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어’라는 믿음으로 살아온 내게 풋살은 ‘되던 것도 안 되는 삶이란 무엇인지 낱낱이 밝혀주겠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뭐든 주어지면 잘해야 한다’는 쓸데없는 책임감이 일상인 내게 운영진이라는 자리는 너무 크고 무거웠다. 두 가지 고민이 더해지니 속이 적잖이 시끄러웠고, 몇 년간 방치해뒀던 골반까지 말썽이었다.
돌아보면 그때 내 멘탈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풋살뿐 아니라 모든 것에서 누수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 마음을 들여다보기는커녕 계속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좀 더 노력해. 남들보다 늦었으면 더 열심히 해야 될 거 아냐. 지금 이 정도 실력이라는 건 네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야. 노동자도 경영자가 마구 몰아붙이면 일을 내려놓는 게 당연한 권리인데, 내 채찍질을 수없이 받던 몸과 마음도 파업하고 싶었겠지. 그때는 모든 게 버겁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풋살이라는 운동도, 팀 운영진이라는 위치도, 회사에서 과장이라는 자리도, 원가족 내 장녀라는 역할도.
운영진에 물러나면서 풋살에서도 함께 물러났다. 도망치기로 한 것이다. 친구들에게 “이제는 풋살을 떠나보내야 될 것 같아. 마음이 확정되면 말해줄게”라고 메시지 보냈다. 이후로는 단체창에서 말도 아끼고, 매치나 시합 구경조차 가지 않았다. 대신에 러닝에 재미를 붙여보기 위해 필라테스 수강을 등록하고 매일 20분씩 달리기 시작했다. 골반 재활 운동이라 칭했지만 사실은 소속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평소 스타일대로 풋살을 비운 자리에 또 다른 취미를 붙여볼 생각이었다.
언젠가 십자인대 수술을 한 동갑내기 친구 혜민이 수어 개월 만에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친구 팀 복귀 날 올라온 동영상을 봤는데, 절뚝거리며 공을 모는 그 애 얼굴이 해사했다. 그 사진을 보고 깨달았다. ‘나도 저 정도 행복을 바란 건데.’ 잘하고 싶은 게 아니라, 행복하고 싶은 거다. 언젠가 황소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행복하려고 하는 풋살인데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해. 부담 갖지 말아. 골 먹히면 어떠냐. 국대도 아닌데. 심지어 국대인 김예지도 0점 쏴도 인생 안 끝난다잖아.”
생각을 고쳐먹었다. 10번 수업 중에 1번이라도 빠지면 출석표 내 이름 옆에 달린 x 표시가 “너 x”라고 말하는 것 같아 안절부절못해 결국 2024년 출석왕 2위까지 했던 내가, ‘한 달에 2번 이상만 참석하자’고 결심한 것이다.
어제는 그 결심 첫날이었다. 근데 뭐 수십 년간 이렇게 살아온 성격이 쉽게 변하나. 구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나 이제 또 얼마나 못할 거야’라는 두려움과 ‘골반 아직도 덜 나았는데 오바하다가 또 다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섞인 한숨이었다. 내 한숨을 들은 영진이는 “언니 중간에 도망가는 거 아니죠?”라며 박장대소했다.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니 두려움과 걱정은 시나브로 잦아들었다. 몸풀기 때 내 속도에 발맞춰 같이 뛰어준 영현이와, 연습 내내 내 자세를 교정해주던 서연, 희란이와, “친구 없어서 나 외로웠잖아. 은 씨가 다시 와서 너무 반갑다”라고 말해준 에디터리와, 나 중간에 도망가나 안 가나 계속 감시해준 영진이까지, 오랜만에 만나니 어찌나 반갑던지. 이날 미처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얼른 만나고 싶었다.
혼자 화장실 가기 무섭다는 영진이를 화장실까지 에스코트하며 사람마다 두려움이 다르고, 잘하는 분야가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다. 풋살을 잘하는 우리 팀 애들은 지렁이를 무서워하고, 귀신을 무서워해서 내가 지렁이도 잡아줘야 되고 귀신이 무섭지 않은 이유도 설명해줘야 되네. 나도 잘하는 게 있네. 그러니까 팀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다. 이제 나는 친구들의 실력과 젊음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 토란이 말한 ‘노화를 받아들여요, 언니’라는 말을 정말 받아들이기로 했다. 가지지 못한 것에 속상해하지 말고 가진 것을 고마워하자.
언젠가 흰머리 휘날릴 때까지 풋살해서 할매FC 만들고 싶다는 내게 영진은 말했다. “언니, 그냥 우리 팀이 이렇게 공 차다가 다 같이 나이 들면 그게 할매FC예요.” 맞네, 맞아. 그때는 스코배 시니어 여성 풋살대회를 열어야지. 흰머리 무리들과 열심히 공 차다가 리그 끝나니 갑자기 시상식 단에 올라가 우리에게 상장을 나누어주던 모 풋살리그 회장 할머니처럼 되어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부담을 좀 내려놓고 되는 만큼만 해야겠다. 풋살도, 일도, 삶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