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고양이가 내 눈 안에 애잔하게 들어온 시간이. 세상 속의 성공을 향해 달리다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 올라가고 싶지 않았을 때, 올라갈 이유가 없어졌을 때, 그때 멈춤을 선택했었다. 그리고 밖이 아니라 조용하게 내 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찾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한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햇살이 좋은 날엔 공원에 나가 산책을 하고 눈부신겹벚꽃 아래책을 덮고 누워있고, 그동안 보지 않았던 산속에 들속에 공원 속에 숨어있던 이름 모를 들꽃, 야생화의 향기도 맡아보고, 풀과 나무도 손으로 만지며 촉감도 느껴보고, 오래된 고목은 껴안아도 보고, 떨어진 낙엽 사이로거리를 혼자 조용히 걸어도 보았다. 그리고 내 안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걸음도 천천히 느리게 걸었다. 그리고 예전의 앞만 바라보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던 나와는 달리, 이제는 주변도 돌아보면서 천천히 느리게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파트가 조경이 잘 되어있어 주변으로 산책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처음 본 그 녀석은 돌 담 위에 마치 사자 새끼처럼 아주 늠름하게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서있었다. '아니 무슨 고양이가 저렇게 폼나게 서있는 거야?'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 녀석은 나를 처음 보았는데도 계속 따라왔다. 내가 가는 길이 궁금했는지, 아니면 나랑 동행을 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그놈이 가는 방향에 내가 따라간 건지, 도통 이유는 알 수는 없지만 꽤 먼 거리를 직선으로도 따라오고 차가 있는 주차장에서는 조금 벗어났지만 먼발치서 또 따라오고, 참 희한한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 거리가 보통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거의 100~150M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긴 길을 그 녀석이 내 동행인이라도 된 듯 옆에서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진짜 저 녀석이 집으로 가는 길인데 내가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출발지점으로 돌아가려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머나, 이게 무슨 일인지, 그놈이 다시 방향을 돌려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저 녀석은 지능이 어느 정도 된 걸까?' 그 녀석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 녀석은 곧 운동시설 내에 있는 모래판에 들어와 있는 내 발 옆으로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애교를 부리는 듯, 장난을 치고 싶은 듯, 친하고 싶은 듯, 아니면 내 발 냄새가 좋은 듯, 계속 내 발 주위를 맴돌았다. 그렇게 그 녀석과 시간을 보낸 후 나는 아쉬운 작별을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경비 아저씨가 얘기해주어서 안 사실이지만 그 녀석은 104동 밑에 정원이 있는 공간에서 젊은 부부가 집도 만들어 주고 사료도 주고 놀아도 주면서 돌보고 있는 길고양이였다. 그 이후로나는 주기적으로 그 녀석을 보러 그곳에 갔었다.
매화와 벚꽃이 한창인 마당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막내 고양이 레오가 다가왔다. 레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나를 올려다보며 야옹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밥을 달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물을 달라는 것도, 화장실 모래를 치워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문득 레오가 내게 위로를 건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ㅡ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김중미 장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