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잘 살게 되니 너도나도 사교육

본격적인 사교육의 시작

by 써니사이드업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사교육은 더 이상 특별한 선택이 아닙니다. 방과 후 책가방을 다시 메고 학원으로 향하는 초등학생,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비비며 인터넷 강의를 켜는 고등학생, 입시 설명회에서 빼곡히 메모하는 부모들까지—사교육은 그야말로 일상이 되었죠.

종로 학원가 1971년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공공누리 제1유형)

그렇다면 이런 사교육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조선시대에도 과외를 받는 일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본격적이고 보편적인 사교육은 1970년대에 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이 있었어요. 산업화를 통해 국가 경제가 성장하고 가계 소득이 늘어나면서,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돈을 쓸 여유가 생겼습니다. 과거에는 꿈도 꾸기 어려웠던 ‘사교육’이 이제는 실제 가능한 소비 항목이 된 것이었죠.


부모들은 자녀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라면 다른 지출을 줄여서라도 교육비만큼은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육은 인격 성장이나 사회적 기여의 과정이라기보다, 더 좋은 대학·더 안정된 직장·더 나은 삶으로 가는, 출세를 하기 위한 통로였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교육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기본 조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무시험 첫 회에 추첨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학부모들 모습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 공공누리 제1유형)

제도의 변화도 사교육 확산에 불을 붙였습니다. 1968년 중학교 무시험제, 1974년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학교 간 서열은 희미해졌습니다. 다양한 수준의 학생이 같은 교실에 모이다 보니, 공교육만으로는 자녀의 학업 수준을 끌어올리기 어렵다고 느낀 부모들이 사교육을 찾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 선택은 어디까지나 ‘돈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이후 사교육은 점점 산업화되었습니다. 대형 학원가가 형성되고, 문제집 시장이 커졌으며, 이름난 강사들은 방송에 출연하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어요. 2000년대 들어 인터넷 강의가 등장하자 시장은 더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출발점에는 언제나 같은 조건이 있었습니다. 경제가 성장했고, 부모가 사교육에 쓸 만큼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이었죠.

(출처 : ChatGPT 생성 이미지)

그러나 사교육 확대에는 경제적 여유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입시 중심 문화’가 사교육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대학 입시는 곧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문으로 여겨졌고, 한 번의 실패는 되돌릴 수 없는 낙오처럼 인식되었죠. 이런 불안이 부모와 학생을 학원으로 이끌었습니다.


지역별·계층별 교육 격차도 사교육 수요를 키웠습니다. 지방의 학생들이 서울 대형 학원가로 ‘유학’을 오는 현상이 나타났고, 강남은 ‘사교육의 성지’가 되었어요. “강남 8 학군”이라는 말은 곧 사교육 투자와 학업 성취를 보장하는 브랜드처럼 쓰였죠.


하지만 사교육의 확산은 늘 사회적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교육의 본질이 왜곡되고, 부모의 경제력이 곧 자녀의 기회로 이어지는 구조적 불평등이 고착되었기 때문입니다. 사교육은 개인의 성공을 위한 선택이면서도, 동시에 한국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작동하는 이중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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