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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 쏘다 Apr 04. 2023

Chat GPT에게 물어본 사랑 이야기

인공지능과 사랑의 존재 이유

인공지능 대화창에 한 남자에 관한 소설 줄거리를 물었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어느 날 지구 반대편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고 며칠 사이 연락이 끊긴다. 남자는 이제 무슨 행동을 할 것인가.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질문의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나의 이야기다. 얼마 전 그녀는 동유럽의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환승하고 있었다. 핸드폰에 유심을 갈아끼우는 것을 잊어먹은 그녀 덕분에 나는 만 하루가 넘도록 그녀와 연락할 수 없었다. 나는 혹시 그녀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커다란 두려움에 빠졌는데, 더 큰 슬픔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무력감은 나를 깊은 허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인공지능은 그럴 듯한 이야기를 몇 가지 지었다. 그녀를 찾으러 해외로 떠나거나, 한국에 남은 그녀의 흔적을 추억하는 일, 혹은 이성을 잃고 기이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 등. 모두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주워들은 농담을 반복하는 것처럼 사람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거기에서 거기인 법이니까.


그러자 문득 나는 오르페우스를 떠올리게 되었다. 비참하게 사랑을 잃은 사람의 원형. 지옥으로 끌려간 에우로디케를 되찾기 위해 그는 단신으로 지옥에 당도한다. 스틱스 강을 건너고 케르베로스를 지나 하데스 앞에서 애인의 반환을 당당히 요구한다. 그의 기백과 용기에 하데스는 에우로디케를 돌려주지만, 지옥을 나서려는 찰나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는 지옥의 금기를 어겨 그는 영영 그녀를 볼 수 없는 운명 속으로 빠져든다.


나의 이야기와 에우로디케의 이야기를 연관지어 이야기를 지어 달라고 인공지능에게 부탁했다. 인공지능은 여느 질문과 달리 몇 분 고민하더니 곧 에러 메시지를 전송했다. 이 지점에 이르러 더 이상 답변을 생성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나의 존재 이유를 확인받은 것만 같았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녀가 다른 사람이 이전에 그러했던 방식으로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우아하다. 누구도 들려주지 못했던 방식으로 그녀는 삶의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내 삶의 빛이고 노래고 이야기다. 그녀를 찾아서라면 정말 지옥 끝까지라도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모자란 인간으로서 내가 아직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에게는 아직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와 불려지지 않은 노래들 그리고 경험하지 못한 행복이 어딘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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