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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 쏘다 Oct 04. 2019

암 병동에서

삶과 죽음

 병원에서 빠져나올 때면 나는 어김없이 지쳐있었다. 해는 어느덧 지평선 쪽으로 기울어 붉은빛으로 서쪽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고, 낮을 태우던 더위는 온데간데없이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로 지나갔다. 땀에 젖은 셔츠가 마르면서 기분 좋은 서늘함이 느껴졌다. 봄이 지나가면서 푸른 잎들 사이로는 벚꽃이 떨어졌다. 나는 한 주간 매일 서른 명이 넘는 암 환자를 만났다. 그들은 대체로 완치를 위한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였고, 기껏해야 1-2년쯤 더 살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사람들이었다. 오늘이나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너무나 많은 죽음이 가까이 있어 머리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은 허기를 느끼기조차 어려웠고, 밤이 되면 잠도 오지 않았다. 온갖 상념을 털어내기 위해 노을을 따라 되도록 멀리 걸어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날도 다른 날처럼 피곤에 절어 퇴근하고 있었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접어들 때쯤, 병원 마당에 놓인 흡연실이 눈에 들어왔다. 한 평 남짓한 조그마한 부스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는 담배를 태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가지런히 놓인 수액 걸이 사이로 흰 담배 연기가 퍼졌다. 몇몇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환자복을 입은 채로 그들은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커다란 병원과 작은 부스, 나는 그 사이를 수없이 오갔지만, 관심을 두고 쳐다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실습을 하며 병원 마당을 지나칠 때마다 흡연실은 항상 만원이었고, 부스가 가득 찰 때면 그 옆으로 사람들이 기다랗게 늘어서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떠올랐다. 병원 마당에 흡연실이 있다는 사실과 항상 그 안은 환자들로 붐빈다는 사실에 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차트를 읽고, 환자를 찾아가 면담을 하고,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하루를 보낸 터였다. 내가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흰 연기처럼 뿌옇게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침에 만난 환자가 생각났다. 그는 췌장암 환자였다. 수술할 수 없을 정도로 암이 커져 있었고, 갖고 있던 당뇨는 심해져 혈당이 끝없이 올랐다. 길어야 1년쯤 살 수 있을까 싶었다. 아침 9시,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은은한 담배 냄새가 풍겼다. 교수님은 이런 일에 익숙한 듯했다.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는 말과 알겠다는 대답이 오갔다. 하지만 환자는 내일도 담배를 피우러 갈 듯한 표정이었다. 회진이 끝나자마자 재빨리 차트를 열었다. 그가 어떤 상태인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궁금했다. 검사 기록은 너무 높아서 붉거나 너무 낮아서 푸른 숫자로 가득했다. 그러니까 나는 물론이거니와 그 누구도 그에게 대단한 일을 해줄 수는 없었다. 담배를 끊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루하루를 성실히 보내면서 지금보다 좋은 삶을 꿈꾸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는 오전 내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폴대에 매달린 수액 주머니 안에서는 항암제가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한 방울이 떨어지면 작은 틈에서 물이 새어나와 점점 더 큰 방울이 되고, 제 무게를 못 이겨 밑으로 떨어졌다. 세상 일이 저렇게 간단했으면 좋았겠다. 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복도에서는 환자가 곧 죽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말이 들려왔다. 아프면 진통제를 주고, 목이 마르면 수액을 주고, 숨이 가쁘면 산소를 줄 것이라는 말이 이어졌다. 그 말은 어떤 치료도 이 사람을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을 수는 없다는 말로 들렸다. 보호자 중 몇몇은 절망했고, 며칠 더 숨을 붙여 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다. 죽음은 그렇게 도처에 있었다. 인공호흡기를 떼면 산 사람의 목을 조르는 듯한 고통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며칠 내로 죽음은 찾아올 것이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픔을 줄이고 죽음을 며칠 늦추는 일이었다. 작년에 강의에서 배운 내용들이 떠올랐다. 수많은 알고리즘과 검사, 약제, 처치 방법들이 스쳐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죽음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나는 실험실의 쥐처럼 병동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해부학을 마쳤을 때였을까? 나는 의학에 대해 이제 다 안다고 믿었다. 우리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가르고, 만져보고, 냄새 맡아 보았으니까. 그 뒤로도 줄곧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고 환자들의 사례를 공부하면서 조금씩 의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나는 왜 그리 오만했던 것일까. 암 병동에서 나는 죽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사는 것이 옳은지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다. 폐암, 위암, 대장암, 유방암…… 병동에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만큼 병도 저마다 달랐다. 예후, 중등도 평가 방법, 생존률 등의 내용이 담긴 논문을 읽었다. 최신 지견을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살 수 있을지, 그들에게는 얼만큼의 시간이 남아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내일 죽을 수도 있는 사람들과, 1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는 사람들. 그들의 삶은 모두 내 삶과 너무 달랐다. 아마 병원 안의 그 누구의 삶과도 다를 것이다. 내게 사랑할 사람들과 꿈이 있는 것처럼 그들도 돌아갈 가족, 이루지 못한 꿈, 못 다한 사랑이 있었을 텐데. 그들이 죽고 나면 그 꿈과 사랑은 어디로 가버리는 것인지 생각했다.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나는 일주일동안 거듭 되뇌었다. 그러지 않고는 버티기 어려웠다. 병원 어디를 돌아보아도 죽음이 그림자처럼 걸려있었다. 개개의 슬픔은 저마다 길고 깊어서 이야기를 듣고 돌아서면 눈물이 났다. 철제 침대 옆으로는 보호자들이 딱딱한 간이 침대에 앉아 눈을 붙이고 있었다. 2주, 6개월, 1년 같은 숫자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남은 시간은 너무 적어 보였다. 그들이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잘못을 용서하고, 말하지 못한 사랑을 나누면서. 삶이 한권의 책이라면, 우리는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를 읽는 셈이다. 시간이 지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그 시간을 보낸다면, 지금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남은 날들이 그들에게 그런 시간이 되기를 깊이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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