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ak Nov 03. 2018

셀축과 에페소스를 소소하게 여행하는 법

어릴 땐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 명확하게 배웠다. 친구를 때리거나 공공장소에서 뛰어다니며 시끄럽게 떠드는 건 해선 안 될 일이었다. 반면 길을 건널 때 손을 드는 것과 부모님이 말씀에 따르는 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어른이 되고는 그 경계가 흔들릴 때가 있었지만) 어릴 때 익힌 건 꽤나 삶에 뿌리 깊게 박혔다.


잔디밭에 들어가는 건 해선 안 되는 일의 범주에 속했다. 어릴 때 대부분의 잔디밭 앞엔 ‘들어가지마시오’란 푯말이 붙어있었다. 오래 전, 시드니 여행에서 잔디밭 앞에 ‘들어가 맘껏 즐겨’란 내용의 안내문이 걸려 있는 걸 보고 신기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은 들어가도 되는 곳이 많지만, 혹 어딘가에 안내문구가 붙어있는 건 아닌지 가끔씩 살펴보게 된다.


유적지에 들어가거나 유물을 훼손하는 건? 이 역시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터키 셀축에서 만난 그의 기준은 달랐다.


시내를 걷고 있을 때 '또' 누군가 말을 걸었다. 동네 구경을 시켜준다기에 그를 따라나섰다. (돌이켜보니 이때쯤엔 호의와 상술 사이에서 내 나름의 균형을 잡는 데 도가 튼 것 같다) 여긴 어디고 저긴 어디고 설명과 내 신상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이쯤은 애교랄까. 그러다 그는 재미난 것이라도 발견한 듯 나를 방치된 유적지처럼 보이는 곳으로 이끌었다. 그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고는 신전 기둥처럼 생긴 것 위에 판판한 곳을 향해 던졌다.


"체스 알지? 이건 그런 놀이판이야. 기둥 위 홈이 패인 부분에 돌멩이를 넣으면 소원이 이뤄져. 어서 해봐."


복원 공사 중이라거나 발굴 중이라는 안내문도, 들어오지 말라는 펜스도 없었지만 내가 배워온 바에 의하면 이렇게 맘대로 들어가는 것부터가 잘못된 행동이었다. 게다가 돌을 던지라니... "진짜 그래도 되는거야?" 물으니 "왜 안돼?"란 답이 돌아왔다. 그러게 왜 안 되는 것일까. 위를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돌멩이를 올려놓았다. 그의 성화에 결국 돌멩이를 들었다.

문제의 장소
문제의 장소



고대도시를 여행할 때면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설명이 없었다면 돌무더기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들 사이에서 의미를 가진 무언가를 찾아내기에.


에페소스에는 유명한 발바닥이 있다. 이 발바닥을 발견하려면 주위뿐 아니라 발 밑도 잘 살펴야 한다. 매춘 광고물이라는데, 자세히 보면 희미하게 여자 모습이 보이고 왼쪽에 점을 찍어 만든 하트가 보인다. 재미있는 건 발이다. '이리로 발길을 옮기라'는 의미 같은데 저 발보다 작으면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걸 안내하는 용도로 사용됐다고 한다. 벨기에 여행갔을 때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항구가 건물에 백조가 마주보고 하트를 만드는 대신 서로 등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게 매춘 장소 안내 표시라고 했다. 물건을 하역하고 바로 떠나야 하는 선원들이 빠르게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경악했던 중국 화장실을 떠오르게 하는 화장실도 인상적이었다. 중국 여행을 미루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화장실 비중이 컸다. 문없이 옆 사람이랑 대화하며 일을 본다고? 고대의 에페수에서도 그랬던 모양이다. 구멍들이 나란히 뚫려있었다. 당시엔 긴 옷을 입었을테니 충분히 가려졌을지 모르겠지만 사랑방처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일을 보다니... 상상해버렸다.


바닥엔 빨래판처럼 홈에 패여있는 돌들이 있었는데, 비가 오면 대리석 바닥이 미끄러워 만들어놓은 것이라 한다. 그리고 레고 블럭같은 돌은 지진에 대비해 튼튼하게 건물을 쌓을 수 있도록 만든 거라고 책에서 보았다. 저 돌은 제자리가 어디인데 지금 저기 있는건지.

화장실(좌)과 블럭모양의 돌

에페스에 간 날은 파란 하늘이 좋았지만, 너무 쨍쨍해서 힘든 날이었다. 그늘도 마땅히 앉을 곳도 없는 찾기 힘든 이곳에서 제일 부러웠던 건 고양이들. 터줏대감들답게 명당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평온하고 편안해보일 수 없었다.

이곳의 진짜 주인들

그러면서도 '쟤들이 저기 올라가도록 냅둬도 되나'란 생각이 들었다. 안내문구나 줄을 쳐서 가까이 가는 걸 막지 않아 사람들이 유물을 만지고 앉아보고 하는 것도 저래도 되나 싶어 불안해하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고양이들까지... 내가 지나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에 강박을 가진 인간인건가.

매거진의 이전글 터키, 파묵칼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