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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 Dec 23. 2018

엉덩이가 무거워지는 곳, 다합

오전 8시 카이로를 출발한 버스가 오후 6시 즈음 다합에 도착했다. 당연히 국토를 가로질러갈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버스는 이집트 영토의 가장자리를 따라 빙 둘러 갔다. 가는 동안 검문소에서 군인(?)들이 차를 세우고 신분증 검사를 했다. 그 중 두 번은 모든 승객의 짐 검사를 동반했다. 군인들은 가방을 열고 짐을 뒤적이며 꼼꼼히 살폈다. 안 그래도 돌아가는 길이 더 지체됐다. 그래도 테러 없이 무사히 가고 있는 게 어딘가 싶어 군말 없이 군인들이 흐트러놓은 짐을 정리했다. 사실 뭐라 할 수도 없었겠지만. 


여행 루트에서 이집트를 빼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다. 한동안 테러 때문에 이집트가 뉴스에 자주 오르내렸다. 하지만 피라미드는 포기해도 '다합'은 꼭 가야만했다. 오래 전부터 다합에서 다이빙을 해보리라 마음 먹었다. 따지고보면 이상한 고집(?)같은 거다. 물놀이를 전혀 하지 않고 바다에 가도 바라보기만 하면서 다합에선 꼭 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싶었다. (이것 말고 이상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등산은 일절하지 않지만 언젠가 히말라야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다.)


물에 들어가기 전, 필기부터 통과해야 했다. 시험 공부를 하며 위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불안감이 불쑥 올라왔다. 수술 전 동의서에 온갖 최악의 상황들이 다 적혀있는 것처럼, 책에는 가장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 언급돼있었다. (벌써 가물해졌지만) 숨을 참을 경우 폐포가 터질 수 있고, 급상승할 경우 감압병에 걸릴 수 있다고. 공부를 할수록 빨리 물에 들어가고 싶다는 기대감보다 '괜히 온 걸까'하는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물 속에 첫 발을 내디딘 순간,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다. 과연 머리를 담글 수 있을까. 고민도 잠시. 선생님과 다이빙 버디가 사라진 뒤 선택의 여지 없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바다 위에 혼자 남겨져 있는 게 더무서웠다. 정작 물 속에선 대체로 평온했다. 처음 만난 세상에선 내가 만들어낸 공기방울 하나조차도 신기했다. 다시 아기가 된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로웠다. 부력 조절을 못해 위로 혼자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갔다 할 때면 불안해지기도 했지만, 매번 무사히 나온 덕에 입수를 두려워하면서도 다음날이면 또 다이빙에 나섰다. 


(다이빙 이야기는 이전에 썼으니 여기까지만...)


다합 다이빙 포인트와 다이빙 센터, 그리고 수업 듣는 동안 머물렀던 숙소(a.k.a. 다이빙 선생님 집)


다이빙 수업이 없는 시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일랜드를 떠나 3개월 간 사나흘에 한번꼴로 숙소를 옮겨다니며 지낸 탓일까. 이곳에선 엉덩이가 무거워졌다.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다 잠을 자고, 숙소에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갔다.


처음부터 얼마나 있을지 정하고 오진 않았다. 정해진거라곤 6월 초 카이로에서 리우 데 자네이루로 가는 비행기 날짜 뿐. 막연히 요르단 여행, 이집트 일주 등을 생각해보긴 했는데 '여행자의 블랙홀'이라는 다합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다는 다이빙 선생님마저 꼭 가야 한다고 추천한 요르단 페트라(나 역시 가보고 싶었던 곳)를 열심히 알아보다 결국 '한국에서도 갈 수 있을 거야'라고 타협했다. 성경에서 자주 보았던 모세가 시내산도 '다이빙 후 질소가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한다'는 핑계로 포기했다. 빈둥대다 피라미드도 못 보고 떠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아부심벨 신전' 사진을 보고 드디어 엉덩이를 뗄 수 있었다. 



버스 사무실에 가서 카이로행 버스 티켓을 사놓고 마지막으로 다합 곳곳을 둘러보았다. 떠날 때가 되어서야 "사진 많이 남겨요"라고 말했던 선생님 말이 떠올랐다. 이곳을 거쳐간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서 "오랫동안 있었는데 사진은 별로 없네요"라고 후회했다고. 그 얘길 듣고도 매일 '내일'로 미루며 눈으로만 슬렁슬렁 풍경을 즐기다 마지막 날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왕창 찍었다. 늘 푸르던 바다, 슈퍼갈 때마다 지나쳤던 카페 앞 그림 그리고 나와 같이 바다를 즐기던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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