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배에 선장 - 기관장 - 항해사 - 기관사 등으로 직급 체계가 나뉜다고 착각하는데, 사실 배에서의 진짜 직급은 흔들리는 배에서 얼마나 균형을 잘 잡는지를 뜻하는 '균형력'에 따라 매겨진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균형력'은 또 몇 가지 능력으로 분류되는데 그중에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자신의 몸을 가누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휘청거리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휘청거림은 뱃일에 잔뼈가 굵은 선장님조차도 100%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얼마나 휘청거림을 '덜 티 나게' 할 수 있는지가훨씬 중요하다.
내가 개인적으로 휘청거림이 티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터득한 방법 중 하나는 배가 기울어진 방향으로 걷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배가 아래로 기울어졌을 때는 마치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주거나, 배가 위로 기울어졌을 때는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옆으로 서 있다가 주춤하며 게걸음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그럴듯하다.
어떤 선장님께서는 배가 너무 흔들린 나머지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떨어지는 순간 눈을 부릅뜨고는 두 발을 동시에 착- 하고 짚으며 바닥에 착지했다고 한다. 마치 외부의 힘에 의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일부러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난 듯한 극한의 자연스러움이었다. 듣는 순간 '이것이 바로 선장이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주 유능하고 노련한 선장님이심이 분명하다.
물론 균형력이 아직 배양되지 않았더라도 휘청거림 자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응급처치가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주변에 비치된 손잡이를 잡고 다니는 것이다. 다행히도 웬만한 배에는 이곳저곳에 잡고 다닐 수 있는 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양발을 어깨너비보다 넓게 벌려 서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옆으로 무게중심이 쏠리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잘 서 있을 수 있다.
균형력이 가미되지 않은 엉거주춤한 휘청거림은 간혹 김흥국 선생님의 호랑나비 안무를 연상케 한다. 만약 이 글을 보는 선원들 중 누군가가 일상이 너무 지루하고 힘들다면 잠깐 피식하며 웃을 수 있는 극약처방이 하나 있다. 바로 주변 사람의 휘청거림에 [아싸, 호랑나비] 효과음을 집어넣어 보는 것이다. (단, 육성으로 내뱉으면 당사자와 싸울 수도 있으니 유의하기 바란다.)무방비의 상태에서 휘청거렸을 때의 모양새는 호랑나비 안무와 상당히 찰떡이다.
균형력에는 이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배의 흔들림'과 관련된 능력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부가적인 능력 중의 하나는 '자신의 물건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걸 있어 보이는 용어로 으레 물건을 '고박한다'고 표현한다. 배가 많이 기울면 양쪽 20도로 거의 40도가 기우는데, 그럴 때일수록 내 소중한 물건이 고박은 잘 되어 있는지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보통 깨지기 쉽거나 떨어졌을 때 내가 대신 떨어진 것 같이 마음이 아파올 만한 물건들이 있다면, 나 같은 경우에는 각종 로션 등을 담은 병들이나 태블릿 정도가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 주변의 어떤 사람이 선원 출신인지 간접적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그 사람 앞에서 테이블 가장자리에 컵이나 핸드폰을 놓아보자. 만약 그가 누가 자신에게 침이라도 뱉은 양 아주 경기를 일으키며 즉시 그 물건을 테이블 중앙에 갖다 놓는다면, 그는 선원 출신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나의 경우엔 떨어짐을 방지하는 것만큼이나 신경 쓰는 게 있는데 그건 바로 '흔들림에 의한 소리를 방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카스병이 책상 면을 타고 이리저리 미끄러지며 움직인다거나, 얇은 공책 위에 불균형하게 올려진 텀블러가 달그락거린다거나 하면, 그게 떨어지고 안 떨어지고에 상관없이 그 상태에서는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다.
어떤 경우에서든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물건을 배치하고 떨어지지 않게 고박시키는 작업은 잠을 자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의식 중 하나다.
이렇게 승선 과정에서 터득하는 균형력은 균형력이 발휘되어야 하는 상황에서만 발휘되어야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못하다. 육지에서도 물건을 테이블 가장자리에 못 두는 도착증이 생겼던 것처럼 승선 중 발휘되었던 균형력이 육지에서도 불필요하게 유지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는 균형력이라는 것이 우리의 몸이 본능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스위치를 온오프 하는 것처럼 딱 잘라 켰다 끌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에게는 배를 내리고 나서도 몸이 계속 승선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균형력을 발휘하려는 관성이 남아있는데 이것을 '육지멀미'라고 부른다. 승선 중에 계속 경험하던 선체 진동이나 주기적인 흔들림이 갑자기 사라지니 몸에서 잠시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인라인스케이트나 자전거를 오래 타다가 막 내려서 걸을 때 걷는 것이 어색한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육지'멀미'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멀미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의 경우와는 약간 다르다.
이러한 멀미 증상은 배에서 균형력을 얻기 위한 일종의 댓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고작' 그 균형력을 위해 육지멀미의 불쾌감을 감수해야 하냐며 수지타산이 맞는 거래인가 묻는다면 그것은 더욱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내가 여태 '균형력'이라고 칭했던 가상의 능력은 비단 선원들에게만 필요한 능력은 아닌 것 같다.
불안정하고도 불공평한 세상에는 필연적으로 파도가 치고 때론 비바람도 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배가 흔들린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렇게 흔들리는 것이 기본값이라면 차라리 이런 흔들림에 적응하는 편이 백배 낫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그랬듯 여러분도 파도를 조금만 경험해 본다면 각자 나름의 '균형력'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인생이 행복하려면 인생을 불행으로 봐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인생에서 행복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조금의 불행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행복한 게 매우 '당연한' 것인데 자신은 그 당연한 것조차 갖지 못하는 불운의 주인공이라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반면에, 인생 자체를 불행으로 보는 사람은 이와는 반대다. 그는 불행으로 점철된 세상에서조금의 행복이라도 느껴지면 뜻밖의 횡재라며 매우 반가워할 것이다. 그에게는 물 한 방울조차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행복이 가득 찬 존재일 수 있다는 말이다.
파도가 넘실대는 것이 일종의 '불행'이라 칭한다면, 우리는 울렁이는 적당한 양의 불행 위에서 넘실넘실 흔들리며 우리만의 균형력으로 그 세상에 적응하면 된다. 그러고 나면 한 꼬집의 행복만으로도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혜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