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아저씨, 도쿄 편의점 탐방기 (08)]
15년!
일본 편의점 기본 계약 기간을 듣고 두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요? 몇 년이라고요?"
"15년이요...... 그럼 한국에서는 몇 년입니까?"
"5년이죠."
한국 편의점 점주가 프랜차이즈 본사랑 맺는 계약 기간은 길어야 5년, 위탁 경영의 경우에는 2~3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한다.
계약 기간은 길어야 좋은 걸까, 짧아야 좋은 걸까? 흔히 길어야 좋지 않냐고 생각하겠지만 한국 편의점 점주들은 대체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한국과 일본 편의점의 구조적 차이 가운데 하나가 등장한다.
편의점은 미국에서 시작해 일본으로 건너온 발명품이지만, 사실 편의점이란 물건을 오늘의 편의점으로 다듬은 장본인은 일본인들이다. 일본에서 형태가 잡힌 편의점은 다시 대만, 홍콩, 한국으로 전파되었다. 편의점 프랜차이즈라는 원형은 모두 일본의 것을 따랐지만 각 나라 국민들의 문화와 경제 관념, 상거래 관행 등에 맞춰 대만식, 홍콩식, 한국식으로 정착했다.
한국와 일본 편의점의 사로 다른 계약 조건을 살펴보면 양국의 편의점 업체들이 가맹점주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나아가 기업가 정신이랄까, 사업을 풀어나가는 양국 사람들의 의식 차이까지 엿볼 수 있다.
일본과 한국 편의점의 다른 점은 "출발부터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편의점 가맹을 하려면 '적성검사'를 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적성검사를 실시한다. 편의점을 운영할 능력이 있는지, 성격상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닌지 판단하는 시험이다.
필자가 6년간 편의점을 운영하며 십수 명이 편의점을 오픈하는 과정을 지켜보았으나 이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아니, 사실은 딱 한 번 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뒤에 소개해드리겠다.) 그 시험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는 시험이니까.
"당신은 지금 횡단 보도에 서있습니다. 빨간불이 켜져 있습니다. 건너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이런 수준의 문제가 이어진다. 성격이 어지간히 삐딱한 사람이 아니면 합격을 안할 수가 없는 적성검사다.
그런데 일본에서 편의점을 창업하려면 적성검사가 아니라 '면접'을 보아야 한다. 그것도 세 차례나!
일본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인 K씨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가 사실은 지금 운영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다른 브랜드 프랜차이즈를 오픈하려 했는데 면접에 떨어져 우연찮게 지금 브랜드를 하게 되었단다. 면접에 떨어졌다고? 가맹점을 하겠다고 달려온 사람을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떨어뜨린다고? 아니, 왜, 도대체, 무엇때문에?
"(면접관이) 왜 편의점을 하려고 하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요?"
"돈을 벌고 싶어 그런다...... 그렇게 대답했죠."
"정말 솔직하군요."
"그래서 떨어졌습니다."
"네?!!! 그게 뭐가 어때서요?"
K씨가 조용히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때에는 그렇게 생각했죠. 월급쟁이가 회사 그만두고 자영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돈을 벌어야겠다', 이보다 간절한 욕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 뭐가 어쨌다고........"
'탈락'이라는 면접 결과를 듣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단다. 외국인이라서 그러는 건가? 이거, 한국인이라고 차별하는 거야, 뭐야?
의기소침해서 면접장을 빠져나가는데 자신을 면접했던 사람이 조용히 K씨를 부르더란다.
"K상.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K상을 다시 불렀습니다. K상의 절박한 심정은 알겠지만 그렇게 답변하시면 안됩니다. 제가 팁을 하나 드릴게요."
팁?!
"앞으로 다른 회사에 가맹 신청을 해서 면접을 할 때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준비해 가세요. '돈을 벌어야 겠다' 이런 이야기는 누구든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다못해 자신이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라도 설명하세요. 그런데 가급적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스토리를 말씀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계속)
※ <편의점 아저씨, 일본 편의점 탐방기>는 브런치 연재를 묶어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