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지 말고 실천해보아요"
내가 사는 건물 2층에 카페가 있다. S사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인데, 직영점이라 그런지 직원들의 태도가 다소 딱딱하다. 불친절하지는 않다. 나도 장사를 하는 사람이니까, 알바생들의 몸과 마음의 고단함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래도 이왕 손님을 맞을 바에, 예쁜 아가씨들이 예쁘게 웃어주면 더욱 예쁘게 보일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주문을 할 때마다 내가 활짝 웃었다. 인사하며 카운터로 다가가 웃으면서 주문하고, 정중하게 신용카드를 건네고, 건네받으면 또 고맙다고 인사하고, 커피가 나오면 웃으면서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일주일에 두 세 번은 그 카페에 간다. 서너 달 꾸준히 그렇게 해보았다. ‘정신 나간 사람 아니야?’ 싶을 정도로 배시시 웃으면서 그렇게 해보았다.
그랬더니 어느 날인가, 알바 가운데 고참으로 보이는 친구가, 그 친구가 사실 가장 딱딱했는데, 웃는 것 아닌가. 아, 너무 기분이 좋더라.
지금은 카페 알바생 모두와 인사를 주고받는다. 내가 들어서면 “저 아저씨 왔구나”하는 표정으로 살짝 미소 짓는다. 아재 주제에 포인트 적립하고 할인받느라 휴대폰 화면 뒤적이며 좀 복잡하게 구는 편인데, 나도 편의점 카운터에 있을 때는 그렇더라, 그런 손님을 맞을 때면 은근히 짜증이 난다. 그런데도 그 친구들은 친절하게 웃으며 기다려준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게 한다.
우리 편의점 건물에는 여러 회사가 입주해있다. 그중 한 층이 콜센터다. 기업이나 은행의 전화 상담 업무를 하청 받아 일하는 회사라고 알고 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이 친구들의 흡연율이 대단히 높다. 편의점에 한번 들르면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쓸어가다시피 사간다. 고마운 고객들이고, 우리 빌딩 입주사 고객들 중에서도 내가 각별히 애정 하는 친구들이다. 반말로 인사를 주고받는 친구들까지 생겼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이런저런 일로 콜센터 상담원들과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내 누이처럼, 친구처럼, 동료처럼, 손님처럼, 동생처럼 느껴진다.
한국의 콜센터 상담원처럼 해맑은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누구든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고객님”하면서 통화를 시작한다. 나도 질세라 “수고 많으십니다, 상담원님”하면서 인사를 받는다. 내가 전화를 건 목적을 털어놓는다. 최대한 친절하게, 차분하게,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그럼 어떤 상담원이든 조금이라도 더 잘해주려 애를 쓰는 목소리가 느껴진다.
편의점은 형광등을 교체할 일이 잦다. 24시간 켜놓고 있으니 그렇다. 본사에서 소모품으로 형광등을 발주할 수도 있는데, 우리 점포는 특이한 LED등을 달고 있는지라 늘 홈쇼핑에 주문한다. 항상 똑같은 제품을 주문하여, 그동안 물건이 잘못 도착한 적은 없었는데, 주광색으로 와야 할 형광등이 이번에 전구색으로 와버렸다. 교환을 하려고 했더니 업체에서는 해당 제품이 없으니 반품을 하라고 하고, 반품을 하려고 했더니 홈페이지에는 ‘교환 진행중’이라고 떠있어 반품이 안 되고, 상황이 약간 꼬여버렸다. 콜센터에 전화를 해보니 한참이나 대기중이다. 아마도 3분 정도 걸려 통화에 성공한 것 같은데, 내 감정의 수치로는 30분쯤으로 느껴졌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 그 한마디에 다시 이성을 되찾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수고 많으십니다” 인사를 한 다음,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했다. 특별할 것도 없이, 일사천리로 문제는 잘 해결되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상담사님”하고 인사를 건네니 그쪽에서도 “고맙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라고 인사를 받는다.
별로 어려운 일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