해주시는 분들이 워낙 많다 보니 대답하는 입장에서는 똑같은 대답을 여러 번 하기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큼지막한 오해들은 한 번이라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앞으로의 내 이야기에 공감하기 다소 어려울 수도 있기에 한 번 뭉뚱그려 대답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오해 : 선원들의 복장은 해군 복장이다?

 원피스에 등장하는 해군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흰색 계열의 옷을 입고 있다. 파란색 스카프를 두른 그 모습은 구글에 '선원'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가장 자주 나오는 대표적인 이미지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해군을 경험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요즘 해군들도 비슷한 복장을 착용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해군을 제외한 일반 선박에서는 그런 해군 복장을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 번째 복장, 근무복 (출처: Traversiers)

 우리가 입는 복장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근무복 또는 평상복이라고 불리는 제복으로써, 어깨에 견장을 달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이미지의 제복이다. 이 복장은 보통 선내의 항해사들만 근무 중일 때 주로 착용하며, 3등 항해사부터 노란 줄 한 개로 시작해 2등, 1등 항해사 및 선장까지 줄이 하나씩 추가되어 선장님은 견장에 노란 줄 네 개를 달게 된다.


두 번째 복장, 작업복 (출처: EBS 다큐 '나는 선원이다')



 두 번째는 흔히 작업복이라고 부르는 상하일체형 작업복이다. 갑판 외부에서 작업을 하게 될 경우 선원들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헬멧과 작업복, 안전화를 반드시 착용하고 나간다. 회사가 어디냐에 따라 작업복의 디자인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내가 다니는 회사의 경우 주황색 작업복에 역반사재 테이프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형태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실은 근무복과 작업복보다 일상복을 입을 일이 더 많다. 하루 8시간 근무를 한다고 했을 때 24시간 중에 2/3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일 테니 말이다. 보통 배에는 이미지 관리할 대상이 없다고 생각해 인터넷에서 싸게 주고 산 옷들을 챙겨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배에서 입은 옷들은 내릴 때 다 쓰레기로 버리고 내리는 경우도 많다. 물론 연인이 놀러 오는 경우를 대비해 필살기(?)를 최소 하나씩은 구비해 놓는 게 덕목이다.


 두 번째 오해 : 대체로 배는 원양어선?

 해외로 나가는 배를 '원양선' 또는 '외항선'이라 하고, 그중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배를 원양'어'선, 컨테이너나 자동차 등의 화물을 실어 나르는 배를 외항'상'선이라 지칭한다. (여객선 또한 상선의 일종이다)

 외항상선이라고 불리는 것들 중 그나마 가장 대중에게 익숙한 것이 컨테이너 운반선일 것이다. 내가 주로 타는 선종이다. 보통 뉴스에서 무역이나 수출입 동향과 관련된 내용을 다룰 때, 국밥처럼 송출하는 장면이 바로 '컨테이너 터미널'이다. 말도 안 되는 크기의 크레인이 배에서 컨테이너를 집어올리고, 트럭에 컨테이너를 올려놓는 장면은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하다. 그렇다. 딱 그런 배 안에 나 같은 사람들이 있다.
 

딱 이런 종류의 선박에 나같은 사람들이 타고 있다 (출처: KBS 부산)


 외항상선에 컨테이너선만 있냐고 하면 아주 크나큰 오산이다. 왜냐하면 외항상선 중에서 컨테이너선의 비중은 고작 1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장 비중이 높은 선종은 21%를 차지하는 벌크선*이고, 그다음이 20%를 차지하는 유류 운반선이다.


*벌크선 : 철광석이나 석탄 등의 화물을 배 안에 산처럼 싣고 운반하는 화물선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알던 원양어선은 이에 비하면 어느 정도일까? 척수로 따지면 컨테이너선보다도 훨씬 적은 2% 정도에 불과하다. 전 세계 선박의 50척 중에 1척 정도만 어선이라는 뜻이다.

전세계 선박 중 컨테이너선은 10%, 어선은 2% 정도 된다고 한다.


 또한 2024년 한국선원통계연보에 따르면, 국적선 기준 원양어선 취업 인원이 1,104명이고, 외항상선 취업 인원은 8,634명이므로, 비율 상으론 1:8 정도로 외항상선의 선원 비중이 훨씬 많다. 따라서, 당신 주변에 배를 탄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통계적으로 상선을 타는 사람일 확률이 어선을 탈 경우보다 8배 정도 더 높다.


원양 선원들 중 80% 이상은 외항상선 선원이다.


 따라서, 주변에 누군가 배를 탄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선이라고 지레짐작하기보다 "어선 타세요, 상선 타세요?"라는 질문을 한 번 해보길 권한다. 만약 그들이 상선을 타고 있다면 자신이 타는 곳이 어선이 아니라고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내적 기쁨을 느낄 테니까 말이다.


 세 번째 오해 : 선원은 안전하지 않다?

 뉴스에서는 주로 선원들의 칼부림, 선박의 침몰, 살인 사건, 해적에 의한 나포 등을 주로 방송한다. 당장 '선원'이란 단어를 검색해 보면 뉴스 기사로는 대체로 그런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런 이유로, 일부 사람들에게 선박은 매우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다.

 하지만, 이렇게 내용들이 자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순전히 이것이 뉴스 기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칼부림, 침몰, 살인 사건, 나포 사건 등을 내 주변에서 들어본 적이 손에 꼽는다. 특히 칼부림이나 살인 사건은 아예 들어본 적이 없다. 나도 뉴스에서 보는 게 다일뿐이다. 일이 터지지 않고 잘 항해하는 화목한 분위기의 선박이 뉴스에 방영될 이유가 전혀 없다. 게다가 원래부터 선원들은 대중의 삶에서 잘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기에 유일하게 세상에 노출되는 순간은 사고가 났을 때밖에 없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기에 표본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건 사고는 있기 마련이다.


 바다는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이면서 접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방송 매체 외에는 없다보니, 뉴스에서 보내는 자극적인 기사만이 우리의 뇌리 속에 박힐 수밖에 없다.



 네 번째 오해 : 바다에선 인터넷이 안 된다?

 선내 인터넷의 속도나 안정성은 아직도 개선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고, 인터넷의 질이 그 회사의 복지와 직결된다고 할 정도로 회사마다 인터넷 사용 퀄리티가 천차만별이다.

 다행히 내가 있는 회사는 인터넷 연결이 나쁘지는 않은 편이라, 연결이 양호하면 유튜브나 인스타 정도는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육상에 비하면 사용하기에 불편한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은 항상 선물 하나를 보낼 때마다 30분 이상씩 걸리는 것은 기본이고, 가끔 몇 시간씩 인터넷이 아예 먹통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다섯 번째 오해 : 생선이 주식이다?

 배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모두 조리장이 조리원과 함께 선내의 식자재 창고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만든다. 그리고 식자재는 대체로 특정 항구에서 취향껏 싣는다.

 그래서 생선 요리가 자주 나오는지는 순전히 그 배 선원들의 취향에 달려있다. 생선을 유독 좋아하는 배라면 생선 비율을 높게 가져갈 수 있겠지만, 대체로 배에서는 거의 돼지고기나 닭고기의 소비량이 훨씬 많은 편이다.


 선원에 대한 오해는 이외에도 매우 많겠지만, 여기서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다. 앞으로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생긴다면 그때그때 좀 더 부연 설명을 하거나 따로 시리즈로 구성해 보겠다. 그럼 사족은 그만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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