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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 쏘다 Oct 08. 2019

나를 개조할 권리

프란츠 카프카, [법 앞에서]

 첫 번째 문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사다리에 오른 자들은 아래에 있는 자들을 두려워한다. 성공을 독식하기 위해서 그들은 켜켜이 견고한 담을 쌓아올린다. 문고리에 육중한 자물쇠를 걸어채우고 문지기를 세운다. 자신이 이룬 성공을 도둑맞을까 전전긍긍하며 담을 넘는 자들을 부지런히 쫓는다. 성공을 꿈꾸는가? 당신이 넘어야 할 벽이 이곳에 있다. 천부적인 재능, 우연과 행운으로 성공에 이른 사람은 이렇게 자신을 방어한다. 이 부류의 문에 대해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미디어를 타고 연일 전해지는 진부한 뉴스거리, 신문 사회면의 첫 기사, 누군가가 구속되었다는 사실. 성공의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문을 부술 용기가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법 앞에 문지기 한 사람이 서 있다. 시골 사람 하나가 와서 문지기에게 법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입장하는 걸 허락할 수 없노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가 그렇다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럴 수는 있지만." 하고 문지기가 말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 된다오" 문은 언제나 그렇듯이 열려 있고, 문지기가 옆으로 물러섰기 때문에 시골 사람은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려고 몸을 굽힌다.



 우리는 문을 보고서도 모른체 할 뿐이다. 문 안의 사람들을 증오하면서도 문 안으로 들어가기를 욕망한다. 문의 무게에 압도된 사람들은 그 무게에 이끌려 문을 밀어내고, 그 중 몇몇은 문을 여는데 성공한다. 문 안은 밖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부유하고 온안다. 문 안의 세계를 알게 될 때, 문의 내부를 향하던 증오의 화살은 밖으로 표적을 돌린다. 과거는 안녕이다. 더 무거운 추를 달아야 한다. 조임새를 단단히 하라. 벽을 높여라. 이 승리가 나만의 것일 수 있도록.


 [법 앞에서]의 '법'이 어떤 법인지는 쉽사리 해석되지 않는다. '법'은 사법 체계일 수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법칙일 수도 있다. 세상은 허울 좋은 말로 우리를 유혹한다. 법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고 서로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세상은 그런 모습인 적이 없다. 순수한 마음을 갖기에 이제는 너무 늙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세계는 이미 지옥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렇게 마음이 끌리거든 내 금지를 어기고라도 들어가 보시오. 그렇지만 명심하시오. 내가 막강하다는 것을. 그런데 나로 말하자면 최하급 문지기에 불과하고, 방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문지기가 서 있는데 갈수록 막강해지지. 세 번째 문지기만 되어도 나조차 쳐다보기가 어렵다고."



 첫 번째 문이 이처럼 세계를 안과 밖으로 나누는 경계라면, 두 번째 문은 보다 내밀한 위치에서 우리를 가두고 있다. 전자가 사회가 나에게 강요한 문이라면, 후자는 나 스스로 부여한 문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에게 두른 철창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만이 이를 알아챌 수 있다. 이 문은 성공이란 오롯이 우리의 책임이며 지금의 알을 깨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문이 묻는다. 진정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은 세상인가 아니면 비루한 나의 모습인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을 가둔 감옥을 깨려는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두 번째 문을 넘을 수 있다.


 법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막강한 문지기를 만날 것이다. 자아가 성장하는 것은 그처럼 힘들다. 당장 눈앞에  있는 문지기조차 쉽게 길을 터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온 힘을 다해야만 간신히 그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를 넘어야만 더 깊이 가닿을 수 있을 텐데. 갈수록 더 센 문지기가 버티고 있다면 힘을 다해 이 문지기를 이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서는 다른 그 누구도 입장 허가를 받을 수 없었어,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이제 문을 닫고 가겠소."



 당신을 위한 문 앞에 서서 변명을 대며 망설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쌓은 문과 벽 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지는 않은지. 두려움 때문에, 안 될 것이라는 막연한 마음 때문에, 남이 대신 해주었으면 하는 헛된 생각으로, 단순히 귀찮아서, 해도 소용 없을 것 같다는 비관 때문에, 끝없는 우울 때문에, 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불확실한 미래가 무서워서 그러고 있지는 않은지. 명심하기를. 우리 자신을 개조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을 뿐이라는 것을. 문 앞에서 우리는 문지기와 싸우고 법과 맞서야 할지도 모르지만, 나를 가로막는 상상의 벽을 정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문을 박차고 나가며 벽을 극복하는 인간이야 말로 우리가 바라야 할 모습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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