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시장의 여공에서 미스코리아까지
1970년대의 산업화 시기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남성들의 시대’로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수많은 여성들의 손끝이 있었죠. 서울의 평화시장, 청계천, 동대문 일대에는 하루 열두 시간 넘게 재봉틀을 돌리던 젊은 여성들이 가득했어요. 이들 대부분은 농촌에서 도시로 올라온 10대 후반의 소녀들이었죠. 보조재단사(당시 표현으로 시다)로 시작해 숙련된 재봉사로 성장하며, 의류와 구두, 가발, 인형 등 한국의 주요 수출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시기에는 수출액 중 60~70%가 이처럼 여성 노동에 기반한 경공업 제품이었어요. 값싼 노동력이라 불렸지만 사실 그들이야말로 한국 경제 성장의 실질적 토대였습니다. 그들은 수출 산업의 실질적인 생산 주체이자 ‘근대화의 숨은 주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1970년대에는 텔레비전과 잡지와 같은 매체가 등장하고 여러 매체에서 광고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현대적 여성상’이 국가가 원하는 이미지로 만들어지고 있었어요. 미스코리아 대회가 국가적 행사로 열렸고, 정부는 이 대회를 통해 ‘세련된 현대 여성’을 홍보했습니다. 미스코리아들은 해외 박람회와 수출 전시회에서 한국 제품을 알리는 모델과 다양한 분야에서 홍보 역할을 하게 되었죠. 한쪽에서는 재봉틀 앞의 여공이, 다른 한쪽에서는 조명 아래의 미스코리아가 각각의 방식으로 국가 근대화의 무대에 올랐던 것입니다.
이 두 여성상은 시대가 여성에게 기대한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바로 근면하고 희생적인 노동자, 그리고 단정하고 아름다운 홍보대사입니다. 그 당시 한국 사회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면서도 여전히 순종과 규율을 중시하는 여성상을 요구했어요. 근대화는 여성의 사회참여를 넓혀주었지만 그 속엔 여전히 가부장적 시선이 깔려 있었습니다.
이 시기 여성의 사회 진출은 사회 구조의 변화를 동반했습니다. 농촌의 여성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도시 여성 노동자 계층’이 형성되었고, 이들은 임금을 받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새로운 경제 주체로 떠올랐습니다. “누나가 버는 돈으로 동생이 대학에 간다”는 말이 그 시대의 현실이었습니다. 동시에 여성들은 도시라는 낯선 공간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장과 하숙방, 여인숙을 오가며 그들은 경제적 자립뿐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어요. 근대화는 그들을 억눌렀지만, 역설적으로 그 속에서 여성들은 근대 시민으로 깨어나고 있었던 거죠.
대중문화 속에서도 여성은 근대화의 얼굴로 자리 잡았습니다. 텔레비전 광고 속 여성은 늘 세탁기를 돌리거나 화장품을 바르며 새로운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존재였어요. 산업화화 시대의 여성은 더 이상 집 안에만 머물지 않았죠. 공장에서 생산하고 상점에서 소비하며,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웃는 얼굴이 되었어요. 여성은 산업화의 생산 주체이자 소비 주체, 그리고 국가 이미지의 얼굴이 된 셈입니다.
하지만 화려한 화면 뒤에는 여전히 불평등한 현실이 있었습니다. ‘공순이’라는 멸칭이 상징하듯, 여성 노동은 사회적으로 저평가되었고, 그들의 권리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여성들은 점차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죠.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고, 그들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습니다. YWCA를 비롯한 여성 단체들은 여성 인권과 사회적 평등을 주장했고, 이는 1980년 이후 본격화된 여성운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산업화 시기에 여성은 단지 경제 성장의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불평등한 사회의 모순을 깨뜨린 사회적 주체로 변화하고 있었던 거예요.
결국 1970년대는 여성들이 근대화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보이는 주체’로 바뀐 시기였습니다. 그들의 손끝이 공장을 돌렸고, 그들의 얼굴이 수출 포스터를 장식했으며, 그들의 목소리가 사회를 바꾸기 시작했어요. 산업화의 기적은 그들의 노동과 이미지, 그리고 저항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름 없는 평화시장의 소녀들과 미스코리아 무대의 여왕은 서로 다른 세계에 있었지만, 그들 모두 한 시대를 움직인 진짜 주인공이었지요.
(미스코리아 대회도 이제는 그 시대적 소명을 다했습니다. 경제 발전과 여권 신장이 이루어지는 동안, 동시에 여성의 성 상품화라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탓에 사람들의 관심은 서서히 멀어졌지요. 그러나 여성들이 활약하는 사회의 무대는 계속 넓어졌습니다. 한국의 산업이 반도체, 금융, 서비스업 등으로 고도화되면서 여성들도 남성과 함께 다양한 분야에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그럼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이 남아 있어, 여성의 사회 참여가 완전히 공정하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