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퇴사, 그리고 (1)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꾸역꾸역 남들이 하는 만큼 살아오려고 노력했다.
고등학생 때는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도 했고, 대학에 가서도 쉬지 않고 여러 동아리와 대외활동을 하며 스펙을 쌓았다.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업계에서는 꽤 규모 있는 홍보회사에 들어갔고, 또 열심히 일했다.
일한 지 얼마 안 돼 그만두는 동기들을 보며 버티지 못하는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나가는 것도 용기지만 버티는 것도 용기라고 나를 다독이며 월급과 상관없는 일들에 주말을 반납하기도 했고 "주말에 약속 있니?"라는 상사의 질문에 늘 "없습니다"가 앞서는 삶을 살았다.
중간에 회사를 한 번 옮기면서도 돈이 있는 삶은 소중한 거라 믿었다.
세상엔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내가 하고 싶다 외치는 것들도 다 돈이 있어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돈을 열심히 벌었다.
그러다 뚝-하고 무언가 끊어졌다.
사실은 늘 하고 싶은 걸 하는 삶을 꿈꿔왔다.
글을 쓴다거나, 세계 여행을 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침에 알람 맞추지 않고 더 자기, 오후 2시에 피자 먹기, 낮잠 자기처럼 별 것도 아닌 것들.
하지만 회사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
그게 너무 간절히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건 미루지 않기로 결심했다.
영화 <칠월과 안생>에서는 결혼을 앞둔 주인공이 결혼식에 신랑이 나타나지 않자 모든 걸 버리고 떠난다.
나도 그런 계기가 생기기를 간절히 바라왔다.
갑자기 모든 걸 버리고 쉬어도 모두가 이해해 줄 만한 그런 사연.
하지만 사실 칠월은 결혼식 전날, 남편에게 부탁한다.
"결혼식에 나타나지 말아 줘. 그래야 내가 변할 수 있어."
누구나 이해해 줄 인생의 계기는 기다리면 오는 게 아니었다.
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선택'이었을 뿐.
그래서 아무런 계기도 없이 그저 '쉬고 싶다'는 이유로 퇴사하기로 했다.
아침마다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싶게 울려대는 알람이 싫었고, 피곤하고 예민한 상태로 지하철을 타면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을 극도로 미워하는 내가 싫었다. 그들도 그저 이 아침에 회사로 향하는 직장인일 뿐인데 내가 앉을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내면에 분노가 들끓는 나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쉬고 싶었다. 자고 싶었다.
그냥 나 좀 가만히 둬.
더 이상 회사에 앉아있다가는 그대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영화였다면 홧김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대로 가방을 들고나가서 한강이라도 갔겠지만,
나는 그로부터도 약 한 달이나 꼬박 출근하면서 '뭐해먹고살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물론 답을 찾았던 건 아니다.
'뭘 해 먹고살겠다'라는 결정보다 '뭐라도 해 먹고살겠지'라는 믿음을 쌓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하고 싶은 일 1순위, 퇴사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