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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Good Dec 14. 2020

아빠에게 육아란?

멀고도 가까운 아빠의 육아 느낌

가끔 TV 예능에서 나오는 질문이 문득 떠오른다. 누구에게 무엇이란?(아 여기서 세대 차이가 날지도 모른다. 요즘 예능은 워낙 많이 바뀌는 중이므로…)

나에게 육아란? 마주하면 고통스럽다가도 멀리하면 그리워지는 그 무엇. 그것이 나의 첫 느낌인 것 같다. 마주하더라도 즐겁고 행복해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바뀌는 건지 내가 바뀌는 건지도 모르게 10여 년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독박 육아'라고 요즘은 누구 한 명이 아이를 온전히 돌보게 되면 이런 말을 쓰는 것 같다. 요즘같이 아빠들이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육아나 가사에도 많이 참여하는 시대는 이전에 없었을 것 같다. 나름대로 하느라고 해도 결국 난 한수 아래 인 셈인 것이다. 

아이를 온전히 낳고 모성애로 아이를 키우는 게 엄마라면, 아빠는 어찌 보면 처음엔 구경꾼 같다. 출산의 기쁨을 함께 나누지만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세상에 나온 아이를 보면서 눈물 흘리며 기뻐하는 엄마의 그 알 수 없는 감정에 비하면 사실 분위기 맞추는 구경꾼 일지 모른다.
그래서인가, 엄마가 보기에 늘 아빠는 부족하다. 아이들을 대할 때,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못마땅할 수 있다. 육아를 하지 않아도, 하고 있어도 흔히 말하는 독박 육아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보면 아빠들은 구경꾼 취급을 받기도 하고, 사실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잘 보살피고 키우는 아빠들이 많은 세상이고, 육아에 전문가라는 남자분들도 많지만 그건 육아의 대상인 아이들의 기준보다는 육아를 하는 주체인 어른이 만든 기준에 보다 부합하는 평가일지 모른다. 예쁜 그릇에 뽀로로 그림을 소시지로 만들어 멋진 밥을 만들 줄 아는 아빠. 물론 그거 만들다가 망칠까.. 노심초사하면서 아이들이 오면 저리 가라고 손사래 치면서 가끔은 혼도 내면서, 열심히 만든 그 예술 식품. 그건 주인이 누군지 모를 일이다. 

나도 가끔 아이를 위해서 뭔가 열심히 하려고 하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을 혼내는 엉뚱한 상황이 발생한다. 내가 지금 누굴 위해 하고 있는 건가?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밥에 반찬 몇 개 겨우 올려놓고 아이들 돌보는 엄마의 손길과 눈빛은 어찌 보면 진짜 아이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태어나는 아이가 내 아들인지 느끼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리고 점점 자라면서 내가 키우고 돌봐줘야 하는 거구나 느끼는데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육아를 해야 하는 시간 동안에 어찌 보면 나는 육아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고개를 끄덕이기 위한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점점 많아져 육아에 조금(?) 동참하게 되는 시점 즈음에, 나에게 육아는 마주하면 고통스럽다가도 멀리하면 그리워지는 그 무엇이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또 그렇게 흐르고, 아이들은 벌써 자기 나이에 몇을 더 더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인격체가 우리 가족의 구성원으로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 정말이지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진 아이들을 마주하고 있을 때, 이제 육아는 그냥 사람과의 관계이고, 가족이 될 수 있었던 그 무엇이고, 그래서 현재 나에겐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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