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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May 04. 2023

이 모든 서툶은 결국 사랑 때문이다

축구를 계속하기 위해 시작한 수영

나는 새해가 밝았다고 해서 새로운 계획을 짜거나 결심을 세우지 않는다. 그러면 결국 해내야 하니까. 그런 내가 새해부터 한 가지 결심을 세웠다. 바로 수영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축구 경력 9개월차. 막 공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시기. 운전으로 치면 아직 '초보 운전' 딱지를 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끼어들기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도로 끝에 서버리고는 울상을 짓는 일따위는 하지 않는다. 달려드는 상대편이 무서워도 일단 머리 들이밀 실력 정도는 생긴 것 같다.


그런 내가 수영을 시작했다. 생전 물에 떠본 적 없어 킥판을 들고 어린이용 풀장 물 안에 코를 박고 '음파 음파'를 연습하는 중이다. 마치 또다시 '주행 연습 중' 스티커를 붙이고 도로 앞에 선 기분이다.



부상을 딛고 수영을 등록하기까지


수영은 '축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공을 찼더니 몸에 무리가 와 부상이 잦아졌고, 그 덕에 매일같이 드러누웠다. 골반 부상으로 온종일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있던 어느 날, 문득 스스로가 한심해 견디기 힘들어졌다.


'건강해지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가? 이게 대체 무슨 삶이야.'


취미가 삶을 잡아먹은 순간, 환멸은 피어났다. 삶의 대부분을 축구하는 데 갈아 넣었더니 부상 한 방으로 모든 게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이건 분명 건강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그때 찾은 운동이 수영이다. 운동하다가 부상이 생길 염려도 없고 타인과의 접촉도 최소화되며 코어(척추와 복부, 허리 골반부 등 몸의 중심 부분)를 다잡아주어 내 몸을 좀더 건강한 쪽으로 밀어 올려줄 수 있는 운동.


수영하면 코어 힘 좋아지고, 코어 힘 좋아지면 축구 몸싸움 대장으로 거듭나겠지? 내가 비록 지금은 남들과 몸싸움할 때 비명과 함께 종잇장처럼 날아가지만, 조금만 기다려라. 다 이겨버리겠어.


그렇게 나는 운동복 대신 수영복을, 축구화 대신 수영모를 착용하고, 운동장 대신 물 위에 누웠다.


             



참고로, 살면서 한 번도 수영을 시도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 내게 수영을 권하면 "난 소음인이라 몸이 차서 안 돼"라는 제법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피해 다녔다. 차가운 물에 몸이 닿는 게 싫었고, 내 몸이 물에 뜰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축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지. 그게 차가운 물이든 뭐든.


그런 의무감으로 찾은 수영인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제대로 된 자세는커녕 킥판을 내리눌러 자꾸만 아래로 떨어져 물을 잔뜩 머금고, 너무 느려 남들 운동 방해만 한 주제에 말이다. 한 시간 수업 끝에 혼자 선 샤워실. 그 안에서 키득거렸다. 


'나 되게 못하네? ㅋㅋㅋ'


이거 뭐야. 어떻게 못하는데 웃음이 나. 축구하면서는 내내 '왜 이렇게밖에 못하지'가 내 마음을 짓누르는데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기대가 없으면 몸을 움직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음을. 부상으로 느꼈던 무력감은 부상 자체가 아니라 내 기대가 만든 상처였음을.


             

▲ 풋살공과 풋살화 경기 마치고 한 컷. 요다와 같은 풋살화를 신었다.






더 잘하고 싶어서 상처받는다



축구 친구 연지는 나보다 구력이 훨씬 오래되었고 축구를 대하는 마음 또한 무척 깊다. 다만 그의 실력 향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한 가지 있다. 바로 한껏 치솟은 승모근. 그런 그에게 코치님은 매번 "몸에 힘을 좀 빼봐요"라고 말을 건넨다. 그때마다 연지는 "아, 30여 년 동안 준 힘을 어떻게 빼요!"라며 항변한다.


그런 연지의 몸에서 힘이 잔뜩 빠져나간 광경을 목격했다. 뮤지컬 마니아인 그와 함께 스탠딩 뮤지컬을 보러 간 적 있다. 모두가 배우들을 따라 함께 몸을 흔들고 춤을 추는 관객참여형 작품이었는데, 그곳에서 그 친구의 몸놀림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리듬을 잘 타지? 공연이 끝나자마자 연지에게 외쳤다. 


"춤 진짜 잘 추잖아! 몸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 있어! 앞으로 축구할 때도 이렇게 리듬을 타. 리듬좌가 되는 거야!"


왜 수영은 못해도 웃음이 나는데 축구는 못하면 잠도 못 자고 혼자 우울의 땅굴을 파는가. 왜 연지의 승모근은 축구할 때만 잔뜩 올라가는가. 결국 이 모든 것은 '사랑' 때문이다. 축구를 너무 사랑해서, 잘하고 싶어서 상처받는 것이다. 스스로의 축구 플레이가 한심해서 환멸을 느낄 때마다 내 머릿속에 드라마 <아내의 유혹> OST가 떠다닌다. 



"왜 나는 (축구) 너를 만나서 왜 나를 아프게만 해. 내 모든 걸 다 주는데 왜 날 울리니. ... 용서 못 해."


             

▲ 경기 준비 한겨울에도 친선경기는 계속된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언제나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너무 좋아하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자꾸만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지'라는 마음에 좌절하게 된다. 그 좌절이 나아가면? '아, 다 때려쳐'라는 포기하는 마음으로 발전한다.


웃음을 잃고 울상이 된 채로 공을 차던 나의 지난 모습이 떠올랐다. 기대를 내려놓으면 나의 지금마저 흥겨워질까. 못해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뛸 수는 없을까. 그러면 나는 나를 좀더 사랑하게 될 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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